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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우생순

2008.08.21 22:27

김성찬 조회 수:1087 추천:29

영혼일기 40: 우생순

2008.08.21(목)




서예대전 전시관에서, 
어떻게 저런 작품이 특선이 될 수 있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단다.


그것이 실력이라고.


방금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준결승전에서 우린 또 한 번 심판진의 편파판정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우생순의 주인공들이 권토중래한 경기에서, 후반 종료 휘슬과 함께 골대를 파고 든 노르웨이의 골이 결승골로 최종 판정이 났다.

농구완 달리 핸드볼 경기규칙은 공이 날아가는 순간에라도 부저가 울리면 경기가 즉시 종료된단다. 이런 규칙에 의해 판정을 내려 보면, 그 마지막 골은 명백히 타임아웃 이후에 들어간 골이다. 원 바운드로 들어간 그 골은, 골라인 한치 앞을 찍는 순간 버저가 울린, 살아 있으나 죽은 골이었다. 이것이 슬로비디오로 판독해낸 우리의 결론이다. 해설자는 억울해 했다. 항상 국제적인 편파판정의 피해자는 우리 대한민국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 장면은 순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실력이다.


펠프스의 8관왕은 수영강국이 세계강국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수영 종목에 종목을 늘여가며 한 사람에게 무한정한 메달을 딸 수 있는 권력을 부여했다. 상대적으로 우리 동양권이 강세인 양궁이나 태권도의 경우 그 종목을 줄여왔고, 참여 종목도 제한해 오지 않았던가?


그것이 실력이다.


실력이 있어도 질 수는 있으나, 실력이 없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우린 경기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판정권력은 너무도 허약했다.


여기 베이징에 오기까지 우린 중동 오일머니의 왜곡된 힘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핸드볼 '편파판정' 외교문제 번지나 / 핸드볼인 100여명, 오늘 쿠웨이트 대사관 항의방문 /  일본관중도 중동심판 '야유'…베이징 올림픽 행 '빨간불'


지난해 9월 2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의 발문이다.


그 기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일 일본 도요타시 스카이 홀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아시아 지역예선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요르단 심판 2명은 초반부터 작심한 듯 호각을 불어댔다. 한국이 골을 넣으면 오버스텝이나 공격자 반칙으로 무효를 선언했고, 쿠웨이트는 골을 넣을 때까지 공격권을 줬다.


참다못한 관중들이 코트에 물병을 던져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 국제핸드볼연맹(IHF)에서 파견한 러시아 감독관은 코트까지 내려와 심판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한국은 20-28로 졌다. 아울러 베이징 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중동 심판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 겸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인 쿠웨이트 왕자 알파하드 알사바다. 그는 '오일달러'를 앞세워 25년간 아시아 핸드볼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특히 2000년 국제핸드볼연맹 회장 선거 때 이집트의 하산 무스타파를 지원해 당선시킨 뒤 더욱 노골화됐다.


그 최대 피해자는 아시아 최강 한국이다. 도하 아시아경기 때 대회 6연패를 노리던 남자팀이 코미디 같은 편파판정에 당했다.

여자팀도 2004 아테네 올림픽과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역시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잇따라 올림픽 본선에 직행하지 못했다.
이징에 오기까지 우리 우생순 예선을 무려 차례나 치러야 했다.

지난해 8 열린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한국은 무난히 티켓을 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아시아핸드볼협회(AHF) 심판진은 한국에 불리한 판정으로 일관하며 카자흐스탄의 손을 들어줬다. 편파판정으로 국제 핸드볼계가 들끓었고 IHF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 예선 재경기를 지시했다. 한국은 여기에서 승리, 티켓을 땄다. 그러나 AHF 재경기는 무효라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 승리하는 바람에 티켓은 물거품이 됐다. 한국은 3 다시 IHF 최종예선에 참가해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

이토록 힘겹게 베이징에 왔지만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농구에서는 인정되지만 핸드볼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버저비터로 결승행이 좌절됐다
.

한국 여자 핸드볼의 올림픽 고난이 이번만은 아니다. 한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덴마크와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금메달을 놓쳤다. 당시 심판의 휘슬도 유럽 팀에 호의적이었다.

 

이런 아픔을 딛고 재경기를 벌여가며 우린 베이징에 입성했다.
그런데, 오늘의 경기는 실력이란 말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다.


그래 우린 실력에서 밀렸다.


정직한 땀의 대가가 공정하게 판정받고, 대접받는 세상이란 엄밀히 없다.


인간들이 써 내려가는 신화란,
르네 지라르의 지적대로 “희생자들의 유죄성(有罪性)을 믿도록 하는 사형집행인들이 왜곡하여 쓴 텍스트”다.

그렇다. 그 어떤 나라의 핸드볼 우승 신화는 한국의 패배를 믿도록 하는 심판진들이 왜곡하여 쓴 판정이다.

그러니,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린 한판승으로 이기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우린 아픔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 또한 실력이다.
내일의 승리를 예약하는 능력이다.


지난 아테네의 억울한 희생과 분투를 우린 형상화 했다. 

그 눈물겹고 아름다운 영화, ‘우리들 생애의 아름다운 순간’을 우린 다시 기억한다. 


억울한 패자는 부당한 승자보다 더 값진 참 승리자다.

억울한 패자는 역사의 진보를 가능케 하지만,
부당한 승자는 역사발전을 가로막고 선 걸림돌일 뿐이기 때문이다.

책중의 책, 성경은 분명하게 가해자의 폭력의 신화를 날카롭게 고발하며,
예수 안에서 '희생자는 무죄'임을 선언하고 있다.

 

오늘 우린 다시 한 번 눈물겨운 '우생순'을 연출했다. 

 

그리고 시방,

남자 68kg급 결승에서 강적 미국의 마크 로페즈(Mark Lopez)를 물리친 손태진 선수가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 서 있다.

그는 타임아웃과 동시에 승점 1점을 추가하여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나 이 승리는 판정시비가 있을 수 없는 적법한 승리였다.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이것이 진짜 승리임을 우린 만천하에 보여줬다.

 

우린 이렇게 금빛 발차기로 편파 블록(bloc)*을 격파했다.


* 블록(bloc) :  정치·경제상의 특수 이익을 조장할 목적으로 제휴한 국가나 단체 따위의 집합.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