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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 군자 누나

2020.12.31 18:06

관리자 조회 수:21

군자 누나!!
<누나>셨기에, 우리는 누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그 걸판진 웃음 속에 얼굴을 파묻고, 우리 철부지들은 늘 응석을 부렸다. “오냐,오냐. 그래, 그래. 잘한다, 잘해!!” 포근한 모성애와 깊은 영성으로 물가에 놓인 아이 같은 우리를 따듯하게 보듬어 안아 주셨던, 북교동과 103차의 큰 누님.
故 김군자 사모님, 아니 군자 누나!!
모천을 떠나 각기 다른 목회지로 찢어졌던 우리. 신묘막측하신 그 은혜로 경환 형과 군자 누나를 총회 103년 차 지방회장단 멤버로 다시 만났다. 을매나 기쁘든지, 그후 우리는 이전보다 더한 형제애를 쌓게 된, 세상에서 제일로 맛난 차-103년차 동기로 천지사방을 함께 굴러다녔다. 연애하듯, 천지를 분간하지 못할만큼 서로에게들 미쳐서. 감찰회도, 동기회도 아니 총회 항존위원회 소위원회에도 불참하고, 103년 차 동기 내외는 유대 명절 지키듯, 우리 모임 참석을 최우선시 했다.
“오늘 이 103차 컨퍼런스에 오려고 새벽 3시까지 김장을 해놓고, 왔다”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군자 누님.
우리 103년 차, 그 중심에 항상 화통한 군자 누나가 그 넓은 품을 내주며 좌정해 계셨다. 우리네 영육간의 위로자요, 상담자였던, 큰 누님.
그분이 가셨다.
영욕의 세월이라 했던가?
진리 탐구에만 몰두한 가난한 학사 이경환 목사의 아내로 5남매를 기도로 훌륭하게 키워내신 어머니. 초중고대학 모두 톱으로 들고날며 판사가 된 큰 딸부터 모든 형제자매가 SKY 대학을 자기 힘으로 마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문밖에 나설 때마다 당신의 자녀들을 끌어안고 야곱의 복을 빌어주셨던 기도의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중, 사남매는 모두 신앙의 명문 가문의 후예답게 목회의 길에 서 있다.
아내가 울먹이면서 그런다. “다 딸 때문이야, 그 잘나고 아까운 딸. 지선 판사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저리 되신 거야, 저리 되셨어.” 향년 37살, 나랏일 그 격무에 시달리다가 먼저 간 큰 딸, 그녀의 이른 죽음이 당신에게 천성사모가를 부르게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
부활 신앙에 굳게 서 있지만, 우린 다시 육감으로 맛 볼 수 없는
군자 누나의 한바탕 파안대소가
너무나도 그립다.
잘 가요, 누나, 우리 다시 만나요, 그날
ㅇㅇㅇ
아래 동영상
103년 차, 우리네 촬영 감독 대구 김기환 목사가 어제 아래와 같은 동영상을 동기회 단톡방에 올렸다. 제103년 차 지방회장단 동기회 제15차 태국 컨퍼런스(2014년 8월 18일(월)부터 23일(토)까지) 동영상에서 군자 사모님 모습이 담긴 장면들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