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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순적(順適)히

2009.03.26 21:00

김성찬 조회 수:3693 추천:22

영혼일기 249: 순적(順適)히
2009.03.27(목)

난 ‘순적(順適)히’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런데 국어사전 검색 창에는 뜨지 않는다. 성경에만 단 두 번 사용되었을 뿐이다. (창세기 24:12; 27:20절) 그것도 한글 개역판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창 24:12]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順適)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 말씀은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러 무려 800km나 되는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기도문이다.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이 그의 며느리를 고향 하란에서 구하려고 그의 종에게 그 먼 길을 가게 했다. 그래서 그 구속사의 대를 잇는, 그 거룩한 언약을 이룰 혼사를 위해 그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떠났다.  그러나 정작, 한 때  60여 년 전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지명되기도 했던 엘리에셀의 염려와 관심은 그 장거리 여행에 대한 안전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맺어지는 결혼임을 증거 해 보일 하나님의 순적한 인도하심 여부였다. 결과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무리 없이 순조롭고 아름다워야 했다. 그 어떤 인위적 개입이나, 요즘 흔한 로비의 산물이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신부를 구하러 가면서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은  신랑 될 이삭을 데려가지 않았다. 고대의 혼인 풍습이기도 하겠지만, 영해(靈解)해 보자면  ‘자기자랑’도 하지 않는 온전히 하나님의 택정하심만을 의지하는 믿음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순적(順適)히’라는 말을 개역개정판은 ‘순조(順調)롭게’라고 대치하고 있다. 순조롭다[順調롭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형용사] 일이 아무 탈이나 말썽 없이 예정대로 잘되어 가는 상태에 있다. 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은 대체로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 흐르듯, 실타래가 살살 풀리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이 풀려나간다.

오늘의 결과를 놓고, 신임 지방회장단협의회 총무 설봉식 목사는, 몇 차례나

‘자연스럽게’ 라는 단어를 구사했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고, 결과도 매우 자연스럽게 마감되었다고 흥분해마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엘리에셀은 그 일을 주께서 순적히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 24:13-14)

오늘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 103년차 지방회장단협의회 대표로 피선되었다.

내가 이런 목적을 위해 행한 수고는 거의 전무하다.
난 그동안 그 자리를 놓고 나에게 은밀한 복심(腹心)을 드러내던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진행되길 바란다는 말만 되뇌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떤 동네 사람들은 그 대표회장 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풍문이 솔솔 들려왔었고, 지금도 들려오고 있다. 그들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로 인해 상당한 심적 타격을 입은 듯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적절한 명분도 갖추지 않고, 턱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總力)을 경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난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자리를 반드시 차지해야만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누군가가 그 목적을 그 결과 발표 후, 나에게 진솔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그 목적은 분명히 선하지 않았다. 그 경제논리로 신성한 교단의 성업(聖業)을 수행해 나아가야 할 자리를 탐하여 갖은 공작(工作)을 일삼았다는 것은, 나는 결코 바람직한 행위라 여길 수 없다. 이런 식의 이익집단의 경제논리와 조직이 교단 행정을 좌지우지한다면 우리 성결교단은 미래가 없다. 그 자리가 그 얼마나 비중 있는 자리라고 그런 자리까지 그렇게 집요하게 탐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자연스럽게 46개 지방회 지방회장들이 그 대표와 실행위원들을 선출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대표하는 실행위원들에게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해도 충분할 사안을 위해 그들은 무리수를 둔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선하지 못했음을 공표하시듯,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가로막으시고, 부족한 나를 그 자리에 세우셨다.

 

매우 자연스럽게.

난 그 대표 수락 인사를 했다.


우리 모두에게 리더십이 있다는 대 전제하에, 우린 총회 산하 행정기구의 리더십을 서로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이 대표직을 감사히 받습니다. 우리 실행위원들도 총회 행정기구에 아직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분들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참신하고, 잠재역량이 있는 분들이 총회를 신선하게하고, 행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제 103년차 지방회장단협의회 실행위원들은 교단 총무를 만났고, 한 해를 더불어 즐기며 살아보자고 상호 다짐을 나눴다.

돌아오는 길에 뜻하지 않는 여러분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저들의 독식이 문제야 문제, 지들끼리 다 해먹으려고만 해.


이런 흥분된 탄식도 섞여 있었다.

‘순적(順適)히’- 이 단어를 영어성경은 ‘kind’(CEV)로 사용하고 있다. 
"The LORD your God
was kind to me," Jacob answered. (Genesis 27:20)


친절한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