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대칸

성찬님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분출에 대한 간단한 정리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안에는 관상기도라는 것이 동방이다 서방이다라는 출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관상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구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상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상기도는 동방정교회의 유산도 아니고 서방로마교회의 유산도 아닌 기독교의 유산이라는거 아십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기독교는 AD 313년에 사라졌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기독교는 로마국가의 종교로 자리를 잡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313년 이전의 신앙은 말그대로 프로테스탄트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국가종교에 귀속되기 싫어했던 사람들이 좀더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갖기 위해 사막으로 광야로 나가 홀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했던데서 부터 유래합니다.그래서 이들은 한때 로마 교황으로부터 이단시 되기도 했지요. 그러던 것이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관상기도가 인정을 받고, 성령쇄신(성령충만)운동 그리고 성경공부가 허락되면서 그들도 밤마다 모여서 통성기도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한국 천주교만 그런지 전 세게 천주교가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읍니다)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프로테스탄트가 부활했다고나 할까. 저는 천주교를 기독교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관상기도라는 말에 대하여 이렇쿵 저러쿵 말이 많은데 사실 복잡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용어입니다. 왜 그들은 그들도 통성기도하고 우리처럼 금요철야기도하고 하면서 기독교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용어에 민감한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면 무조건 이상하게 보는 시각도 좀 교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관상기도에는 여러가지 명칭(앞에서 언급한)으로 말하고 있는데 제가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는 모두가 다 같은 내용이고 같은 기도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표현이 다르고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제가 하고 있는 향심기도에 대해서도 소개가 될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알게된 것은 우리의 기도는 기도의 주체가 언제나 "나"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상기도에 들어서면 기도가 "하나님께 아뢰는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됩니다.

우리가 성숙하지 못했을때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야 했지만 관상기도에 들어서면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듣는 자는 결단의 자리로 나갑니다. 그 결단의 자리는 어떤 형태로든 행위가 있습니다.그것이 죽음의 길이라할 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눈치 보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미움도 증오도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듯이 있을 뿐입니다.

성찬님이 언급한
아도르노에 대해서는 제가 잘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언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말씀 드릴수 있는 것은 관상기도에서 이루어지는 화해는 증오에 대한 상대적 급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 증오까지도 안고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화해가 관상기도가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상기도에 들어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성찬님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갈등은 예수님이 오셔도 해결이 되지 않을 거이라는 것 알고계실 것 같은데.......,
반대로 이갈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를 보면 기도의 주체가 니버 자신입니다. 한 때 저도 그 기도를 너무 좋아하여 눈물을 흘리며 묵상했습니다. 그때가 80년대 격동기(대학, 대학원시절)를 온몸으로 살아가던 때였습니다. 이제 저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의 정의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청원이나 애걸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은총의 선물입니다.
기도는 힘없고 약한자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참으로 성숙한 자가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의로운 자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죄인이 드리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의 기도는 주께서 기뻐받으시는 열납되는 제물입니다.

관상기도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잠이 깬 속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인류전체의식의 중심에서
항상 성령과 함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