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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5: 조국의 시간

2021.06.17 15:51

관리자 조회 수:2

4015 

 

그동안 내가 써 온 글들을 모아 둔 내 홈페이지에 조국,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봤다. 20개의 포스팅이 떠올랐다. 내가 맨 처음 조국 사태(?)에 대한 소견을 피력한 날이 2019년 08월 24일(토)이다. 최초로 그 사태에 대해 포스팅한 글은 다음과 같다. 

 

ㅇㅇㅇ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년 ~ 2015)을 빌어 논하자면, “그의 위기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비롯 됐다.” ‘성공’의 스카이캐슬 ‘강남.’ 헌데 그는 ‘강남 좌파’다. 위험 사회의 전복을 꿈꾸는 좌파인 그가 외려 전복을 당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가 강남식 합리성으로 이룬 자녀 교육 성공 신화가 그를 실패자로 몰아 세우고 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진보 세력의 첨병이라고 자임하던 그가 당신들의 천국 ‘관행’에 물든 보수주의자였다는, 그 이중성에 우리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는 이중 개념자이다. 당연히 그만이 아니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는 “대다수 사람들은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두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즉, 사람들은 대부분 ‘이중 개념주의자’라고 진단했다. 반일 핏대를 올리면서, 렉서스를 모는 이중 개념자 ‘강남 좌파.’ 하여 자신도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고, 당연히 세상도 그는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네가 처한 현실태다. 그 누구랄 것 없다. 나도, 그렇다. 성공을 맛본 적이 없는 강북 좌파인 나도, 집안 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라는 ‘이중 개념주의자’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무엇이 무엇이 똑 같은가? 젓가락 두짝이 똑 같아요 

 

우리는 다 똑 같다는 동질감을 이미 다 유치원에서 배웠다. 고질병이다.

씁쓸한 나날이다. 그래도 그의 의지가 필요하기에... 2019.08.24(토)

ㅇㅇㅇ

 

이런 자기 반성적 입장을 취했던, 내가 조국 편에 서게 된 이유는, 무소불위한 검찰 권력의 조직 보호을 위한 가없는 충성심에서 우러른, 천인공노한 만행에 치를 떨게 되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운운하는 대적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 족치는, 구족을 멸하는 잔인성에 심한 공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없이는 우리 후손들이 망나니 같은 검찰의 칼에 조국 일가처럼 난도질 당할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 쩔었기 때문이다. 심약하기에 나는 무리들 속에 끼어들어 이렇게 나도 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조국이다. 

 

그의 기록물, <<조국의 시간>>이 오늘 내 손에 들어왔다.

첫 페이지를 펼쳤다.  

삼인성호-갖은 거짓부렁으로 생사람을 잡는 기록들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복기시켰다. 

 

얼른 책을 덮었다.

몸무게가 무려 4kg 이상이 빠진 이유가 바로 그 음해공작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국의 시간>>이 나의 시간일진데,

그 모든 괴롬을 복기할 힘이 과연 내게 얼마나 남아 있는가, 살펴 봐야한다는 본능적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과 사진을 전체 공개로 포스팅함으로 또 얼마나 많은 페친들이 내게서 등을 돌릴 것인가 라는 염려(?)도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그를 작은 자,라고 여기며, 그의 호소에 귀 기울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일생 내가 지향해 온 작은 자의 신음에 감응하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용기 있는 이가 나를 작은 자로 여겨, 나의 포스팅에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바람이 바람으로 끝날 예감으로 슬프지만, 아프지만,

 

2021.06.09(수) 6.10 항쟁 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