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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축지법

2008.08.30 23:52

김성찬 조회 수:1036 추천:28

영혼일기 49: 축지법

2008.08.30(토)




엘리야는 바람의 아들이다. 그는 축지법의 선구자다.

 

그는 열왕기상 18장에 저 유명한 갈멜산의 영적 대결에 승리한 후, 삼년 육 개월의 가뭄의 끝을 알리는 큰 비의 소식을 아합 왕에게 전한다. 그러나 그 희소식을 전해들은 아합 왕은 매정하게 홀로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야가 이스르엘 어귀까지 아합 왕의 마차에 앞서 달려갔다고 성경은 전한다.(왈상18:46).


어디 그뿐인가 그는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임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와 초자연적인 권능(불수레와 불말)으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왕하 2:11). 


그가 아합왕의 마차보다 앞서 달린 사건은, 사람과 공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광속 혁명의 전조였다. 그 시대(B.C 9세기)에 마차보다 빠른 이동 수단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려 인간의 공간 장악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결과 심장을 엔진 삼은, 사람의 힘으로 가장 빨리 달리 수 있는 운송수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휴먼 파워드 비이클 어소시에이션(Human Powered Vehicle Association)에 의하면, 오늘날 200 미터 구간의 최고 기록이 무려 시속 128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함으로, 현세를 넘어서는 삶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오늘 시속 15킬로미터 속도로, 왕복 20여 킬로미터를 내달렸다.
은륜에 몸을 싣고 중랑천변으로 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서울 외곽을 넘나들었다.
시내에 흐르는 물은 맑고, 바람은 싱그러웠다.


통상적으로 토요일은 목회자들에게 주일 안식을 위해 긴장하는 날이다. 그런데 하이킹이라니. 난, 속으로 반박했다. 토요일은 안식일이고, 주일은 주의 날이라고. 안식일에 안식하지 못한 자는 주의 날을 즐길 수 없다고. 궤변 같은 진실을 난 늘어놓는다. 생각해 보라.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베이징에 가서 강훈련 하던가? 쉬며 여유를 갖고 몸의 컨디션 유지에 소일하지 않던가? 토요일은 그런 날이어야 한다. 목요일 정도까지 주일을 준비해 놓고 몸과 맘의 합일을 이루며 안식하는 것이 토요일 아닐까? 주의 날을 위한 정중동. 참된 안식을 위해 안식이 필요하다.


상쾌했다. 몸이 날아 갈 것 같았다.

엘리야도 그랬을 것이다. 그가 회리바람 타고 가볍게 하늘로 올라 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안식에 이르기까지 최선 다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일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만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일 수 있다. 결승전의 평정은 훈련량과 정비례한다.


베이징 올림픽 육상 영웅, 남자 100m와 200m에 이어 22일 400m계주까지 모두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며 단거리 3관왕을 달성한 우사인 볼트는 400m 계주 직후,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볼트가 이뤄낸 업적을 축하하지만 우승 직후 자신을 너무 과시하는 몸 동작은 자제했어야 했다"며 "다른 선수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라는 비판에 대해, "다른 선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나는 단지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싶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나는 단지 경기만 하러 나온 게 아니라 관중을 즐겁게 해주려고 나왔다. 관중들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연기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고 내 직업"이라면서 "그게 바로 나인 만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로게 위원장의 비판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기 이후는 물론 경기 이전에도 관중을 향해 번개치는 동작을 손으로 흉내내는 등 익살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온 그는 "관중은 재미를 즐길 자격이 있다. 많은 돈을 내고 온 관중은 내가 쇼를 해주길 원하고 그래서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그 총알 탄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볼트도 “나 자신도 금메달을 따기 위해 혹독한 훈련도 참았다”고 말했다. 훈련 없이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관중을 즐겁게하는 여유, 회중을 즐겁고, 안온케 하는 설교.


엘리야, 그의 홀연한 승천은 그가 온전히 그에게 부여된 사명 감당했다는 증거다.

그는 이렇게 살았다.


야훼 신앙이 자연신 바알 숭배로 부패하는 것을 막아 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며, 유일신 신앙을 확고히 다진 엘리야.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가르치고 이스라엘의 정결한 '남은 자들'에게 구원이 베풀어진다는 사상을 가르친 선구자였다. 그는 감성적 열광과 황홀경에서 비롯된 신앙보다는 이성(理性) 및 도덕과 결합된 신앙을 강조했다. 그는  아합 왕의 재위기간에 등장했다. 아합의 아내인 페니키아 출신의 이세벨이 야훼 대신 바알을 숭배하도록 권장하자 엘리야는 우상을 섬긴 벌로 가뭄을 선포했다. 그 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영적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 직후 가뭄이 끝났다고 공포했다. 그 뒤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새로 힘을 되찾아 아합이 법을 이용해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몰수한 행위를 단죄함으로써 도덕법을 바로 잡았다.


이런 치열한 영적 전투를 치러 낸 그였기에, 그는 말년에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현세를 넘어서는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생에서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허락하신 영적 페달을 확 밟았던 거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다. 그는 오신 메시야의 그림자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

그의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재정립한 축지법,
그의 승천은 이 땅에서 그 사명을 다 이루신 결과다.


나도 만일 내가 내게 허락하신 사명을 엘리야처럼 이룬다면, 마차 앞서 달릴 수도 있고, 하늘과 땅을 한 뼘으로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오늘 내가 즐긴 바이크 라이딩은 엘리야의 축지법에 견줄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늘 우중충했던 주일 전야의 불안감이,
한 낮의 유유자적한 안식으로 말끔히 해소되었다.


바람 앞서 달려 귀가한 후, 샤워를 하고,

이 홈피가 촉발한 사랑(물질)나눔을 한 건 연결해주고,

다시 그 천변을 따라 심방 가는 길은,
그 맑은 천 물고기 유영하듯 매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