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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607 : 험한 인생 계곡을 나는, 우리네 우정(友情)에 대하여

2014.10.27(월) 

 

우리는 성경을 대한다. 성경을 통째로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성경은 통째로 먹을 수 없다. 어린 송아지조차 통째로 먹을 수는 없다. 각을 뜨고, 곱게 발라서, 한 입에 넣을 만큼 다진 후에 먹을 수 있다. 통째로 성경을 먹는다는 말은 의심 없이 일단 말씀을 받아먹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통상 성경 66권(구약 39권, 신약27권), 총 장수 1,189장(구약 929장, 신약 260장), 총 절수 31,173절(구약 23,214절, 신약 7959절) 중에서 우리는 그 어느 한 절, 한 장 정도를 택해 그날그날 읽고, 묵상한다.

 

그렇게 해서 택한 본문이든, 주어진 본문이든 그 모든 본문은 죄다 말씀을 대하는 자, 그 자신의 심령을 투사한 내용이다. 내가 택했다면 그 본문은 당연히 자신의 심령 상태를 비추는 거울 같은 내용일 것이고, 만일 기도나 환상 중에 주어진 본문이라면 성령께서 나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신 탄식일 거다.

 

오늘 수업 시간 모두(冒頭)에 시작종(始作鐘)처럼 한 학생이 경건 묵상의 내용으로 성결고전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에서 자신이 택한 「계곡에 거할 때」를 기도로 읽었다.

 

《 계곡에 거할 때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9:22) 

 

변화산 정상의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현실로 내려와서 조금도 쉴 틈이 없이 현실의 문제들을 대면하게 됩니다. 현실은 아름답지도 않고 시적이지도 않으며 신나는 일들도 없습니다. 높은 정상에서 느끼던 희열은 이제 계곡의 지긋지긋한 일들로 메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계곡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낮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가치를 진정으로 드러낼 수 있고 우리의 충성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마음속의 자연스러운 이기심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는 영웅적인 정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특별히 계곡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정상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 오셔서 계곡으로 이끄십니다. 그 계곡에서 비로소 그들은 산에서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후략(後略)-》

 

그 학생은 이상과 같은 내용을 택했다. 그 내용은 변화산에서 맛본 영웅적인 정상(頂上)의 일이 아닌, 계곡(溪谷)인 일상생활에서 전능자에게 의심과 투정을 일삼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일침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천한 계곡에서 의심하는 자가 된 것 아닙니까?”

 

이에 대해 그 학생은 이런 기도로 화답하고 있었다.

 

“주님! 세상의 계곡에서 살면서 현실 속에서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었더라면 계곡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곡이라는 현실 앞에서………” 

 

여기까지 읽어 내려가던 그가 말없이 멈춰 섰다. 그는 계곡에 처해 있고, 계곡을 헤매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글 기도를 듣는 학생들도 일순 입을 다물었다. 고요가 한참이나 지속됐다. 다시 힘내어 발성한다. “주님을 멀리한 채………” 다시 기도가 한동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살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자신의 실상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용서 해 달라고 주께 빌었다. 그리고 계곡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다.

 

그들은 오늘과 내일,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사역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계곡을 헤매고 있다.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만이 아님을 적어도 나는 안다. 정말 나는 잘 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상게서 중「바람과 풍랑을 바라봅니까?」라는 제하의 묵상에서《어떤 문제를 당하면 우리는 당장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에 관한 여러 형편을 고려하게 되면서 침몰합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만 인식하고 있다면 주께서 당신을 어떤 상황으로 이끌고 가시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 바람과 풍랑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단지 당신이 그것을 바라보는 즉시 당신은 주눅이 들면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꾸짖으십니다.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처한 실제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을 계속 인식하며 온전하게 주만 의지 하십시오.》라고 권고하고 있다.

 

베드로가 주님만 보고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이 무서워 물에 빠져 들어가는 장면(마14:29-30)에 대한 묵상이다.

 

계곡을 통과할 때나 물 위를 걸을 때에 우리가 무장해야 할 단어는,

‘의심 없이’다.

의심 없는 말씀에 대한 충성. 오직 주만 바라보기.

 

수업을 끝내고, 죽마고우들이 재(再) 부활시키려 든, 남성 사중창단 결성식에 참여하러 박목사 교회로 향했다. 그들은 60년대 후반 고교시절 전국 YFC를 울린 전설의 4중창단이다. 나를 제외한 네 친구들이 그렇다. 그 넷 중, 둘은 목사고 둘은 평신도다. 그들이 다시 중창으로 뭉쳤다. 아내가 반주를 하고, 그들은 각자 파트연습을 하며 하모니를 다졌다. 나는 박 목사 사무실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 목사 핸드폰이 울리고 또 울렸다. 선명하게 떠 오른 이름 자. 발신인은 민 아무개 여(女) 집사다. 나는 관계치 않았다. 울렸다 끊기기를 거듭 반복했지만, 박 목사도 찬양하느라 못 듣는 건지 꿈쩍도 안했다. 하도 자주 전화가 와서 들여다봤더니 열 몇 번인가 전활 넣었다고 그 횟수가 발신인 이름 옆에 괄호치고 찍혀 있었다. 하도 성가시게 해서 박 목사에게 연결해 줬는데, 그가 그녀의 이름 석 자를 확인하는 순간, 이내 전화기를 접어 버린다.

 

나는 순간 크게 놀랬다. 말씀의 대가. 말씀 실천의 대가인 박 목사가 자신 양의 음성에 귀를 막아 버리다니. 박 목사?

 

‘그래, 그도 계곡에서 만난 피하고 싶으나 피할 길 없는 악연(惡緣)같은 동반자를 곁에 두고 살고 있구나. 세상에. 바로 민 아무개, 그녀가 바로 그에게 그런 존재구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혼자 단정했다.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죽마고우 박원석 목사. 내가 온돌이라고 놀리는 그는 정말 따뜻한 목사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친구 박목사를 가리켜 연한 배 같은 성품을 지닌 목사라고 칭송해마지 않으셨다. 만인에게 살가운 참 목자 박원석. 그런 그에게도 계곡 같이 피하고 싶은 성도가 있나 보다. 접속하기도 싫은.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단 하루만을 날마다 산다는 그의 초월적 현실주의. 그런 그에게도, 하루살이 목사에게도 기피하는 양(羊)이 있다니.

 

그런 그가 그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먼 데서 중창(重唱)을 위해 올라 온, 친구 이 목사도 그랬다. 얼마 전 그의 아내의 신장이 망가진 사실을 확인했단다. 그런 갑작스런 충격파에 그는 앞으론 아내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했다. 성도들은 어떡하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는 더 이상 상관하고 싶지 않은 염소 같은 양떼들이라며,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의미로 긴 고개를 내 앞에서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이제 할 만큼 사명 감당 했으니, 한 끼 먹고 살 각오로 아내라도 살려 낼 수 있는 큰 병원 있는 서울로 이주할 거라고 했다. 목사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다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아내에게 지은 죄는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한 다는 경구(警句)를 사슴같이 목이 긴 이인의 목사는 이제야 절감하는 것 같았다.

 

우정(友情)을 위해 뭉치자.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우정이 뒷받침 되어 준다면 한 결 가볍게 계곡을 날 수 있다며, 상호 지지, 격려했다.

하나님의 사람들. 그것도 한 믿음으로 일평생 함께 살아 온 죽마고우들. 우리 독수리 6형제는 다시 하이틴 시절로 돌아 가, 찬양 속에 묻히길 원했다.

 

나, 니들 위해 날마다라도 밥을 산다.

모이기만 해라.

물주(物主) 황장로가 보신탕 전골로 우리들의 배를 가득 채웠다.

 

겨울을 반기듯 갈바람이 점차 칼끝 되어 가는 기류를,

온몸으로 체감한 휑한 전철 플랫폼에서 제 길가며 친구 인의가

건강해야 해,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금쪽같은, 험한 인생 계곡을 나는 우정(友情)이 

세상, 그 어디에 존재할까?

일합을 겨눈 탁구 경기도 청춘을 돌려 놨다.

 

생기발랄해져 나는, 계곡으로 돌아왔다.

 

천 년 만에 입을 맞춘 W.T.Giffe의「기도의 시간」이 감미롭다.

 

주 앞에 꿇어 엎디어 내 맘을 드리는 시간이 참 아름답고 귀하다 ♫ 기도하는 귀한 시간 복스럽고 맑은 아침 복스러운 황혼 세상 생각 다 버리고 주님을 뵈리라 ♫ 주께서 맘을 새롭게 하시며 주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기뻐하게 하시네 ♫ 근심 걱정 사라지고 영광 나타나며 회개하는 나의 눈물 씻으리라 ♫ 요단강 저편 언덕에 영화론 자리 들어가 성도들과 함께 서서 주께 기도드리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