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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에 겹다.

다시 이 본문과 말씀을 복기해야 하는 지난하고, 잔인한 상황에

질식할 것 같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주님의 평안이 온 가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다음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지난 3월 마지막 주에 가정 예배로 나눈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본문 : 스가랴 9장 11,12절

제목 :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가 됩시다 2.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스가랴9:11,12)

 

작금,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이웃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처한 형편과 유사한 사례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시편 40편 기자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었습니다. 창세기 37장에는 요셉이 형들에 의해 ‘물 없는 빈 구덩이에 내던져졌다’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8장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물이 없고 진창뿐인 구덩이’에 갇혔었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전도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그 발에 차꼬를 찬 채, 깊은 옥’에 갇혔었다고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 번연은 그의 저서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차꼬에 차인 채 투옥’된 장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물 없는 구덩이에 갇힌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갇힌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갇힌 자들은 한 결 같이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이었습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고 있었기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갇혀 있으나 갇히지 않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갇혀 있으나 갇히지 않는 이들이 마음에 품은, 소망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당연히, 갇혀 있는 자들의 소망의 대상은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소망을 여호와 하나님께 둔 이들이, 갇혀 있던 중에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래, 과연 소망을 품은 이들이 갇혀 있으면서 했던 일은 무엇일까요? 

 

1.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3.

그 소망을 품은 자들이 갇혀 있던 중에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우리가 기도하면 주께서 행동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행동하시면 자연스레 우리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찬양은 신앙 고백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행하겠다는 순결한 다짐입니다. 말씀이 면역력의 원천입니다. 면역력을 강화하려면 운동만으로 안 됩니다. 일광욕으로도 안 됩니다. 단백질이 반드시 공급 되어야 합니다. 단백질이 면역력을 생성하는 원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원 재료인 말씀을 먹고, 기도하고 찬양해야 악한 대적을 이길 힘과 영적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낼 참 힘을 얻습니다. 

 

시편 119편에 나오는 우리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성경 말씀)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시어,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약속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아멘!!

 

존 번연의 저서 <<천로역정>>에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던 순례자 크리스천(기독도)가 허영의 도시에서 감옥에 갇힙니다. 가평 필그림하우스에 조성 된 천로역정 코스 중에는, 차꼬에 차인 채 투옥된 기독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갇혀 있는 기독도의 목에 열쇠가 하나 걸려있습니다. 그 열쇠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도를 가둔 감방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 곧 말씀입니다. 모든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그 약속의 말씀입니다. 허니, 자물쇠 열쇠인 마스터 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제 몸에 지니고 있는 기독도, 그는 갇혀 있으나 갇혀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소유한 이는 갇혀 있으나 갇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고 있는 자입니다.

 

나와 우리 가정은 형통할 때나 불통할 때, 그 어느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말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 실천으로 하루를 살며, 말씀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4.

끝으로,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고 삽시다,

 

그 소망을 품은 자들이 갇혀 있던 중에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소망의 믿음으로 인내 했습니다.

 

감이후지(坎而後止)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구덩이에 빠지게 되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 라는 말입니다. 긴 가뭄에도 탄식과 투정이 없는 농심(農心)처럼, 갇혀 있으나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의 심령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구덩이는 불가항력적인 형벌의 웅덩이입니다. 웅덩이는 스스로 차고 넘침이 없습니다. 채워줌으로만 차는 구덩이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이 또한 빈 웅덩이를 채울 수 없습니다. 웅덩이를 채워주는 신비는 전적으로 하늘로부터만 임합니다. 허니 불가항력적 상황에 맞서며, 원망과 시비를 일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재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지 맙시다. 우리 갇혀 있는 자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기도와 찬양과 말씀 속에서 얻는 ‘소망’을 품고 인내하며, 사는 일입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슥9:12a)

 

구덩이에 빠진 이가 품을 수 있는 ‘소망’이 과연 그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믿음을 하늘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기우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소망의 믿음으로 이 재난을 인내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께서 행동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행동하시면 자연스레 우리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찬양은 신앙 고백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행하겠다는 순결한 다짐입니다. 말씀 붙들고 살면 소망이 생깁니다. 샘솟듯 넘치는 소망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내 소망은 내가 품는다고 소망이 되는 것 아닙니다. 무정란을 품어 생명을 잉태시킬 수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고, 영안을 열어주시는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 있는 놀라운 약속들을 붙잡고, 찬양하며, 기도할 때에 그 소망이 참 소망이 됩니다. 이 참된 소망을 붙들고 있는 크리스천은 갇혀 있으나 갇힌 자가 아닙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늘 찬송합시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합시다. 

주께서 이루십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크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