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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만큼 초지일관 무모하게 공의로운 분은 내가 아는 한 없다. 거의 없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를 그분은 신혼신을 다해 능력 되게 하신 분이다. 그러했기에, 그분은 어제처럼 오늘도 홀로 외롭고, 뭔가에 늘 쫓기고 계셨다. 그제는 오른편 사람들에게, 어제는 왼편 사람들에게. 오늘은 왼편 오른편 사람들에게. 무고하게.

 

우익이면서 좌익이고

좌익이면서 우익이다 

우익도아니고 좌익도 아니며 

좌익도아니고 우익도 아니다 

 

이편이면서 저편이고 

저편이면서 이편이다

이편도아니고 저편도아니다 

저편도아니고 이편도아니다 

 

편먹은적도없고 

속한진영도없다

기준이공의여서

모두가적된사람 

 

단 두 가구만 사는 산기슭으로 자진 퇴거하여 벌을 치며 살고 계신다. 무섭지 않으시냐 물었다 무서운 게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조차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데, 그분은 다가 올 예측할 수 없는 자기 의분의 무서운 결과조차 담담히 받아들이고 계신듯 했다. 허나, 외롭긴 하시겠지. 하여, 나같은 약골에게 까지 벌꿀 돈 된다는 호객행위를 마다하지 않으셨겠지.

 

그분 독고다이에게 내가 감히, 허나 넌지시 이 말씀을 내밀었다.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전도서7:16).”

 

이는 마치 내 면전에 내가 내게 들이 민, 민망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 무례에 무례를 더해, 나는 주제 넘게,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도서7:18)”는 말씀도 덧붙였다. 이젠 좀 편하게 사시면 안 되겠느냐며. 자문하듯 토해냈다. 

 

그래도, 여전히 건장한 어깨를 내 앞에서 뻐기셨다.

왈왈 천둥이 까지 찢어댔다. 

 

.

.

 

그리고 한참 후, 연이어진 지혜자의 일침을 꿀술에 취해 그분에게 말벌처럼 쏘아댔다. 내가 늘 하던 버릇대로, 너무, 지나치게 ㅠㅠ  

 

“좋은 일만 하고,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전도서7:20).” 

 

그분의 눈이 떨렸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 앞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보(윤동주의 시 자화상),는 자기 성찰이 세상에서 제일로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그 정의의 사도의 말씀 앞에 찔리는 눈매에서, 나는 발견했다. 

 

2021.10.07(목) 

 

그렇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전도서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