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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3: 반론 증언의 역사성

2019.08.16 07:37

관리자 조회 수:18

“강제 징용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우연 연구위원(낙성대경제연구소)의 주장 중, 증언자의 증언이 증언으로써 가치가 없다는, 그의 주장이 내 귀에 거슬린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 선사한 증언의 역사성에 대한 성찰에 기대어 반론을 펼쳐 본다.

 

1.

80년이나 지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증언이 증거로써 가치가 없다.(이우연)

 

아니다.

강제 징용자들에게 있어서, 그 과거의 기억이란 언제나 생생한 현재,라는 것.

 

2.

왜 80년만에 난데없이 들고 일어서듯 증언해대는가? 그동안 왜 잠잠했던가?(이우연)

 

아우츠비츠로 대변되는 600만 명의 동족이 살해당한 전대미문의 홀로코스트 참상을 겪은 피해자들도, 1961년 예루살렘의 지역 재판소에서 열린 전(前) 오스트리아 나치 친위대(SS) 상급돌격대지도자(Obersturmbannführer)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상대로 이루어진 소송을 계기로, 은밀한 증언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후 거의 반세기(50년)가 지난 후에야 그 기억이 역사화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다 그들 피해자들을 기피하거나 외면했고, 아무도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들이 겪은 참혹상을 제대로 증언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 당했던 역사의 피해자였던 우리 선조들도 그 형편이 동일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경우 여성으로서의 수치심 때문에 용기를 내기가 더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 1991년에서야 고 김학순 할머니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아가 당해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 당시 67세였던 김학순 할머니는 17세의 나이에 석 달간 일본군 위안부로 생활하다 탈출한 사연을 공개했다. 해방 후, 무려 46년 만에 증언이 세상에 눈물로 울려퍼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친일파가 주도하는 세상이(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금의 자칭 토착 왜구라고 공공연하게 자인하며, 당당하게 지껄여대는 친일 매국 인사들의 커밍하웃이 바로 그 명징한 근거라 할 수 있다.

 

2019.08.14(수)

 

ㅇㅇㅇ

 

“이렇게 인정하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즉, 두 세대가 넘는 세월이 흘러간 것이죠. 아마도 생존자들의 기억이 역사에 새겨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시몬 베유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기억에 대한 고찰>중에서, 꿈꾼문고, 2019)

 

“그러나 우리의 귀환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을, 친척들을,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또한 돌아왔을 때의 상황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무관심과, 때로는 경멸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겪은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우리의 경험은 도저히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21세기에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ㅇㅇㅇ

 

위안부 증언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한 인물은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다. 그는 1980년부터 국내 및 일본 오키나와와 훗카이도, 중국, 태국, 미얀마, 파푸아뉴기니 등 해외 각지의 피해자 100여 명을 만나며 실태 조사를 다녔고, 이러한 결과를 1988년 4월 세미나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윤정옥 교수의 발표 이후 여성단체들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발족해 일본 정부를 향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90년 6월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끌고 갔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6주년 행사

 

2016년 11월 20일 정대협 26주년 행사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윤정옥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발표한 이후 여러 여성단체들이 연합해 1990년에 결성된 단체이다. 창립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고 김학순 할머니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아가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 당시 67세였던 김학순 할머니는 17세의 나이에 석 달간 일본군 위안부로 생활하다 탈출한 사연을 공개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1238b

 

 

 

아래 동영상

일본군 위안부-성 노예자였던, 박옥선 할머니의 증언-한 세기가 바뀌는 2000년도에서야, 일본군 위안소 생활을 증언하신 박옥선 할머니의 증언(2019.08.13 jtbc 8시 뉴스 시간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