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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다시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에 대하여

2008.08.23 23:52

김성찬 조회 수:1049 추천:25

영혼일기 43: 다시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에 대하여

2008.08.23(토)

 


오늘 오후 베이징 올림픽 야구경기 결승전에서, 우리 한국이 프로급 아마야구 세계최강 쿠바를 3대2로 꺾고, 승리를 거뒀다.

예선전부터, 9전 전승.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8월 13일 미국과의 첫 경기, 9회말 6대7로 패색이 짙던 경기를 케네디 스코어인 7대8로 뒤집었을 때도 우린 여기까지 이르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예선 리그에서 7전 전승을 거뒀을 때도, 우린 4강이 다시 겨누는 준결승이 적이 염려됐었다. 오죽했으면 준결승전에서 한국과 만나려고 미국과 일본이 서로 져주기 경쟁을 벌이다 일본이 극적으로 패배하여 환호해 마지않았겠는가?

그러나 우린 그 무례하고, 오만한 일본을 준결승에서 격파하고, 오늘 미국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 온 쿠바를 격파해 버렸다. 우리가 시종일관 근소한 우위를 지켜냈지만, 쿠바의 가공할 한방의 위력을 피하느라 안간 힘을 다한 그리고 막판 9회 말 만루 위기에 몰리기까지,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만점의 열전을 벌였다. 그러나 심판의 판정 시비 이후 그 모든 부담과 원망을 뒤로하고, 9회 말 원 아웃 만루의 위기에서 극적인 병살타를 유도해 냄으로 우린 승리를 극적으로 견인했다.


이건 기적이다.   

다시, 그분의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이다.

난, 지난 2002년 6월 30일. 한일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이루가 이룬 후,
기독교신문에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한편의 글을 선보인 적이 있다.

난 그 글을 옛 판 파일에서 이 시간 끄집어냈다.

여기 그 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었으면 해서 올려 본다.

왜냐하면 오늘 이 기적은, 다시 우리에게 기적으로 말 걸어오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은,

여전히 우리에게 할 말이 많으신, 하나님의 말 걸어오심이다.

 

채찍이 아니라, 기적으로 우리의 귀를 열고자하신,
하나님의 중심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의 이 민족에 다시 한 번 더 말 걸어오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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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에서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 에 대하여  


실력이 있어도 질 수 있다. 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런 정글의 법칙을 재확인시키며 지구촌의 축제는 이제 그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심판진의 오심 운운하며 시비를 일삼다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우승후보들도 지금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없었던 실력에 대한 냉정한 자기반성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중국이나 사우디는 무실역행의 교훈을 되새기며 절치부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예상 밖에 우리는 이 살벌한 전쟁에서 이기고 이겨왔다(6월24일 현재) 기적같이. 기적! 그래 우리가 본디 갖춘 실력에 그 어떤 힘이 더해졌다는 의미이다.


기적의 배후가 있다는 말이다. 해서 우리들은 이 찬란한 기적 앞에서 그 배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단초가 됐던 첫 골이 상대방의 골 네트를 흔들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의 실력을 논했다. 그러다가 가볍게 16강에 오르자 그때는 이방인 감독의 능력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후 연신 기적 같은 8강을 넘어서, 4강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자 그때부터 우리는 기적을 화두(話頭)삼기 시작했다. 우리의 실력을 뛰어 넘는 무한 질주, 이 기적의 배후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운(運)이라고 했다. 옳다! 그 운(運)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기운(창1:2)이 아니겠는가? 그라운드를 뛰었던 선수들조차 기이히 여기는 이 신화(神話). 그렇다! 신언(神言). 이 기적은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말 걸어오심이다. 그래 모든 기적은 입이 있다.


다시 말해 기적은 그 드러난 현상만이 모든 것이 아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4강에 오른 것. 그 기적의 이면에 누가 있으며, 그 기적을 베푸신 이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그 기적을 우리에게 베푸셨는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만 한다. 여기에 기적의 완성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시편 기자가 완벽하다. 기적을 베푸신 그분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그 어떤 생각(바람)이 많다(시40:5)고 간파했다.


지난 주일 강단들은 모처럼 풍성했을 것이다. 공동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의 언어. 오순절 성령강림은 공동의 언어를 선사했다. 각종 방언이 난무한 가인의 도시 바벨에서 우리는 모처럼 공동의 기억, 공동의 언어 속에서 서로 충만했다. 그리고 맛보았다.


공동의 언어, 공동의 기억이 주는 진정한 하나 됨의 감격을. 그리고 그 충만 속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창조주의 생각(바람)을 자연스레 읽었고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단했을 것이다.


해서, 나는 감히 이 기적 속에서 나에게 들려주신 우리 민족과 교회를 향한 그분의 말씀을 복제하고 싶지 않다. 이미 영적 투시력이 있는 교회는 그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간파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 강조하고픈 것은 이 기적은 배후가 있으며, 그 배후되신 분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 어떤 생각이 많다 라는 사실이다.


새 역사 새 창조로 이 땅을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바람. 그 생각이 이 기적 속에서 풍성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나는 기원 드릴뿐이다.


그래 󰡐하나님의 말 걸어오심󰡑은 결코 흔치 않은 사건이 아닐까? 언제 다시 우리가 한 덩어리, 붉은 함성 속에 진동하는 성령 충만을 민족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까? 그러하기에 우리 생전에 다시는 있을 것 같지 않는 이 기적을 우리 교회가 민족 앞에 나서서 참 기적이 되게 하자. 정말 그렇게 하자.


기적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분이 함께 하실 때 일어난다. 그리고 놓치지 말자. 그 기적으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많은 생각이 있다는 것을…….


/양지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신문 1658호 2002.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