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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림몬 바위를 향하여

2007.11.20 20:04

김성찬 조회 수:2539 추천:85



  저 림몬 바위를 향하여


  림몬 바위를 아십니까?
  겨우 6백명 남은 베냐민 지파의 최후의 은신처. 형제 레위인에게 악행을 범하고도 용서를 빌 줄 모르던 베냐민 족속들. 의분이 공분되어 분연히 일어 선 이스라엘 연합군이 행악자들을 멸절하고자 나섰던 징벌 전쟁. 연합군의 분노는 저들의 씨를 한 톨 남김 없이 말려 버릴 기세였으나 그래도 그루터기 6백인을 품어 주었다는 피할 바위, 림몬.

  “사별의 분노가 사라지길 기원하고.”(링컨, 1864) 사별의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오늘 미합중국의 통합이 시작되었듯이, 천인공로 할 만행에 대한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서 베냐민 지파는 다시 소생할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분노가 멈추자 이스라엘 연합군은 동족 베냐민 지파를 다시 떠 올렸습니다. 한 지파가 궐나게 된, 동족 상잔의 비극 그 현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과 맺은 언약을 파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맹세를 허무는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절대로 베냐민과 상종하지 않겠으며 해서, 저들에게 자신들의 딸들을 줄 수 없다고 다짐한 맹세를 말입니다.

  관용을 마음에 품자, 자신들이 맹세한 법을 지키면서도 그 맹세를 자연스러이 허물 수 있는 지혜를 저들은 이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스바에 올라 와 하나님께 이르지 아니한 자들은 벌할 수 있는 법으로, 미스바로 올라오지 아니한 야베스 길르앗 거민을 쳐서 그 딸들을 림몬 바위에 피해 있던 베냐민 사내 6백명에게 아내로 선사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퍼주기를 한 것입니다. 처녀가 4백명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여호와의 절기에 춤추러 나오는 실로의 딸들을 그 수효(2백명)만큼 추가로 취하게 함으로(부모가 자의로 준 것이 아니므로 죄가 되지 않음) 베냐민 지파를 회복케 한 것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원한, 국가 보안법 운운하면서 북한 동포에 대해 아직도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들의 형편은, 식량문제만으로 좁혀 볼 때, 림몬 바위 뒤에 숨은 베냐민 족속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대로 튼실하던 북한의 경제가 사양길로 접어들더니 이젠 그 내리막길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듯 하다고들 전합니다. 이같이 북한 경제가 벼랑에 몰리게 된 이유를 전문가들은 북한의 주요 경제 협력 루트(옛소련, 동구권의 몰락 등)의 붕괴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가들로부터의 경제 봉쇄 조처에 기인된 바가 크다, 고들 합니다. 연합군에 내 쫒긴 베냐민 지파와 같은 형국입니다.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반박하는 이들도 많을 줄 압니다. 그래, 저들 형편이야 어떻든 저들은 우리의 주적이고, 김정일의 비자금 5%만으로도 오늘 북한의 식량난은 해결될 있다, 는 반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연합군 내에도 베냐민과의 전쟁을 영적 헤렘으로 여겨 완전 진멸을 주장한 강경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를 거두는 은총을 받자, 저 림몬 바위를 향해 평화를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극적으로 회생되었고, 기독교를 싣고 로마로 떠나던, 베냐민  지파 후손 바울을 그 민족 공동체는 세계에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분노를 거둘 은총을 간구 합시다. 국내외 정치적 이해 관계를 떠나 성경적 해법으로 접근합시다. 우리의 어린 바울이 자라고 있는 기아선상에 놓인 영변의 약산.
저 림몬 바위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