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1: 양봉
2021.10.11 18:51
4131
천 년 만에 벌을 치는 선배님을 만나 뵈었다.
송구스럽게도 먼저 전활 주셨다.
팔순에도 2백 여 통의 벌을 치고 계신단다.
나한테 은퇴 후, 도와 줄테니 벌을 쳐보라고 권면하셨다.
은퇴 3개월 지나니까, 전화 한 통 안 오더라며, 벌통들 힘만 있으면 소일 거리로 꿀맛이라고 하셨다.
벌통은 여린 아낙네도 들 수 있다 하셨다.
무슨 벌 받을 일이 있느냐고 나는 속으로 답했다.
살아 연옥에서 죽어 천국으로 올라 가려면, 게으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데, 난 게으름이 취민데, 부지런한 벌까지 죽여 벌을 과중시킬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근데, 걱정이다. 은퇴 후 6개월만 지나면 일생 쌓아놓은 네트워크가 무너진다던데, 벌이라도 치면서 외롬을 견디는 오체 투지를 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싶다.
헤어지면서, 선배님께옵서 당신의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손을 내밀어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셨다.
돈이었다. 무려 9만 원.
카드를 주로 쓰다보니 현찰이 이것 밖에 안 된다며, 옛정을 되살리셨다.
악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신입생 환영식인가?
헤어져 돌아 오면서,
나도 벌이나(?) 칠까? 후배들 푼 돈이라도 손에 쥐어주려면, 헌데 벌에 얼마나 쐬어야 9만 원이나 되는 여윳자금이 비축 될까?
엄두가 나지 않지만, 천금 같은 9만 원이 내 맘을 흔든다.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ㅎㅎ
2021.09.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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