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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예수짜리, 라는 성경공부교재가 있더군요. 10원짜리, 100원짜리, 예수짜리.
예수꾸러기는 잠 버릇이 몸에 밴 잠꾸러기 마냥, 예수가 몸에 밴 사람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꾸러기 앞에 어떤 명사를 갖다가 붙이느냐에 따라 꾸러기는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집니다.
말썽꾸러기처럼.

그렇다면 님께서 논하신 비판, 판단, 분별의 구분 또한 그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 1965년 9, 10월 일본 도쿄와 교토에서 세 차례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보편화를 위한 비판적 기능의 수행과 이를 담보하기 위한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확한 비교일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서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굳이 엮어 보자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칸트는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공통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공통감'이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것, 사회적 판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공통감'을 주관적 감정의 표출이 아닌 사르트르 식의 '보편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깊이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한 가르침을...)

아무튼 비판, 판단, 분별 - 이 세 단어가 상합하여 보편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비난이 문제이고, 무분별이 문제이지 반성적 판단이나, 올바른 판단은 주관적 감정의 오기(誤記)를 바로 잡아 줄 혜안이라 여겨집니다.

예수꾸러기 님께서 왜 이런 용어 정의에 팔 걷어 붙였는지 잘 분간이 안되지만,
아전인수격으로, 님의 이 용어해설 작업에 편승하여,
오늘 우리 서울중앙지방회의 혼미한 사태에 적용해 보자면,

우리는 이 사태 속에서 일방적으로 편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전투구속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그 귀한 분별력을 가지고 제대로된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 모색이 이 마당에 뛰어 든 모든 이들의 관심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