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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이겨낼,

말씀 한 모금-에덴 이야기 (31) 2020.04.22.(수)

 

인간의 타락 7 - 소외/단절

 

찬송/ 273장(새) 331(통) 나 주를 멀리 떠났다

말씀/ 창세기 3장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3:8)

Then the man and his wife heard the sound of the LORD God as he was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they hid from the LORD Go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3:9)

 

그런데 그들은 범죄 이후,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습니다. 범죄 이후 그들에게서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순수한 상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3:8b)

 

몸을 가린다는 것은 모두가 서로 영원한 타인이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소외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 됨이 망가져 버린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너고, 나나 나일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두려워 그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립니다. 머리를 땅에 처박은 광야의 타조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구책이었습니다. 불순종의 결과가 수치와 죽음임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알게 된 그들에게 닥친 불순종의 결과는 실로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표면적으로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인간과 자연 사이의 적대 감정, 형제가 형제를 대적하는 결사적 적대감, 언어의 혼란에 의한 민족과 민족 사이의 멀어짐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핑계와 거짓부렁이 판치는 세상, 그 결과 끝없는 분열과 죄의 전가만 그들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사도 바울은 신앙에서, 또는 하나님과의 결합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모두가 죄라고 했습니다. 소외와 단절은 모든 죄들의 원인입니다. 모든 죄는(sins)는 하나의 죄(sin)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이듯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그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소외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과의 단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선이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발전시키려는 깊은 욕구와 동경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는 집요하게 우리 자신의 성장과 타인들의 성장을 저항하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선악과 따먹기, 그 에덴동산의 무흠함으로부터의 타락의 이야기(창 3장)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소외 되었음을 고발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누릴 전인 건강은 없다고 말합니다. 영적 중심에 서서 이뤄 나아가야 할 전인 건강은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Tillich에 의하면, "실존의 상태는 소외의 상태이다. 인간은 존재의 근거에서, 또 다른 여러 가지 존재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에게서 소외되고 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살았다하나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수반에 꽂힌 허리 잘린 꽃이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외’라는 말의 깊이는, 인간이 소외되고 있는 것에 본질적으로 속해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소외 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일은,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품는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도 그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치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존재이신 하나님께 인간 존재는 속해 있습니다. 인간은 참된 존재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되고, 하나님과 대적한다고 해도, 인간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증오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 사랑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속해 있으나 속해 있지 않는 상태. 증오 속에 사랑이 있듯이, 도피 속에 밀착에의 염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여 하나님의 가정 방문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오십니다. 하늘의 눈은 언제, 어디나 불꽃 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CCTV가 발명 된 이후, 인류는 하늘의 눈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정 방문이 이어집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편).”

 

묵상/ 수반에 꽂힌 허리 잘린 꽃에 대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는 말씀 묵상하기.

적용/ 지금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고 있는 나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