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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 애도(哀悼). 하늘아이들이 보내 온

2014.09.11 20:49

김성찬 조회 수:4347 추천:19



영혼일기 1555: 애도(哀悼). 하늘아이들이 보내 온

2014.09.11(목)

 

집엘 갔었어. 여전히 엄마아빤 없더라. 없었어. 늘 그랬던 것처럼 빈집이었어. 텅 빈집. 당연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섭섭했어. 엄마 일터에도 가봤어, 아빠 노동 현장에도 물론. 근데 거기에도 없었어. 휙 이리저리 바람 되어 떠돌다가 내려다 본 수도 서울에서 뜻밖에 엄마아빠 그림자를 찾았어. 분명히 우리 엄마아빠야. 보고팠던 우리 엄마아빠. 

 

샛노란 그 광장엔 해신(海神) 이순신 장군도 보이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도 보여. 근데 그분들 앞에서 그날 2014.04.16 세월호 선실 안에서 발을 동동 굴리던 우리처럼 제자리 걸음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는 엄마아빠가 보여. 뭔가 빌고 있는 엄마아빠가. 빌지 마 엄마. 더 이상 빌지 마 아빠. 빌어도 우린 다시 엄마아빠 품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이제 그냥 집으로 돌아 가, 동생들도 있잖아. 

 

아니라고? 내 말이 들려?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니들 살아 돌아오라고, 살려 내라고 비는 게 아니라고? 다시는 우리처럼, 우리 같은 애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비는 거라고?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물에 수장시킨 세상에 비는 거라고? 싹싹 비는 거라고? 

엄마아빠가 오히려? 

 

아빤 그 얼굴이 뭐야? 왜 수염은 그리도 덥수룩하고, 눈은 왜 그리 깊어졌어? 온 몸으로 빌었다고? 식음 전폐하고 사십일을 넘기면서 빌었다고? 그랬는데도 대꾸도 안한다고? 

 

독일의 어떤 목사님이 그랬다는데 독일은 그런 사고가 나면 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차후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한다고. 

 

그런데 그 땅은 지금 두 쪽이 났다고? 세월호 때문에? 우리가 죽어서? 우리가 죽임을 당해서? 한쪽에서는 우리가 죽어서 경기가 침체 됐다며 이젠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말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시 죄 없는 애들이 죽임을 당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그 후속조치를 조속히 시행해야 다시 그런 참사와 경기침체가 되풀이 되지 않지 않겠느냐 호소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제게 중립을 지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누군가 노란 리본을 단 교황에게 교황이라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내뱉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말끝에 그렇게 답했다지.

 

근데 엄마아빠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곡기를 끊으며 애원하는 마당, 그 코앞에서 피자 백판을 돌려먹는 짐승들도 있었다고? 

 

어~ 엄마아빠를 둘러 싼 이들이 경찰 아저씨들 같아. 그런데 문득 이런 소리가 기억 나.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꼼짝 말고. 우리가 세월호 안에서 들은 소리야. 제자리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라. 우리를 죽음으로 안내했던 그 낮고, 무거웠던 그 소리. 

 

엄마아빠 그만 해, 그만. 우리도 그랬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거센 파도가 목을 타고 넘었어.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틈도 없이 우린 목숨을 잃었어. 숨넘어가면서 한때 사랑해서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아빠를 떠올렸지. 여기저기서 목멘 울음소리가 가득했어. 사랑했어, 사랑할 거야, 사랑해~. 

 

절망으로 우린 잠들었어. 절망의 잠도 달았어. 엄마아빠. 광장을 떠나. 더 절망하기 전에. 절망의 잠도 달아. 단잠 자, 집에 가서. 집에서 만나 우리. 늘 따로따로였던 우리 식구들. 모처럼 우리 절망의 잠을 함께 자기로 해.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지구별은 정말 아름다워. 파래, 파아란 지구별. 우리가 절망하며 무너졌던 저 지구별이 저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다며, 우리는 탄성을 발하고 있어. 근데 옆에서 누가 그래 파래서 아름다운 저 지구 별빛은, 그 별을 아파하는 사람들의 파란 입술 빛이라고. 시리도록 눈부신 저 창백한 지구별. 그래서 유독 더 빛나 엄마아빠가 무릎 꿇고 있는 푸른 기와집 그 앞마당은. 가닿을 수록 멀어져 가는 애원으로 더 퍼래지는 엄마아빠의 입술. 그날 우리를 수장시킨 처연한 울둘목의 푸른 달빛처럼. 

 

애도(哀悼). 우린 엄마아빠를 애도하고 있어. 애도란 꼼짝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대.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우리는 그렇게 공포에 질려 꼬옥 껴안고 서로서로 애도하며 숨넘어갔어. 애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속수무책으로 흐르면서 하나, 둘 꼴깍 숨넘어가던 공포의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린 익숙해, 벽 앞에서, 대답 없는 메아리소리에 질려 숨넘어가는 인간들의 가없는 절규에 아주 익숙해. 엄마아빠 기대하지 마. 세상은 기대할 것이 없다고 그래. 기대할 것 없는 세상 일찍 버린 우리들이 행복한 아이들이래. 아직도 세상에 기대고, 세상에 무릎 꿇고 비는 엄마아빠가 안쓰러워.

그 세상에서 살아 죽은 우리 엄마아빠가 불쌍해.
   우리는 그런 엄마아빠를 하늘에서 애도하고 있어.  

 

숨이 모자란 엄마아빠의 애곡을 여기서 멈춰, 

이젠 집으로 돌아 가. 

 

나도 따라 집으로 갈 게. 

엄마아빠가 함께 날 기다릴 집으로.


물먹은 

눈물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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