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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I can't breathe!” 참이웃

2020.06.22 10:20

관리자 조회 수:11

〈사마리아 사람이 참 이웃인 이유는?〉
그는 자기 동족을 차별하고, 멸시한 유대인을 그 위기에서 구원해 내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참 이웃은 사람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지역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인종 차별도 하지 않습니다.
지난 ‘80년대 제 나라 군인들에게 살육 당하고, 도시가 봉쇄당했던 광주 시민들이 맨 앞에 서서 대구 시민 중 코로나19 확진자를 자기 동네로 모셔서 치료 받게 한 미담이 있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욕하면서 악한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당했던 봉쇄의 아픔과 슬픔을 승화시켜서, 대구 사람 봉쇄를 몸으로 막아낸 것입니다.
특히 이 재난 앞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름(Different)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름을 틀림(Wrong)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금, 아시아인들이 유럽에서는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서구인들 안에 잠복 되어 있던 피부색의 ‘다름’에 대한 차별 의식이 코로나19를 통해 급속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I can't breathe!”
조지 플로이드를 질식사 시킨 야만 게르만 민족들의 인종 차별이 바로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지구촌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다름’에 대한 차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재확립해야만 합니다.
볼프(Volf)는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Exclusion and Embrace)”에서, 그는 우리 지구촌이 처한 ‘우리 모두’라는 말을 없애 버리고, ‘우리와 저들’이라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그는 인종 간의 불화라는 공포스런 삶 속에, “서로 받아들임”이라는 길 찾기를 시도하자고,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Black Lives Matter'
다음은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의 보도입니다.
미국 내 인종차별과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가운데 백악관 인근 도로에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커다란 노란 글씨로 새겨졌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워싱턴 DC의 백악관 부근 라파예트 광장 앞 16번가 4차선 도로에 노란색 페인트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는 문구가 그려졌다. 수십 명의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남녀가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노란 물감을 사용해 롤러와 붓으로 글자를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었다. 일부는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일부는 작업용 부츠를 신고 색칠에 나섰다. 많은 사람이 따뜻한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했다. 워싱턴 시 당국은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거리를 청소했다. 무리엘 보우서 워싱턴 시장은 백악관 앞 16번가 구간이 이제 공식적으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광장'이라고 선언했다.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관의 가혹 행위로 인해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시위를 촉발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지만,
더 많고, 악랄한 인종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인종 간의 불화라는 공포스런 삶 속에, “서로 받아들임”이라는 길 찾기를 꾸준하게 시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중요성〉
그 방편으로는 회개와 용서, 더불어 사는 삶, 그리고 기억의 치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자원한 수난을 통해서, 사람 사이의 불화를 뛰어 넘는 헌신적인 사랑과 낯선 이방인들을 위해 자신 안에 한 공백을 만드셨다. 예수께서 수난을 통해서 자기 안에 만드신 공간이란, 헌신과 남을 받아들이는 참으로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내부의 모습이다. (...)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는 나의 안에 계시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요10:3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홀로 존재함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함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차별 받고,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 동족도 피해 달아나던 강도만난 유대 사람에게 생명의 공간을 마련해준 비유의 주인공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원하신 헌신과 사랑으로 빚은 여백을 우리 죄인을 위해 마련해 주셨다는 사실을 보여준 비유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땅에서는 광주 사람들이 자기 안에 사랑의 공백을 만들어서 대구 사람들을 받아들인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 한 모범입니다.
다시 이웃과 더불어 살기. 오늘 설교 본문 중에서
2020.06.07(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