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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이겨낼,
말씀 한 모금-에덴 이야기 (33)
2020.04.24.(금)

인간의 타락 9 – 알몸

찬송/ 510장(새) 276장(통) 하나님의 진리 등대
말씀/ 창세기 3장 11절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구나!"(3:11)
“And he said, "Who told you that you were naked? Have you eaten from the tree that I commanded you not to eat from?"(3:11)

“누가 네가 알몸이라고 일러주더냐?”

아담이 알몸인 것을 누가 일러줬을까요?

아담의 배우자인 하와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와라는 거울 앞에 선 아담이 알몸임을 눈앞의 하와가 일러줬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서로의 거울인 그들이었기에, 서로가 알몸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알몸인 것을 맨 처음 일러준 이는 아담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자신이 따 먹었음을 부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지적하기 전에,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와 맞먹으려 했던 그 교만한 행위가 먼저, 그의 양심을 바늘 끝 되어 , 번개 같이 찔러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3:22a)”된 아담의 양심이 먼저 무섭게 고동을 쳤을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엘로힘(복수형) 삼위일체 하나님)

왜냐하면, 양심(良心)의 정의를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결정하는 타고난 ‘직관력’이라는 견해에 비추어 봤을 때, 사람은 '양심의 인도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직감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자신의 재판관이기 때문입니다.

양심(conscience , 良心)의 원뜻은 '함께 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양심(헬라어 συνεiδησις:라틴어conscientia)은 '함께'라는 요소와 '안다'라는 요소에서 성립합니다. 즉 양심은 우선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인 의무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것은 첫째로는 그것을 자기와 '함께', 둘째로는 타자와 '함께', 셋째로는 절대자와 '함께' 아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이 알몸인 것을 먼저 자기와 함께 자신이 알았고, 그다음에 타락함로 타자가 되어 버린 하와와 함께 알았고, 이제 이미 알고 계신(선견자) 절대자와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네가 알몸이라고 일러주더냐?”

두 개의 서로 다른 마음인 양심[兩心]을 지닌 인간은, 양심[良心]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심령을 새롭게 하는 일(양심[養心])에 힘써야 합니다.

바르게 아는 것과 바르게 행동하는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옳게 믿는 것과 옳게 행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양심을 일깨우는 성령님의 음성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신앙에서 양심의 고동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내 심령에 던지시는 말씀은 내가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행동지침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a).”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에덴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여, 우리는 창조주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선사 받아 먹는 즐거움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묵상/ “누가 네가 알몸이라고 일러주더냐?” 묵상하기.
적용/ 나는 벌거벗은 영혼인가? 내 심령의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