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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732 : 마라나타-믿음 보다 더 큰 그 약속(정기지방회 설교)  

2015.02.09(월)  

 

묵도

찬송 175장(통일 162) 신랑 되신 예수께서

기도-김춘규 장로

본문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제목 : 마라나타, 믿음보다 더 큰 그 약속 

 

저는 학문을 가까이 하면서,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무슨 창조적 상상력이 생성될 수 있겠는가, 라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우리 교단 역사를 들여다 볼 기회를 수년전부터 얻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하나는, 제가 지난 회기 총회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교단을 섬기면서 우리네 신앙전통의 자긍심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3년간 교단을 섬기면서 교단의 역사에 대해 일정 부분 알게 됐고, 성결교회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던

 

둘, 지난 가을학기 목신원에서 ‘성결고전읽기’ 강의를 했습니다.

성결고전을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 나는 성결교 목사가 아니었다.

둘) 그래서 성결고전으로 무장해야 한다. 

 

당대의 책을 읽기도 바쁜데, 무슨 성결고전이냐,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결고전을 읽으면서 우리 성결교회의 자긍심을 재무장하게 됐고, 우리 성결교회에 맡기신 온전한 복음을 증거 해야 할 책무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자긍심과 책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니, 불행하게도 우리 목회자와 교회가 만만치 않은 현실입니다.

 

지난 해, 세월호 사태 이후 땅콩회항 사건에서 우리는 두 단어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속수무책’이고, 다른 하나는 ‘갑질’입니다. 그런데 속수무책과 갑질이란 단어가 저 세상 저자거리에서만 난무하는 용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형편이 손이 묶여 어찌할 바 모르는 영적 속수무책의 상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 이 땅의 목회자들이 ‘갑질’의 주연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만 해도 일 년에 수 천만 원짜리 백화점 고객인 어느 목사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갑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교회의 교계지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성서 언어가 퇴조해 버렸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난무한 만인제사장론에 있습니다. 이는 일찍이 파스칼이 갈파해낸 분석입니다.

 

여로보암 시대에는 누구나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열왕기상 12장 25~33절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이런 성찰에 서서 파스칼은 그의 단상, 팡세에서 자신이 살던 17세기 프랑스와 유럽 사회에서도, 여로보암의 시대처럼 아무나 사제가 될 수 있음에 개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933-(885) 여로보암 치하에서처럼 누구나 원하면 사제가 된다.

(前略)

사제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신중하게 사제를 임명하던 과거의 관습은 바꾸려면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처럼 자격 없는 사제들을 수없이 만들어내는 관습을 개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다니!"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개신교회도 누구나,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여로보암의 시대의 영적 무분별함에 방불함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교회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영적 무감각증에 빠져 버린 이 시대의 강단에 그 문제가 원인이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저는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결교회에 주신 온전한 복음 -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우리가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해 버린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는, 역사적 근거는 이렇습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우리 조선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나 근거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에 주목합니다. 우리 조선 땅에 죽으러 왔던 젊은 선교사들을 주목합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젊고, 유능했습니다. 지난 1월 교육부 세미나는 죽비 소리였습니다. 배덕만 목사교수에 의하면, 그 구한말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 왔던 젊은이들은 미주에서 1%안에 든 엘리트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젊은 선교사들은,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여로보암 시대의 허접한 제사장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유능했고, 복음에 피가 끓던 산 용광로였습니다.

 

그들이 젊고, 유능한 엘리트였다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소중했던 그들이 지닌 복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 복음은 임박한 재림의 복음이었습니다.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에서 발간한 사중복음시리즈 ‘재림’편의 저자는 블랙스톤입니다. 박명수교수는 그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블랙스톤, 그가 선교사로 나선 배경에는 그의 종말론적인 신념이 크게 작용하였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재림의 증표로서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 되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19세기 아메리카 엘리트 청년들은, 임박한 재림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재림 신앙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세계 선교에 나서게 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재림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재림신앙은 성결한 삶으로 우리를 자연스레 인도합니다. “블랙스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성결한 사람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가 순결한 것처럼 그 자신을 순결하게 할 것이다.”

 

저는 지난 교육부 세미나 마지막 날, 홍남표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의 강의 제목은 ‘목회에서 찬양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일반적인 강의를 하리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강의는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는 찬양사역자의 요한계시록 강의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목회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목회란, 예수 믿고 중생해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성결하게 살게 하고, 세상에서 신유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며 복음을 전하고, 신랑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혼인잔치를 잘 준비하는 삶으로 이끄는 것” 그분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녹인 목회의 정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분의 선친 전 총회장 홍순우 목사님의 아들다웠습니다. 그 가문의 성결신앙 전통에 더해 그는 계시록을 100회독 이상 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 된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재림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림의 약속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약속에서 나옵니다. 재림 대망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약속보다 더 큰 믿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우리는 칭송하며, 공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도 그 정도의 믿음은 투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12장1-4절).”

 

아브라함은 백칠십오세에 죽었습니다.(창25:7)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의 나이가 칠십 오세였습니다. 오늘 우리 나이로 따지면 30세 정도였을 때, 한번 생을 개척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기백으로, 더군다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제 스스로도 떠나야 할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더해 만일 네가 집을 떠나면, 내가 너에게 선사할 것이 있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집을 떠날 경우 하나님께서 젊은 아브람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선물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부터 3절에 그 약속의 선물 목록이 들어 있습니다. 한 번 들여다봅시다. “아브람 네가 독립하면, 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한 민족(제국)의 시조가 되게 해 주겠다. 2.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세상 천지에 네 이름을 날려 주겠다. 3. 네가 복이다. 복의 근원이다. 그거다 더해 4.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 5.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얼마나, 크고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런 약속에 믿음을 투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숱한 아브라함들에게 우리가 당신께 바친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엄청난 약속을 먼저 해 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선물은 우리의 믿음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의 믿음보다 큽니다.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며, 그를 믿기만 하면 영생복락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구원의 약속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만 그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박한 재림의 복음은 이제 우리를 단순히 구원받은 자를 넘어 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일진데, 우리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혼인잔치.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환상적인 약속이 오늘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재림대망 신앙보다 더 시급하고, 크고, 값진 것이 이 세상에는 없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사중복음을 구세대의 유물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고, 성결이라는 간판을 붙이기를 싫어하며, 재림은 허탄한 신화로 치부해 버리는 성결교회 목회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총무 선거로 전국을 오가면서, 성결교회 간판을 붙인 우뚝 선 교회당을 보는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교회가 있습니다. 무극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는 성결교회가 이단시 당하고 있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성교회 간판을 붙이는 목회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발 부탁하는데, 서울의 큰 교회들이 성결교회라는 큰 간판을 꼭 좀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세대에 온전한 복음을 손에 쥔 성결교회 목회자, 중직이 된 것에 자부심을 갖는 대의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그것은 재림신앙의 현재적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임박한 재림신앙으로 조선 땅에 들어 왔던, 선교사들은 하늘만 쳐다보는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블랙스톤의 ‘재림(Jesus is Coming)'을 예수교서회에서 우리말로 번역 출판한 장로교 제임스 게일 선교사의 예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 목사인 제임스 게일이 임박한 재림신앙을 이 강토에 널리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저는 제임스 게일 선교사의 외손녀를 소아시아 무너진 에베소 교회 현장에서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게일 선교사를 살펴봤습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이 미국 견학을 갔다. 우리는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이라고 부른다. 바로 그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견미단 일행과 동승한 기차 속에서, 조선을 알게 된, 캐나다 토론토 대학생이었던 청년이 바로 게일 제임스 스카스(Gale James Scarth)였다. 이내,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드디어 1888년(그 손녀딸이 기억하는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선 땅을 밟았다.

 

그는 자원하여 토착화 된 선교사였습니다. 그를 비롯한 한국 선교에 앞장섰던 젊은 선교사들은 우리 민중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울던 신앙인이었습니다. 개신교 초기 선교사 중 한사람인 제임스 게일은「코리언 스케치」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구 한말의 우리네 상황과 풍습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 책은 증언합니다. “나는 그 이후로 노란 개만 보면 군침을 흘렸노라.” 그렇습니다. 제일스 게일 그는 조선의 개고기까지 사랑한 토종(?) 선교사였습니다. 한 가족같은 복구(福狗)로 보신해야만 했던 우리네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이해하고, 그 삶의 자리에 함께한 그는 진정한 복음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역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을 그가 그림자 같은 이 땅, 그 현장에서 실천한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참된 재림신앙은, 우리 예수님처럼 광야로 달아나지 않고, 민중들의 삶의 자리에 항상 거하는 신앙입니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라며, 그 추종자들을 국외로 도피시켰던 거짓 예언자 홍아무개는 진정한 재림신앙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신부(계21:9)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장2절).”

 

그리스도의 신부는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낮추며,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이들입니다.(빌2:3,8)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기보다 약한 형제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 주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먹보와 술꾼,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더라 /31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더라(눅5:30-32)

 

저는 지난 1월 교육부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통해 맘 아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우리 중에 그 누가 그랬다고 합니다. “교육부 세미나 그건 목사 부부들 놀고먹는 행사인데, 재정지원은 무슨 재정 지원.” 그랬다는 분을 치솟게 만드는 망언이 들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신앙공동체의 대사에 참석 못한 점을 의당 미안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먼 데 행사를 우선순위 삼아 참석하는 이들에 대해, 그리고 그 힘들고, 귀한 행사에 대해 그런 망발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런 말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재림은 준비의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합니다. 깨어 있는 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결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 땅에서 내 이웃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며, 누리는 이들입니다.

 

재림신앙은 뜬구름 잡는 허언이 아닙니다.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우리의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 몇 구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1~4)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18-21)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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