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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저는 어제 교역자회엘 가지 않았습니다.
근데, 여기저기서 들려 온 소문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정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교역자회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정목사님이 설교자셨기 때문입니다. 뭔가 알지 못한 그 어떤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지 않았습니다. 그 영적 호기심조차 묵살해가며.

교역자회가 끝난 후, 예상치 못한 한 선배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제가 교역자회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그 어떤 이에게 들었다며 이렇게 다독였습니다.

"맘 아파서 안 나타났다며, 맴이. 너무 맘 아파 하지 말어."

순간, 저는 그 선배의 뜻밖의 권고에 의아해 했지만, 한편으론 그에 말이 저의 복심을 찌른 진단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뭐 그런 생뚱맞은 말쌈을, 이라며 눙쳐버렸지만 말입니다.

그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고, 그래서 또 갔습니다.
단연코, 정방원목사님의 설교가 관심끈 화두였습니다.

하여, 저는 정목사님께 전활 넣었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의 소리는 아니지만, 문자로라도 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목사님은 흔쾌히 원고를 보내주셨고, 거기에다 더해 자신이 그 설교를 대언할 수 밖에 없었던 영적 배경까지 첨부해 주었습니다.

그 메일을 열어 젖히는 순간,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감당 못 할 짐을 떠 맡았다는 부담감이 확 몰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의 표적이 바로 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냥, 덮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는 생각에 후회막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덮어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성령의 책망하시는 은총을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생불가능한 우리의 영적 현실.

나에게는 답이 없고, 나에게는 용기가 없습니다.
그 알량한 명분과 의분에 매어, 독야청청, 그 시린 십 여 년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 온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조직의 쓴 맛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데, 알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자청해서 이 고발을 접수해 버렸는지.
팔잔지, 사명인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