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1 - 주님이 너무도 절박하여 복된 이들의 요엘서 공동묵상 대화록
2008.01.01 09:48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한해 그 마지막날에.
2008을 주안에 온전히 붙어 있길 소망하며 우리는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번개기도모임이었지만 예상 밖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끼리만 나누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이 공간에 출입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찬찬히 읽어 내려 가시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면 합니다.
유붕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라
뜻밖에 오전 나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동료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 온 전0원전도사님께서 그동안 흔적없이 우리 홈피를 드나드셨다며, 오늘 기도모임에 자신이 함께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 오셨다. 당근이죠. 내심, 순간 이 모임의 배후가 성령님이심을 감지했다. 감동이 일었다.
오전 11시 공릉동 산업대 앞에 나가 김0균, 이0우, 전0원님을 모시고 교회로 향했다. 권0현님은 교회로 직행하기로 했고. 양0춘님은 종무식 후 참여하기로 하시고, 정0일님은 식사 이후 뒷풀이를 책임지기로 하셔서, 우선 다섯명이 양지교회당에 모여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0우님이 저 김성찬에게 오늘 말씀을 담당해 달라셔서 기도 중 요엘서를 함께 묵상하기로 했다.
먼저, 인삿말과 겸하여 드러냄으로 만개될 우리 양지교회를 갈한 심령들의 기도처소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개입하심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이 험악한 시대에 믿는 자들 사이에서도 악에 악을 더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사이버 공간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홈피는 '주 예수를 깊이 아는 놀라운 그 은혜'를 함께 누리기를 '희원하는 이들'이 주도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했다. 그 눈에 보이는 증거가 바로 오늘 우리의 번개기도모임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말씀으로 들어가서,
성찬 : 요엘을 듣습니다. 2장 14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화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오늘 우리 기도모임이 주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복. 주께서 허락하신, 주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예배임을 확신하며 우리 함께 돌아가며 요엘서 전 3장을 함꼐 읽어 봅시다.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오독하고 있는지? 그러나 오독조차도 말씀을 읽지 않으면 감히 할 수 없는 거룩한(?) 행위일 수 있다면 사실을 인정하고, 오독 아닌 오독의 감동을 나눠 봅시다.
말씀을 나누며, 전 3장을 교독한 후,
0원 : 2장 13절 하반절,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신다고만 생각합니다.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계약을 맺으시면서, 네가 비록 죄를 지어도 그의 이름만 부르면 결코 영원히 벌하지 아니하시는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오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재앙이 내린다고 우리는 착각하고 있어요.
0균 : 어느날 전도하러 갔는데, 어떤 이가 이렇게 반문하더라구요. "하나님은 이미 계신데 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세요?" 봄이 있듯 그렇게 절로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조차도 초월해야 하지 않을까요? 믿음 이전에 존재하고 계신데---.
일동 : 어렵다. 아멘. 전도자가 오히려 은혜 받았네.
0현 : 1장 12절, 희락이 말랐다- 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내게 적용하길 거부하고 싶으나 이것이 내 현실입니다. 자식도, 아내도, 성도도 다 싫고, 마른 자체가 싫고. 포도, 무화과, 석류, 대추, 사과 웰빙 식품이 다 말랐다. 위로 되는 것은 그 마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폭 투하 전 찌라시 뿌리면서 경계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씻는 정도가 아니라 찢어라! 지금도 찢고 싶지 않는데. 신년을 맞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된 것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 모임을 마련해 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성찬 : 찢는다는 게 뭔지?
회개?
0원 : 축복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듯, 그 자녀들에게 축복한 것. 그 축복을 비는 마음이 마음을 찢는 것 아닐까요? 한 많은 삶을 살았어도 축복할 수 있는 것이.
놀라운 성찰!
성찬 : 그런 관점에서 보면 찢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원망과 시비를 감사로 대신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정립이 찢는다는 말씀이 될 수 있겠네요.
0현 : 승리한 자는 스스로 종이 되는 자세도 찢는다는 말이 되겠죠.
0원 : 저는 세상으로 나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감히 내가 내 자식들을 축복할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믿음을 회복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0우 : 저는 그동안 자식에게 넌 나처럼 살지마 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넌 날 본받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 현상보다 내 믿음 내 마음을 본받아라 라고 말할 수있습니다. 1장 10절에 나타난 처량하고, 말랐고, 기름이 다한 현실. 이것이 내 현실이지만 숨은, 숨긴 자아를 드러내라 나는 외칩니다. 관상기도 중 하나님을 만나길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만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부끄럽지만 드러냄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길 원합니다. 아내가 목회를 그만 두었으면 해 합니다. 물론 저 때문이고, 무능한 가장, 발전 없는 목회 이것이 저의 큰 딜레마입니다. 청빈을 묵상하는 데 요즘, 수도사의 청빈과 가정있는 나의 청빈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 아신다면서 나 보고 뭐하라 하시는 겁니까? 이런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0원 : 제가 세상 나가 살다가 마흔 여덟되던 해 집도, 뭣도 다 날라가 버리고고 딱 단돈 6만원 뿐이었습니다. 법원가는데 항문이 풀려 줄줄줄 새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되돌아 보니 그 부끄러웠던 그 순간에도 주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찢는다는 것은 내 회개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다지는 것이라 체험적으로 느꼈습니다. 오늘 본문 2장 32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과 그 누구나를 축복할 수 있는 믿음이 소중한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0현 : 은혜가 절절합니다.
0균 : 제가 늘 만나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경우 환란과 질고를 당할 때 그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하다가 원망하고 시비하다가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자주 대합니다. 그런데 믿는 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과연 우리는 항상 주어진 고난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0원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을 찢는다는 것이 그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이라는 말은 마음을 찢은 다음에 오는 것,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기도하려고 앉아 있다가 사람을 저주하고픈 악한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중보기도를 강행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 악한 마음을 찢어서 자복하고 난 후에야 기도가 가능했어요. 1, 2년 전부터 1장 12절에 나오는 희락이 말라버린 고난이 귀한 축복이구나 여겨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 살아가게 된 고난이 너무 좋은 거라 생각됩니다.
성찬 : 이제 뒤돌아 보니까 그렇다는 거지?
0균 : 그렇죠. 그 십수년동안 매년 연례행사로 너무 힘들어 교회당을 성물들을 몇차례식 때려 부숴버리곤 했지요. 여기 김성찬목사님 때문에 다 청산하지 못했지요. 마지막 남은 피아노 한대 그것만은 때려 부술 수 없어서 김목사님한테 처치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김목사님이 응락 안하셔서, 그 때려 부술 수 없는 피아노 한 대 때문에 목회를 떠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 후, 몇년 전부터 미친듯이 날마다 길거리를 헤매듯 전도에 전념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회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고난 가운데 나를 찢고, 죄된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면.
성찬 : 저 0균목사님이 오늘은 탈진해 무너져 내린 목회자와 교회를 전도로 돕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0우 : 악한 마음이 들 때, 향심기도는 '하나님이 내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에 동의하는지' 묻게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올 때, 이것만 해결해 주시면 평안하고 감사해 할텐데, 라는 식의 그 뭔가가 모두에게 하나씩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원하신 것이 아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물나고, 욕나오고, 답답한 상황과 현실. 해결이 안되도 문제는 내가 해결되면 해결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바뀌면 말입니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0원 :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도모임이 소중하듯.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왜 하나님은 기도했는데도 응답을 안주시는 것인지 따져 묻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기도 모임에서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고 어느 장로님이 호되게 추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장모님의 병 낫기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는데 기도 응답 없이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우리는 기도할 뿐! 이라는 겁니다. 은혜가 있는데 고난이 왜 없겠습니까?
성찬 : 그말이 결론 인 것 같습니다.
0균 : 그래, 우리 기도합시다. 착각으로 헛된 일 했던 것 회개하면서.
성찬 : 벌써 1시 40여 분이 되었습니다. 밥먹고 기도할까요? 기도하고 밥먹을까요?
일동 : 먼저 기도합시다.
성찬 :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한 요엘서를 1 장부터 보지 말고, 거꾸로 마지막 3장 부터 보는 훈련을 해 봅시다. 내일에 서서 오늘을 이겨 냅시다. 3장 마지막 21절 말씀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아멘. 여호와의 시온에 둘린 은혜의 장막으로 오늘 우리를 덮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권능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속히 임하길, 오늘 이 바로 그날임을 믿고 당당하게 전진해 나아갑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0우님의 기도 중 일부입니다.
믿음 안에 소망으로 기대하는 새해 새날을 통해 우리를 구원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마음을 열고 환영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 후, 우리는 나눔교회로 향했고, 양0춘목사님께서 귀빠진 날이 어제라며 한턱 쏘겠다고 하셔서 수락산 자락 정0일 목사님 철판 오리고깃집으로 날아 가 맛난 점심을 나누었다. 식사 후, 새 단장을 한 장암예향교회로 옮겨 장작화로변에서 환담을 나누고, 군고구마로 따뜻한 서정을 나누었다.
비록, 번개같은 기도 모임이었으나, 이 기도모임이 의미있는 시간일 수 있음을 서로서로에게 확인시켜 준 것만을 틀림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이 너무도 절박하여 복된 이들과 말씀과 기도로 2008년을 열게됨을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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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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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08.01.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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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경
2008.01.01 17:56
뜻있는 목사님들이 모여서 요엘서 말씀을 통해서 나눈 말씀들을 읽고 또 잘 읽었습니다. "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하는 대목이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떤 부흥사목사님이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다 잡셔버리실까?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고난의 연속일때 좌절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응답해 주실때까지 계속 쉬지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내하고 참을성이 많은지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 고난을 즐기라" 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말 고난을 즐길만큼 그렇게도 재미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기도하면서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불쑥 입에서 덕스럽지 못한 말투가 나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좋은날이 올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속에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반드시 기도제목이 이루어질날이 올것이라는 확신속에서 주먹을 불뜬 쥐고 앞으로만 전진합시다.
올해도 주님영광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뛰고 노력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귀한 말씀으로 은혜받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
김성찬
2008.01.02 12:49
어젯 밤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조용기목사님의 목회 50년 회고 1편을 감명깊게 시청했습니다.
기억나는 말씀
하나, 늘 육신은 한시간 예배를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항상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에 넘치는 주의 평강으로 강단을 지켜왔다는 말씀. 불안에서 주의 평강에 이를 때까지 기도하심으로.
또 하나, 자신의 고난의 열매가 십자가라는 말씀.
모진 고난 속에서 바로 볼 것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었다는 피의 고백.
다른 또 하나, 불쌍히 여기는 은총으로 자신이 건강을 회복했듯, 자신의 치유사역은 그 동기가 능력과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김'이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밤 10시 케이블 CBS 새롭게 하소서에서 제2부가 방영된다고 합니다.
지난 제일(除日).
함께 기도해주고, 정직한 목회적 리얼리티를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이성우
2008.01.02 13:27
깊이 깊이 ...그래서 하나님과 일치됨을 구합니다,
일치란
1.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적 변모를 통해 참여로서의 하나님이 되는것[오해 없으시길]
2.본질적 일치가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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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k
2008.01.02 22:21
고린도전서 2장 9절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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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2008.01.03 13:14
이스라엘이 당한 현실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은 겉옷만 찢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거룩함을 자처하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에 두고 자신들이 말씀의 자리에 않아서 보이는 것으로만 살면서 나타내고 자기를 드러내기를 즐겨하는 무리들로 인한 그들은
율법과 전통과 유전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엘선지자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이미 그들의 조상이 할례로 목이 뻣뻣하였습니다.
신10:16을 보시면"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고 하셨더군요.
이러한 사실에서 스데반은 옷을 찢는 지도자들에게, 행7:51에서"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9:36에서"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하시며 무리를 보시며 마음을 찢으십니다.
바울사도는 행20:24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는다고 말리던 이들에게 마음을 찢으며 복음전도자의 길을 갑니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복음에 사로잡혀 마음을 찢었습니다.
내 힘으로 될 수 없는 일에서 나도 내 힘으로 마음을 찢어야겠다는 생각일 뿐
주님이 그렇게 하셔야 내게 마음을 찢는 일이 일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찢어야 함을 알면서도 안되는 것을 한하고
이것까지도 주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에 맡깁니다.
때때로 나 역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같이 겉옷만 찢을 때가 많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 힘을 가지고서는 안되기에 주님을 의뢰합니다.
잠잠히 주님앞에 있습니다.
2008년에도 그렇게 주님앞에 말씀과 기도로 있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을 찢게 하실 힘을 주실 때까지 잠잠히 주만 바라봅니다. -
김성찬
2008.01.04 14:44
사명을 위한 옹근 다짐 그것이 바로 마음을 찢는 일이군요. 마음을 찢으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주님 그리고 사도 바울. 우리도 죽으러 가자던 제자들의 구두선이 아닌 몸으로 마음을 찢은 사명의 길. 숭고합니다. 닮고, 배워 실천하길 원합니다. 아니, 그가 내 이 가면의 생을 발기발기 찢어 주시길. 썩어 냄새나는 육신으로 맥없이 마감할 것이 아니라 찢어 발겨 흐트러 놓으사 날아가는 새들의 먹이라도 될 수 있게 해 주시길 기원드립니다. 가슴찢는 긍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창자가 끊어지는 애통인 긍휼. 주여, 그 몸으로 마음을 찢는 긍휼 오감으로 나를 찢게 하소서. -
김성찬
2008.01.06 09:16
곤고한 삶을 채우는 작은 기름병 하나, 의 저자 질 브리스코 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좌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하나님께 내려 놓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의 선택은 결코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선택은 단순히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우리의 믿음에서 나온다. 나는 할 수 없고 주님은 할 수 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녀가 곤고함을 넘어서 사명의 길로 나가게 된 사연은 이러합니다.
“사역자의 아내로서 너무나 공허했던 나는 선임 사역자를 찾아 갔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의 오랜 부재, 자녀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사역자, 아내,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잠잠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의 관심을 작은 기름병으로 돌렸다.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당신 속에 있어요.” 나의 엘리사는 말했다.
“당신 바로 옆에 훌륭한 성령님이 계세요.”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도와주시죠?” 나는 물었다.
“당신이 가진 것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도와주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집에 가서 문을 닫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그런 다음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이웃 사람들의 텅 빈 그릇에 다 부어 주세요.”
나의 엘리사는 내 공허함에 대한 해답이 충만함을 추구함에 있지 않고 섬기는 일에, 내 생명을 내어 주는 것에 있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섬길 때 나의 공허함은 채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앞 뒤 잴 겨를도 없이 시도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나는 즉시 집에 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혼자 도시 중심가로 가서 용기를 내어 십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성령의 무한한 능력에 의존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나 자신을 부었을 때 그분은 내 속에 자신을 부어 주셨다. 내 삶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밤이었다. 그날 밤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나 자신을 ‘그릇’에 더 많이 부으면 부을수록 내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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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목회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양목사님,정목사님 오리고기와 고구마 등등 너무 맛있게 대접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