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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409: 함께 군사 된 자 - 남전도회 서울지회 연합조찬기도회 설교
2009.11.2(월)


새벽부터 분주했다. 오전 6시에 충정로에 있는 아현교회에서 있는 남전도회 서울지회 연합 조찬 기도회 설교를 맡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교회에서 4시 50분경에 예배를 간단히 인도한 후, 아현교회로 향했다. 꼭두 새벽인데도 무려 150여명이나 되는 서울지역 남전도회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군사들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런 정병을 붙여 주시겠지 기대하며 말씀을 인도했다. 금년도 예배 인도의 몫이 우리 서울중앙지방회라서 내가 설교를 했다. 감사한 일이다.

그곳에서 고향 친구를 만났다. 서울법대를 나와 금융계통에 있다가 은퇴한 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김용원장로를 오랫만에 만났다. 삶이 뭔지 지척에 두고도 연락도 못하고 살았다니. 차후 말씀 안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후배들이 맛난 점심을 먹자고 해서, 정말 맛난 점심을 먹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단풍구경 겸해서 미사리로 나아가 몇몇 지방회와 친목 축구를 즐기는 목회자들을 격려했다.  느닷없이 차출되어 팔자에 없는 골키퍼를 맡았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그 25분이 꽤나 길었다. 그래도 단 한 번 선방을 했다. 남들은 봉사 문고리 잡은 거라 했지만, 난 그 키커가 겨냥한 그 킥 방향을 정확히 포착해 내어, 결정골(?)을 막아 냈다. 제법 재미 있었다. 그 광활한 초원을 누비는 청춘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여기서 얻은 충만한 에너지가 목회로 이어져 폭발할 것을 굳게 믿는다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사명자의 모든 행위는 결국 사명에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 열공(열심히 공을 차다)하시오. 모두 억압과 눌림을 뻥, 뻥 저 창공에 날려 버리시오.그들의 차돌같은 근육을 대하며, 이제 나도 정말 몸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래서.  

미사리 조정 경기장을 둘러 돌아왔다.
바람이 매섭다.
집 나서기 전에는 몸이 시들시들했는데, 몸을 놀리고 났더니, 몸이 매우 가볍고, 상쾌하다.

유쾌,상쾌, 통쾌한 하루를 보냈다.
감사, 감사, 감사!


서울지역 남전도회연합회 설교
2009.11.2(월) 오전 6시
장소 : 아현성결교회

제목 : 함께 군사 된 자
본문 : 빌립보서 2장 25-30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은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는 자신의 빛나는 영적 전투에 늘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접두사 syn('함께‘라는 뜻)으로 시작하는 복합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함께 한 사람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제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함께하는 일꾼이라는 의미의 동역자, synergos였습니다. 그가 목숨을 건 그 치열한 영적 전장(戰場)에는 외로움으로 옥쇄하지 않을 만큼의 전우들이 늘 함께 했다고 그는 술회했습니다.

한때 극렬한 복음의 핍박자가 그 임무수행을 위해 나섰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 극적으로 예수의 추종자가 된 사건은 그를 일순 외톨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그는 일순간 옛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나니아와 다메섹의 제자들(행9:10,23-25,행22:12-16)이 그와 함께 해 줬습니다. 복음에는 함께하는 동역자가 늘 수반 됩니다. 그 후 그는 고향 다소 주변에서 10여 년간 선교사로 일하던 중 구브로에서 온 레위 자손 바나바(행11:24-26)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바나바와 함께 역사적인 전도여행을 떠나는 행운을 얻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도여행을 통해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한 지체 실라(실루아노)(행15:40), 루스드라의 디모데(롬16:1-3), 사랑받는 의사요 문필가인 누가(몬24), 안디옥의 디도(고후8:23), 고린도의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롬16:3), 바나바의 사촌 마가(골4:10;몬24) 등이 그의 사명의 길의 동역자들이었다고 그는 전합니다.

또, 갇힌 자되었던 바울은 그와 '함께 갇힌 자’(synaichmalotos)된(단어의 원 뜻은 함께 포로된 자) 동역자들이 그에게 있었다고 전합니다.데살로니가 출신의 마게도냐인 크리스천 아리스다고(골4:10), 그는 로마에 감금되었었거나, 아니면 전에 에베소나 가이샤라에 같이 감금된 적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함께 갇힌 자’라고 불리우는 이는 골로새의 에바브라(몬23)입니다. 이 에바브라는 리쿠스 계곡의 전도자였고, 그곳에 세워진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라오디게아교회(골4:13)의 목회자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느라 그 교회들을 찾아 다닐수 없게 된 때에도 언제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분명 바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감옥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16:7), 그리고 로마감옥의 골로새의 오네시모-그는 바울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10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멍에를 같이한(synathleo) 여인들에 대해 말합니다. 협력자들입니다. 빌4장 3-4절에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보호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겐그레아의 여집사 뵈뵈였습니다.

바울은 아킵보(골4:17)를 가리켜 ‘함께 군사된 자’(synstratiote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그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된 자’(빌2:25)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함께 군사 된 자’인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골로새서 1장 7절에서는 ‘함께 종 된 자’(syndoulos)로 부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 모은 헌금을 에바브로디도에게 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위임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그 헌금을 바울에게 전하고, 옥중의 바울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들의 사명을 대신 수행하다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바울은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병든 에바브로디도의 형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안타까워하던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자신 곁에 두고 팠던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 성도 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그리워하면서도, 바울곁에 있어 주길 원했고, 바울은 그 필요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교회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여 빌립보 교회로 자신이 돌려보낸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곁에 있지 않고 왜 돌아왔느냐 추궁당할까 봐, 에바브로디도가 그동안 자신에게 베푼 온정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사람이야말로 귀한 영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를 가리켜 바울은 ‘함께 군사 된 자’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함께 군사 된 자’라는 말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군사 되었다는 말 속에 엄격한 군대 규율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는 무차별적인 명령체계를 우리는 연상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졸로 보는 하대문화를 기억해 낼 수도 있습니다. 인격은 없고, 군격에 의한 명령체계만 시퍼렇게 살아 움직이는 기계적 관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런 오도된 군사문화의식이 상호 충일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이 군대 계급인 양 사람 위에 사람 있는 듯 우리는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은 함께 군사 된 자라는 말씀은 바울 사도가 전제하기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 된 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이기 이전에 바울에게 있어 에바브로디도는 형제요,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에바브로디도. 그는 목회자와 교회를 잇는 가교였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동시에 돕고, 소통시키는 아픈 자였습니다.
남전도회란, 에바브로디도에게서 발견한 견우와 직녀를 잇는 오작교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잇는 사랑의 가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형제요, 동역자인 함께 군사 된 자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주경가 F.F.부르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2장 전반부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에바브로디도 안에서 아주 귀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1-5절.

이 마음이 성경이 말하는 함께 군사 된 자의 마음입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서로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적 전장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남전도회라는 이름이 가지는 위압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정받는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없는 듯 있고,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박지성이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그런 리더십이 통하고,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저는 남전도회를 에바브로디도의 역할과 견주어 오작교에 비유했습니다. 오작교란, 우리가 잘 알듯이 음력 칠 월 칠석 날 저녁에 견우와 직녀 두 별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으로 죽 잇대어 만든다는 전설상의 다리입니다. 이 전설상의 다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영적 화목을 위한 만남의 가교가 바로 남전도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성도들 성도되게 하며, 목회자를 목회자 되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바로 남전도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오늘 본문의 주인공 에바브로디도가 우리 남전도회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그가 교회와 목회자를 잇는 가교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이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십자가를 참고, 품는 마음입니다.

남전도회는 교회의 가장입니다. 고부간에 갈등을 해소해야하고,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대들보입니다. 짐이 무겁습니다. 사명이 힘에 겹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처럼,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아야 합니다. 그 즐거움이란 에바브로디도에게서 나타난 것처럼, 성도가 성도되고, 목회자가 목회자 되고, 교회가 교회되는 열매입니다.서로의 아픔을 달래 주며, 서로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는 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는 에바브로디도의 자기를 버리는 헌신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절.

남전도회 회원여러분,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우리도 그 영광을 주안에서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칭찬 받은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절).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 그날의 주인공이 될 우리 남전도회 회원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지니신 예수를 바라보는 남전도회 회원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겸손 즉 바울의 케노시스(자기를 비우심)입니다.

끝으로 빌2장 30절 말씀입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은 그 사역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그 사역을 위해 그 누군가의 조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자신의 그 필요를 에바브로디도가 채워줬다고 말합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골1:24절) 헌신을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와 바울을 위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끝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헌신이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

참으로 절묘한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에바브로디도는 없습니다.
나와 너희의 일만 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만 있습니다.
그러나 ‘없으나 있는,’ ‘아무 것도 아니나 전부인’ 에바브라디도를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것이 남전도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의지나 고집, 주의주장을 드러내지 않는, 없으나 있는 존재인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동시에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가교 역할을 목숨 걸고 행했다는 말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를 도와 목회자인 바울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남전도회의 역할과 사명입니다.

바로 그런 귀한 일을 에바브로디도가 최선 다해 행했다고 바울은 전합니다.우리도 에바브로디도처럼 교회를 도와, 목회자의 부족함을 도와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목회자를 목회자 되게 하여, 남전도회가 남전도회 되는 역사를 주안에서 이루길 기원합니다.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을 위한 남전도회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주 안에서 빛나길 소망합니다.

이렇듯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서로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세워주는 서로의 창조자입니다. 우리는 세운만큼 세움 받는 한 몸 된 상보적 존재입니다. 랑카스터 뮤지컬 공연장에서 저는 아담의 죽음을 슬퍼하던 이브의 외마디 절규를 기억해 냅니다. “You are my creator!"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빚는 창조자입니다.바울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 동역자 에바브로디도.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군사 된 자로 섬긴 바울 사도. 서로의 상보적인 한 몸 된 서로 세움이 그 사역을 빛나게 했습니다.

우리도 그의 나라와 그의 백성인 우리를 잇는 가교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를 마다않으신, 구속의 주님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일에 우리 남전도회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기도: 서로 세우는 창조자로서 목회자를 목회자 되게, 성도를 성도 되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에 가교가 되기로 결단한 남전도회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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