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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2007.12.21 00:53

조프리 조회 수:2684 추천:3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슬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두 개의 분절적 지점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혼재되어 있다. 분절적인 것은 혼재된 편재와 관련이 있다.

즉, 현실과 이상의 분절이 혼재되어 있다. 나와 나타샤의 관계는 따라서 이상적이며 비현실적이다. 당나귀는 나의 페르소나이자 이상적 공간을 ‘소요’―즉, ‘나’가 ‘기려’(騎驢)하여 유유자적 소요하거나 아프게 관조하는 데 일조하는 동조의 존재이다.

유유자적적인 소요와 아픈 관조는 세상과 멀어짐으로써―즉 ‘산골로 가는 것’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의지에 의함이다.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 의지의 적극적인 항변이다. 이것은 ( )와 ‘별리’하는 형식이 아니다. 또한 어쩔 수 없이 ( )와 ‘유리’되는 형식도 아니다.

헤어지되 내 의지로 헤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 )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 )와 ‘나’ 사이를 근본적으로 단절시키고 있는 세상과 헤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 )와 ‘나’가 만날 수 있는 시적 공간, 즉 기려한 ‘나’의 유유자적적인 소요와 아픈 관조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을 상정한다.

그것의 오늘 밤에 푹푹 눈이 내린다. 물을 희석하지 않은 옛날의 독한 소주(4, 50도가 넘는)를 마신다. 서로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이룰 수가 없다. 그 비극과 거대한 슬픔을 있는 힘껏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그 뼈 쑤시는 아픔을 남의 것인양 멀찍이 관조하고, 아퍼 죽겠는데 하릴 없이 여유를 내어 느긋이 산책한다. 아픔을 내면화하여 여유롭게 행동한다. 이것이 유유자적이며, 아픈 관조이다.

나타샤가 아니라 ( )인 이유는 시적 화자가 열정의 대상을 이국화(이상화)시킨 것에 대한 복원이다.

백석의 산골에 푹푹 눈 내리고 자신의 아픔을 함께 견뎌주던 당나귀도 좋아 ‘응앙응앙’ 운다. 그 정경을 상상해 보라. 많은 비가 순결함으로 복원을 유비한다면, 푹푹 내리는 눈은 푸근한 치유를 비유한다. 나타샤와 백석의 사랑은 그만큼 아픈 것이다. 유유자적과 슬픈 관조 없이는, 그것을 통해 이상적인 시적 공간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혼자 쓸슬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는 구절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며 쓰라린 구절인지를 알아야 한다. 생의 반려를 눈앞에서 지워야 하는 거대한 슬픔을 그저 담담하게 삭이고 정서의 여백을 타자에게 내보이는 자의 괄호 쳐진 고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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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목사님 안집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저는 목사님과 함께 문학을 공부하는 짝궁이구요.
목사님 안집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으나, 생활과 습작의 부박함에 분주하다가 이제야 들러야 첫 흔적을 남깁니다.

얼마 전 심심한 마음에 백석 시의 촌평을 한 것이 있어 부칩니다.
백석 시인은 월북작가로 1988년 해금 이전까지 굉장히 부당한 대접을 받았으나, 우리 시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이의 월북 이전의 굉장한 연시를 띄웁니다.
가슴 사무친 못 이룬 사랑이 있거든 이참에 다시 호명하여, 그 추억 부드럽게 더듬어보시기 바랍니다.
자정 이전까지 올리기루 하였으나 마감을 못 지킨 것 안집 편집장님께 송구스럽습니다.
이것이 깊고 질긴 인연이 되어 제가 이 안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하숙 필객이 되기를 저도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북에디터이고 라이터입니다. 조프리라는 이름은 그래서입니다.

그럼 다음에 좀 더 성실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총총, 건강하세요.

조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