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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걸으라

2008.06.06 18:49

정승일 조회 수:1966 추천:58

그 길을 걸으라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IVP(2007년)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간에, 사람은 자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매일 매일 쉬지 않고 길을 걷습니다. 때로는 집 주위의 골목길에서, 때로는 시내의 넓은 도로 위를, 어떤 때는 한적한 시골길, 산길 등,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걷습니다. 이 길 걷는 것이 끝나면 그 사람의 인생도 막을 내립니다. 매일매일 자기가 걷는 그 길이 결국은 자신이 목적했던 인생의 목표가 되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며, 그 사람의 업적으로 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파악한 영성 작가 피터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걷는 예수님,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포로전의 이사야와 포로 이후의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은 어떤 길인가를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신 길을 걷지 않는 다른 길을 걸어간 헤롯, 가야바, 요세푸스의 길을 통하여 구불어지고 비틀어진 길이 얼마나 비겁한 길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Jesus Way: A Conversation On the Ways That Jesus Is the Way”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 즉 예수님이 길인데 그 길 위에서의 대화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느낀 일이지만, 유진 피터슨의 깊은 성경적인 통찰력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방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성서시대의 상황을 실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세밀하게 엮어내는 능력에 또다시 감탄을 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의 시대까지, 그리고 다시 거슬러 내려와서 요세푸스 때까지(예수님과 비슷한 시기) 시공간을 초월한 방대한 역사적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되어, 내가 아브라함이 되어 가나안 땅을 걸으며 하나님의 뜻을 그 땅에 새겨 놓았습니다.

 

모리아 산 위에 서 있는 아브라함의 시험은, “아브라함이 걸었던 실제의 길 위에서 계속해서 시험을 받았던 세월”의 압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믿음이란 “우리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길만 걷게 되어도, 지금까지 나의 거짓되고 왜곡된 믿음의 길이 드러나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조그만 시험을 만나도 하나님의 뜻을 묻기 이전에 얄팍한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했던 얕은 나의 믿음이 드러나 부끄럽습니다.

 

모압 평지에 서 있는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모세를 통해서 ‘말’로 주어졌습니다. 공동체의 말은 이야기가 되어 공동체의 모든 일원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끌어들입니다. 율법은 딱딱한 정보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지식의 단편인 정보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즉 나의 참여는 없고 오직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려고만 하는 정보에 길들여진 나 자신에게, 율법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야기가 될 때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생명이 된다는 따끔한 지적에 화석화된 나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나의 참여가 없는 말은 하나의 정보가 되어 생명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야기꾼인 피터슨은 숲만 보다가 숲속의 다양한 생명들의 활기 넘치는 창조주의 손길을 잃어버릴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걸으면서, 내 속에 있는 나와 나의 마음에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잘못된 줄 모르고 오히려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완고한 현대인들에게 생명을 회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회복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끝없이 대화하면서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가면서 끝없이 예수님과 대화하는 길입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딱딱하게 굳어졌던 것들이 부드럽게 되어 생명을 품게 되고, 그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피터슨은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지만, 피터슨의 깊은 묵상과 글 솜씨를 따라 예수님의 길을 걷다보면, 쉽게 책을 덮지 못하며,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