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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252: 하늘의 하나님이 - 베데스다 돌봄 센터 착공 감사예배
2009.03.31(화)

오늘 오후 7시 30분,
베데스다 선교회 33주년 & 법인 7주년 & 돌봄 센터 착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감사예배 순서 중에 돌봄 센터 청사진을 디자인한 김성수교수의 착공 감사예배에 대한 감상이다. 그의 이 사건에 대한 스케치다.

베데스다에만 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는 이 돌봄 센터 건립을 위한 시작을 다섯 번이나 했고, 오늘은 여섯 번째 또 다른 시작을 합니다. 만날 태클에 걸려넘어지며 만날 다시 시작해 왔습니다.
그래도 오늘 또 다시 시작합니다.

디자인은 ‘배려’입니다. 창조라고 말하는 것은 창조주를 불경스럽게 하는 언급입니다. 제가 부여받은
애드리브[ad lib]를 정성스럽고, 충성스럽게 감당하고자 합니다. 지상의 모든 건축물은 자연과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자연스런 현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동안 베데스다는 돌봄 센터 건립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행정심판조차도 대상을 두고 싸운 것이 아니라, 절차를 거쳐 진행하자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착공예배가 천연(遷延)
되면서 오히려 기본시설분담금이 사라져 1억 3천 만 원이 면제되기도 했습니다.

첫 계획보다 주민들의 반대로 3년여를 끌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규모를 줄이고, 최소한으로 구조안전에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수정했습니다. 이제는 착공신고도 했으므로 울타리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론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오늘 새 상황은 지난 과거 어려웠던 상황이 안겨준 결과입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전개된 상황은 기분 좋은 상당히 기분 좋은 반전의 출발이라 여겨집니다. 추측컨대 더 잘될 것 같습니다.

 

주민들과 충돌이 아닌 동행을 위한 접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기적입니까?

 

이유는 모르지만 늘 여기만 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어쨌든 기분이 좋습니다. 베데스다만 오면…….“

양동춘 목사님은 오늘 새벽 ‘생각나누기’에 오늘 착공예배에 대한 소감과 회고를 정리했었는데, 그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한 손으로 힘들여 쓴 그 옥고(玉稿)가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오늘 오후 그 극렬한 반대를 일삼던 주민들이 손을 내민 극적 반전을 허락하시려고 그 노고를 일시 날려버리신 것 아닌가 싶다. 새론 상상력으로 앞날을 투사하는 글을 허락하시려고 성령께서 그 글을 날려 버리신 것 아닌가 싶다. 정작 그 옥고를 날려버린 본인은 맘이 좀 아프시겠지만. 그래도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반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양 목사님의 ”주님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기여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체험적 고백과 믿음이 새 역사를 이룰 것이다. “건축에 목숨을 걸지 말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 분네들은 이런 믿음으로 지난 3년을 기다렸고, 40년 광야생활을 즐겼다. 김성수 교수는 베데스다에만 오면 기분이 좋다는데, 나도 그렇지만 난 늘 미안하고, 부럽고, 부끄럽기도 하다. 오늘 나는 또 그들 앞에서 말씀을 전했다. 목사이기 때문이다. 목사란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직업이다.    

오늘 베데스다 돌봄 센터 착공 예배 설교문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느헤미야 2:17-20절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하고 /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호의로 그 원년에 약속의 땅으로 1차 귀환합니다. 느헤미야의 귀환은 그 1차 스룹바벨의 귀환이 있은 지 94년이 지난, 에스라의 귀환이 있은 지 13년 후에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치하인 B.C 444년경입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위로’입니다. 귀환자들의 안녕과 복리를 위해 고심하던 느헤미야는 마침내 단호한 결의를 내리고, 성벽재건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느헤미야는 먼저 성벽을 두루 탐사하였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의 거주지를 고려하여 적절히 재건 사역을 분배하여 진행해 나가던 중, 곧 조롱(4:1-6), 무력(4:7-9), 실의(4:10), 두려움(4:11-13), 이기심(5장), 간사함(6:1-4), 모함(6:5-9), 위협(6:10-14)등,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귀환자들의 안녕과 복리와 복지를 위해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처럼,
이 땅의 베데스다 연못 주위에 모인 이들의 안녕과 복리와 복지를 위해 베데스다는 돌봄 센터를 건립하려 합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의 상세한 건축일지입니다. 그 건축일지를 통해 우리는 돌봄 센터 착공예배 건축지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건축일지인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서를 중심으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영적 건축지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 믿음으로 새 역사(役事)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무엇(What)을 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Who)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분은 누구(Who)십니까?
이 새 역사의 주관자는, 베데스다 33년, 법인 7년 -40년 광야생활 동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베데스다를 친히 앞장 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형통케 하실 하늘의 하나님이 새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우리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사역임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의 주체이시며, 주관자 이십니다.   

우리의 사역을 형통케 하실 그 하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그 힘의 능력으로 큰 산이라도 평지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음은 스가랴의 환상에 나타난 천사의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스가랴 4장6-7절.

그 힘의 능력으로 큰 산이라도 평지 되게 하실 하나님께서 베데스다 돌봄 센터 건립, 그  새 역사를 이룰 영적 권능입니다.


2. 내가 연약할수록 날 더 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 학습법’의 저자 김동환 목사는 그의 비교종교학 연구를 통해 기독교의 하나님의 특성을 ‘내가 연약할수록 날 더 귀히 여기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내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더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한 베데스다 공동체를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앞날에 충만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둘, 사심 없는 연대로 비전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한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핑계하면서(학1:2) 성전을 황폐한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에 있는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면서 학개 선지자는 그들이 당한 재해의 원인이 바로 성전 재건 중단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학개 1장 4절입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판벽(板璧)한 집이란, 벽과 지붕에 각종 장식을 한 화려하고 안락한 저택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16년 전 성전의 기초를 놓으면서 감격했던 것(스3:12)과는 달리 이제는 호화 주택에 살면서도 시기상조(1:2)라는 이유로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자 그들은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사심이 앞장 선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위해 사심 없는 헌신을 주께 바쳤습니다.  

그는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느5장 14절)”했습니다.
그가 유다의 상류층 인사들에게 심한 반발을 받을지도 모를 엄한 시책을 요구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가 먼저 평소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민족의 존립을 염려하여 합법적인 권리까지도 포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심 없는 지도자, 물질적 성결을 몸으로 실천한 느헤미야가 있었기에 새 역사가 창출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상호협력을 이어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육간의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온통 ‘그 다음은’이란 말로 구슬을 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연결고리인 ‘낳고’라는 단어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3장 1-5절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나서서, '양 문'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고, 문짝을 제자리에 달았으며,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쌓아서 봉헌하였다.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쌓았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인 삭굴이 쌓았다.

3    '물고기 문'은 하스나아의 자손이 세웠다. 문틀을 얹고 문짝을 달고, 빗장과 빗장둔테를 만들어 달았다.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요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보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인 므술람이 보수하였으며,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인 사독이 보수하였다.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이 보수하였는데, 그들 집안의 어떤 유력자들은 공사 책임자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이라는 말이 무려 여섯 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3장 전체에는 내용적으로는 더 많지만, '그 다음에'라는 말이 28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그 다음에'라는 용어가 주제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돌봄 센터를 건축하는 일은 사심 없는 이들의 기도와 물질과 봉사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대가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심 없는 연대로 선교적 비전을 온전히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육간에 물샐 틈 없는 경계근무로 그 비전을 이루길  기원합니다.

 

그들은 숱한 비난과 방해를 헤쳐 나갔습니다. 영육간에 물샐 틈 없는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4장 1-3절입니다.


우리가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은, 몹시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그는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자기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이 듣는 데에서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 하고 빈정거렸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암몬 사람 도비야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맞상대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3년 동안이나 건축을 방해하는 하계동 주민들에 대해 양동춘목사님과 베데스다 신앙공동체가 대응하는 방식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그들은 기도로 응대했습니다. 4장 4-5절입니다. 기도가 강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받은 핍박이 컸고, 그들의 기도가 피를 쏟는 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한편으론 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근무로 물샐 틈 없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4장 9, 13-18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백성 가운데서 얼마를 가문별로, 칼과 창과 활로 무장시켜서, 성벽 뒤 낮은 빈터에 배치하였다. /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드디어 우리의 원수들은 자기들의 음모가 우리에게 새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성벽으로 돌아와서, 저마다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 그 날부터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서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관리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유다 백성 뒤에 진을 쳤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다. 나팔수는 나의 곁에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그의 솔선수범한 영적 지도와 실제적인 조치 등, 영육간의 양면적 노력을 통해 그 숱한 시련들을 무사히 넘기고 불과 52일 만에 성벽재건을 완수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그 대적자 들까지도 그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게(6:16)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심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느헤미야 6장 16절.

 

이 외롭고, 힘든 시대.
베데스다 연못 주위에 있는 이들의 안녕과 복리와 복지를 증진하는 돌봄 센터가 되길 바랍니다. 그 힘의 권능과 사심 없는 연대, 물샐 틈 없는 영육간의 분투로,
새 역사를 온전히 이루는 신앙공동체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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