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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428: 서울신대 채플 설교 준비 완료
2009.11.23(월)

밤10시50분.
내일(09-11-24) 있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 설교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우리 성결교회의 시대적 소명과 자부심에 대한 메시지를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나름대로 준비해 왔었다.

그리고 지면으로, 교단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임직식, 103차 총회 경건회에서 동일한 본문과 주제로 설교를 해왔었다. 물론 그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증거했다. 그러다가 주께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어 모교인 서울신학대학교 강단에 서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자 나는 그 설교를 다시 최종 정리했다.

내일 있을 모교 채플 설교문을 나는 이 밤 완성했다. 그 누군가가 참고하거나, 글로 읽을 경우를 위해 준비한 내용을 죄다 실었다. 물론 설교는 배정 된 시간에 따라 그 내용을 조정할 것이다. 이 설교문은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시간이 주어져야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긴 설교문이다.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설교문을 더 확대, 심화시켜 나가면 교단의 자긍심을 공유하게 할 좋은 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틈틈이 보완, 보충해 나아가고 싶다.

오후에 모처럼 몇 분들과 운동(탁구)을 하고 났더니, 기분은 상쾌한데 몸이 좀 힘들다. 앞으론 정말, 진짜로 정기적인 운동을 하고 싶다. 오는 12월 7일 오전 10시에 공릉탁구클럽에서 우리 지방회 소속 목회자들 친목 탁구대회를 갖자고 입을 맞췄다. 함께해서 건강과 동료애를 증진시켰으면 한다.

여기 내일의 메시지를 정리해서 올린다.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 설교
2009.11.24(화) 오전11시

시대의 향도 - 성결공동체


여호수아서 3장 1-6절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 가니라.

1907년은 우리교단이 태동한 해입니다.
그 1907년경의 우리 민족적 시대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한국사에 있어서 19세기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전환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단순히 시간적 연속을 의미하는 한 세기가 아니라 근대사회로 옮겨가는 역사적 변혁의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9세기 역사는 우리의 전통 문화에 접근해 오는 서구의 근대문물을 슬기롭게 조화시켜 자강(自强). 발전(發展)을 위한 시기로 전환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안으로는 근대국가로 전환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는 침투해 오는 외세에 대응할 수 있는 힘조차도 기르지 못하였습니다. 1897년 청나라 제후국과 같은 형식을 탈피하고자 [대한제국] 을 세운 이 땅의 완전독립국의 꿈은, 열강 세력의 각축으로 노략 당하고 그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힘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침략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우리민족이 전개한 민족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은 의병항전(義兵抗戰)과 구국계몽(救國啓蒙) 운동이었습니다.

의병항전(義兵抗戰)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1907년 일제의 강요에 의한 고종의 퇴위와 강제적인 한국군의 해산으로 그 절정에 다다르고, 1910년 이후엔 만주 등 해외로까지 이어져 해방 때까지 일제와 투쟁하였습니다. 그리고 구국계몽운동은 주로 개화파 특히 기독교를 중심한 종교계의 민족운동과 더불어 추진 되었습니다.


의병항전(義兵抗戰)의 일관된 목표가 국권회복 자체에 두었다면, 구국계몽(救國啓蒙)운동은 민족 실력의 양성을 당면과제로 삼았다. 즉 당장에 자주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래를 위해 민족의 교육과 민족문화의 수호 및 경제자립을 통한 실력양성 운동을 전개하여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1907년은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퇴위, 군대해산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이 계속됐고 고종의 양위를 반대하여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동우회(同友會) 및 기독교 청년회원등 2천여명이 종로에서 반대시위를,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대일항전을 개시하였던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바로 이같은 해에 우리 성결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1907년 5월 30일 한성부 중부 염동(漢城府 中部 汭:現, 관철동과 종로 2가 사이)에 셋방을 얻어 [복음전도관]이란 간판을 걸고 직접전도의 방식으로 황토현(黃土峴:現,종로 2가와 세종로 부근)에 나가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이란 찬송을 불러대며 방황하는 상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후 1908년 구리개[銅峴洞:現, 남대문 1가와 을지로 1가 부근)로 옮겼다가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다시 한성부남부 무교동(漢城府 南部 武橋洞:現,무교동 12번지(을지로 1가 부근))으로 옮겨 명실상부한 ‘무교동’ 시대를 열어가게 된 것이다. 그 후 숱한 우여곡절 끝에 1979년을 끝으로 무교동 시대를 마감하고, 1979년 이후 동대문 중앙성결교회 시대를 열어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교단 설립 초기 이런 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민족정론지였던 언론의 매서운 공격을 받은 사건입니다.
[대한매일신보]와 초기 성결교회의 관계입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어떤 신문인가? [대한매일신보]는 노일 전쟁후 한일합방까지의 격동기에 영국인 배설(裴說(Ernest Thomas Bethell))을 발행인으로 하여 발간된 [대한제국] 末期 최대의 민족지입니다. 이 신문은 가장 강경한 항일논조(抗日論調)로 韓末의 논객이요 지사(志士)였던 양기택, 박은식, 신채호등이 제작을 맡아 민족사상을 고취하는 품격 높은 논설들을 집필하여 민족진영의 구심점으로 항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이런 제작태도에 고종(高宗)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강경한 민족사상을 고취하는 기사를 우리는 곳곳(논설: 대한졍신(1907.9.29.30日字논설), 한국에 녀자교육의 필요(1907.12.10-11日字논설), 자유론(1907.12.13日字 논설등)에서 찾아볼 수있습니다. 사실 당시 [한성순보]나 [조선신보], [대한일보],[대동신문]등이 일본인 발행으로 거침없는 침략적 논조를 펴고 있을 때,[대한매일신보]의 출현은 위축일로에 있던 민족 언론에 구원의 존재였으며 온 민족에겐 한 줄기 소망의 빛이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 무려 두 차례에 걸쳐( 반민족적 반문화적 사이비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막 싹이 터 오른 우리교회의 신앙을 악의에 찬 논조와 갖은 수식어를 다 구사하면서 매도했을 때, 우리교회가 받은 타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 논설의 일부를 한번 살펴븝시다.


첫 번 째 비난 논설은 1909.4.21日字 1면 머리, [종교계에 요물]이라는 제하에 신랄한 비난을 가하고 있습니다.


“...(前略) 이 요물이 누구일까요? 말하자면, (그들을) 한국 사람들이 일컫는 바의 기독교 신자요, 또한 일컫는 바의 일본 ‘동양성서학원’ 졸업자들인 이들 두세 사람이다. (中略) 오히려 종교계의 교육을 말살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귀머거리와 소경(글 모르는 무식자)으로 만들려고 신자들의 배움을 방해하며... 저들 무리들이 요괴한 심장(마음)을 가지고 신자의 탈을 쓰고, 교육계와 학문계를 짓밟아 깨려고 하니 아! 슬프도다. 너희들 무리 종교계의 큰 여우이다..(後略).”

이상이 1909년 4월 21일자 논설에서 간추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만 그친 것 만이 아닙니다 그 후 약 5달 후에 다시 두 번 째 비난 논설을 1909년 9월 14일자에 [소위 동양전도관]이란 제하에 싣고 있습니다.


“...(前略) 그 도리를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화를 전하는 교회니 험하도다. 이 교회여! 이 교회에 설립의 내용을 들어 보건데 이것이 일본사람의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中略) 따라서 동양전도관을 설립하여 한국동포를 속여서, 첫째는 한국동포의 애국정신을 박멸하고, 두 번째는 한국 동포의 자유사상을 파괴하며, 될 수 있는 한 비굴의 달콤함에 얽매이게 하려고 함이니 험악하도다. 이 교회여!....(後略).”

이상과 같은 두 편의 논설이 가져다 준 피해는 심히 막대하여 수많은 이들이 신문내용을 믿고 [복음전도관]을 떠나갔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민족의 편에 섰다고 보는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결교회가 걸어 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1907년 그 시기에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민족운동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의병항전과 구국계몽운동이었습니다. 이런 항일정신에 촉구하고, 문맹을 퇴치하는 일에 힘쓰며, 갖은 압력 속에서도 그 논조를 굽히지 않았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하에 소개되는 우리성결교회의 신앙과 전래의 배경은, 저들 민족주의자들 눈에는 친일매국노집단이요 반문화적 단체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논설을 통해 복음전도관이었던 우리 교회의 신앙을 반민족, 반문화 집단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들어 온, 구국계몽운동에 도움을 준 구세군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환영의 논설을 게재했습니다.

그 이유로 짐작되는 배경을 저는 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1901년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된 성결교회는 다른 예수교파들이 일본정부와 국민들로 부터 탄압을 받고 있을 때 아무런 탄압 없이도 성장해 나갔고, 일본제국의 군벌에도 적극 협력하였던 연유에서, 뿌리를 그곳에 둔 한국의 성결교회가 반민족적 집단으로 매도당할 수 있었을 것이며,


둘째로는 우리교회의 신앙이 지닌 신앙수용의 동기가 정치적, 민족적 동기의 유형이 아니라 종교적 동기의 신앙유형이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비정치화, 비민족화의 신앙정화운동은 몰역사적 운동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입니다.


셋째, 이상과 같은 특성에 더하여 우리교회가 강조한 신유의 복음과 상대적으로 일천한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교단이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인 국민계몽운동(학교, 병원 등의 설립)에는 참여할 수 없는 우리의 내외적 한계. ‘예수 천당 식’ 직접전도 방식에 대한 원시적 반감 등이 반계몽적, 반문화적 집단으로 평가 당해 버린 한 요인으로 작용 했을 것입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이유들이 원색적 열광, 신비, 그리고 반문화로 특징짓게 된 초기 우리교회의 신앙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내 나름대로의 진단을 토대로 우리네 신앙의 특징을 열광, 신비 그리고 반문화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단의 역사적 공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초기 우리 성결교회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전적인 권위에 대한 철저한 복종과 문화에 대한 충성의 요구을 단호히 거부하는 유형(Christ, against the culture)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계시와 이성, 그리스도와 가이사,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 사이에 명백한 구별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들의 공헌은 교회와 사회에 변혁을 가져왔으나 결코 그들이 당초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수도사들이 자신의 영혼과 그의 형제 수도사들의 영혼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갱생시키기를 꿈꾸지 아니하였으나 역사가들이 그들은 유럽을 갱생시키며, 사회의 붕괴를 막으며 정치질서를 재건하며 공공교육을 수립하고 문화예술을 보존하는 일에 공헌했다고 평가 하는 것처럼, 성결의 은혜를 강조한 성결교회의 신앙이 오늘날 떠들썩한 [말씀의 생활화]운동의 신앙적 기초와 토양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그 극심한 핍박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성결하게 사는 우리교회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적 삶이 이 땅에 참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니다.


그 1907년 이후 1세기에 걸친 한국 성결교회의 역사는 성결부흥운동의 역사였습니다. 이명직-이성봉-이만신 목사로 이이지는 성령운동, 성결운동의 역사였습니다. 그분들은 이 땅의 성결성 회복에 앞장 선 영적 준령들이었습니다.한 예를 듭니다. 저는 희귀한 빛바랜 흑백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진은 단체 사진입니다. 1950년대 지방도시 어느 교회(목포중앙성결교회 또는 목포북교동교회) 앞마당에서 목회자를 모시고 온 성도들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처음에 그 사진이 목사 취임식이나, 교회 임직식 후에 찍은 사진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한 가운데 한 아낙네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배경을 알아 봤더니, 바로 그 여인네가 그 단체사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사연인즉슨, 그 여신도는 처녀의 몸으로 혼인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에게 본부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애까지 낳고 살아왔기에 그럭저럭 살아왔었답니다. 그러다가 이성봉목사님의 부흥집회에서 그 여인이 성결체험을 하게 되었답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허물과 죄를 자복했고, 성결의 은혜를 힘입었습니다. 성결의 은혜를 힘입은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본부인도, 남편도, 교우들도 괜찮다며, 당신의 잘못은 없다며 그 결혼 생활을 계속 해 나갈 것을 강권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청을 거절하고 그 집을 나오기로 결단 했다는 겁니다. 애는 물론 입고 있던 속옷까지 다 벗어 내 놓고 그녀는 그 집을 나왔으며, 아예 그 불순한 인연을 끊을 작정으로 먼 타지로 떠나기로 했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그 성결한 여인을 위해 교회는 송별예배를 드려줬고, 그 예배 후 함께 기념촬영까지 하며 그녀의 순결한 영혼을 위로하며, 기억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 성결교회는 이 땅의 영혼들을 정결케 하는 개인적 성결회복에 선두주자로서의 영적 역할을 활발히 감당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성결교회는 어떤 선교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언어 - 성결의 기치를 높이 든 교단입니다. 홍해를 건너 요단강 앞에선 이스라엘처럼 이 시대는 칭의를 넘어 성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신앙의 초보 칭의론에만 매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화가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 시대에 요청되는 구원에 대해 자세히 일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앞에 섰을 때 요구받은 것은, 그 구원의 초입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요청하신 것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지켜보는 것”(출14:13) 뿐이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장 8-9절


이것이 구원의 주권적 신비요, 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과정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구원의 첫 단계 칭의 단계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간단히 구원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려 봅시다.


먼저 구원의 3시제입니다. 구원은 과거의 구원(--영생을 얻었고(요5:24)), 현재의 구원(---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미래의 구원(--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왔음이라(롬13:11))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중생(重生 거듭남,Regeneration/칭의,양자됨), 성화(聖化:Sanctification), 영화(榮化:Glorification)라고 부릅니다. 그 가운데 중생은 칭의, 양자 됨 등 여러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 중생은 생물학적 출생에 비유한 주관적 내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칭의(稱義)는 법률적 설명으로 하나님과 객관적인 법적 관계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변화이며, 이것을 가족관계에 비추어서 양자(養子)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의 사건을 어떤 방법으로 설명하느냐의 표현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는 회개하고 믿는 자(막1:15)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하시며(칭의,롬3:21-28), 동시에 위로부터 내리는 은총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新生,New Birth)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칭의는 성화의 출발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구원의 확신 여부를 말할 때 주로 과거의 구원(거듭남)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칭의론에만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신학자들이 구원론을 말함에 있어 주로 칭의론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칭의는 성화의 과정의 시작인 것입니다. 칭의는 성화의 출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칭의 받은 사람이 더욱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 한데까지 이르는 것(엡4:13)입니다. 그러므로 칭의 없이 성화가 있을 수 없으며, 성화 없는 칭의는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구원의 초보 논쟁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신앙에만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친 후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위대한 해방 자 모세의 대를 이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백성들의 지지 속에 이스라엘의 새 영도자가 됩니다. 그는 그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동편에 이릅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바라보면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려 듭니다. 가나안 중앙고지를 가는 길목에 요단 계곡의 주요 성채인 여리고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여 그는 두 명의 정탐꾼을 그곳으로 침투시킵니다. 거기서 그 정탐꾼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한 여인 라합의 보호 하에 여리고를 정탐하고 돌아옵니다.


그들 보고는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았다”(수 2:9)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라합이 전해 준 정보였습니다. 여호수아 군대는 정보력도, 모압 평지에서 모은 군량미도, 무기도, 전술도, 군사들의 사기까지 적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충분하고, 출중하고, 드높았습니다. 이런 비교우위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여호수아는 즉시 아벨싯딤에서 요단 강가로 이스라엘은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신중의 신중을 기하느라 사흘을 그 강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북쪽 헬먼 산의 눈들이 녹아 상당한 급류가 되어 흐르는 강은 그들 앞에 놓인 최대의 난관이었습니다. 그들은 도하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그 사명의 강 앞에서 그들은 난감해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한 해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말씀을 앞세운 신앙공동체의 성결, 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전술, 전략, 무기 그리고 군량미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명의 강 요단 건너기는 공동체의 성결이 그 무기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 3:5).

그렇습니다. 이 선교 2세기를 훌쩍 넘어 선 한국교회에 요구되는 것은 칭의를 넘어 선 성결입니다. 이젠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칭의의 단계만 강조하는 타교단을 넘어, 성결교회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바로 우리 성결교회에 기대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교단은 성결교회입니다. 이름은 의미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려지는 순간 이름은 그 이름의 사람(공동체)를 만들어 냅니다. 전도표제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입니다. 그 대표적인 표지가 성결입니다. 그리고 특히 성화론(聖化論)에 깊은 통찰과 강조점을 두고 있는 웨슬레의 구원론에 서 있는 우리 성결교회의 신학적 입장이야 말로, 유일하게 선교 2세기 한국교회의 온전한 성화를 위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성결교회의 영적 자부심과 영적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책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의, 선민의 삶의 지침 같은 것이듯, 선교 2세기를 넘어 선, 3대 4대 목사 장로가 나오는 한국교회는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같은 복음이 편만한 시대에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성화요, 성결인 것입니다. 우린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요단강 앞에선 성결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선배 신앙인들이 그 피로 지킨 성결의 복음이 과연 이 시대에 얼마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가 라는 의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서서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있는 집합적인 죄(콜렉티브 신)를 회개하는 일입니다. 공동체의 성결은 집합적인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음으로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똬리를 튼 가나안 7족을 우린 내몰아야 합니다.

지방회와 총회적 차원의 행정에 관여하면서 저는 우리 안의 가나안 7족을 발견했습니다.


그릇된 관행, 기득권 고수, 치졸한 정략, 사조직적 연대, 무분별한 온정주의, 보신주의, 무지 가 그것입니다.


우리 제 103차 총회 46개 지방회 지방회장들은, 공명정대한 지방회와 총회의 행정 그리고 온전한 성결복음의 보수를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했고, 해오고 있습니다.


행여, 우리 안에는 그 어떤 가나안 7족이 도사리고 있습니까?


시대가 어둡습니다. 시대의 어둠은, 절대를 상대화 시키고, 중심을 해체하려 들고 있습니다. 온갖 사이비한 종교다원주의적 발상과 혼합주의적인 음모가 우리의 교단의 심장부를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그 유일신 신앙이 해체되어가고, 교회의 영적 권위가 무너진 거룩한 곳에, 한 줌 냉소와 절망과 우연, 불확실성과 혼돈, 불신과 삶의 무의미성, 그리고 배금주의가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 절망이 만성화되고 있습니다. 절망이 만성화된 그곳엔 묵시론적 비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교회마저 이기주의에 빠졌다고 아우성입니다. 교회가 배금주의에 빠졌다고 시비합니다. 권력의 시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마저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한, 그 기댈 언덕이 없는 이 땅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백안시하고, 권위를 부정하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요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복음의 본질까지도 상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정신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철저한 자기 개혁이 없는 종교는 늘 세속화의 표적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결교회가 선교 2세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제 우리 성결교회가 초기 성화의 단계를 이미 벗어나 온전한 성화를 위해 신앙적 정진을 앞장 서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것과 사는 것 중에서 사는 것에 보다 강조점을 둘 만큼 성숙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교회 밖을 향해서도 우리는 눈을 돌려야만 합니다.

로쟌 언약의 고백대로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한 참회의 심정”으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점검해보고 동시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올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이,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복음주의의 각성, 이 수반될 때, 우리 성결 신앙은 이 사회를 신앙에로 불러일으키는 역사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습니다. 그분의 선종은 종파적, 교리적인 면은 차치하고, 공시적 관점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성결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40만 명이 조문 대열에 자진하여 합류할 만큼 신드롬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영향력을 그분은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작금 극심한 경제 불안 속에서도,

사람들이 물질에만 목말라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가 봅니다.

사람들이 정작 목말라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민중들은 사람다운 사람, 예수의 사람을 희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 날, 심판 주로 오시어 심판하실 때에 그 심판의 표준과 근거가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야고보 선생은 경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


여기서 말하는 경건은 헬라어의 ‘드레스코스’입니다. 이는 종교의 외적인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리
고 ‘돌아보고’ 라는 말은 ‘남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방문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의 사회성, 성결의 사회성을 지칭합니다. 이 본문에서 야고보 선생은 사회적 성결(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과 개인적 성결(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을 동시에 이야기하면서도, 사회적 성결, 성결의 사회성(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작은 자, 소외된 자, 약한 자, 가난한 자의 벗, 쫓기는 자의 피할 바위. 그 갓파더 김수환. 현대의 도피성 된 명동성당. 그 성주의 대리인 김수환. 민주 인권 존엄. 그는 시대의 화두에 몸을 내 던젔고, 하여 그가 바로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처럼 민중들의 삶속에 있었고, 시대정신을 올곧게 하는 일에 몸을 내던졌습니다.

천안 성결원 문제로 이런저런 시비가 있었습니다.


“‘천안 성결원’ 문제는 여러 말이 많았지만, Messianic Mission이란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비록 성결원이 그 첫 목적과는 달리 그 용도가 변경되었을지라도,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끄신 섭리였다고 저는 이 시점에서 믿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들만을 위한 집을 짓지 말고, 저 세상 어려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지어라’라고 우리에게 원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이 ‘너만을 위한(for you)) 축복’이 아니라, ‘너를 통한(through you) 만인의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옳습니다.


Messianic Mission은 ‘너를 통한(through you) 만인의 축복’을 선전하는 일입니다. 이런 Messianic Mission의 관점에서 볼 때, ‘천안 성결원’은 그 하나님의 의지를 잘 구 현해 낸 우리들의 헌신의 열매입니다. 우리 성결교회가 지난 100여 년 동안 대사회를 위해 기여한 간접선교의 열매가 거의 전무했습니다. 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사회에 헌신하는 한 기회를 이렇게 ‘천안 성결원’ 건립을 통해 구현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첫 의도와는 다른, 그러나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우린 ‘Messianic Mission’의 첫걸음을 이렇게 내딛게 하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결교단이 앞으로 더 힘써 Messianic Mission에 참여하는 교단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천안 성결원’을 시발로 전국 방방곡곡에,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 핍절한 삶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성결원’이 많이, 많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앙망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너를 위한(for you)가 아닌, 너를 통한(through you) 만인의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교회를 세상에 봉헌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그 사랑의 손길을 펼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우리의 신앙과 교리를 지키는 일에는 보다 엄격해야 할 것입니다. Messianic Mission에 대해서는 한없이 열린 마음이 우리에게 요청되지만, 우리의 신앙고백을 보수하고, 사수하는 일에는 우린 물샐틈없는 방어가 필요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주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에 확고히 서서 우리는 세상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땅, 이 시대는 다문화로 가는 시대입니다. 언어와 종교와 피부가 다른 이들이 무려 120만명이나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다문화학이 학문적 블루칩입니다. 10년만 지나면 다문화학이 최대의 각광을 받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인구 5백만 명만 돌파 되면, 프랑스 파리 폭동같은 다문화 사회의 갈등이 폭발할른지도 모릅니다. 신학교는 바로 이런 사회 구석구석을 섬길 경건한 섬김이를 배출해야 할 것입니다.

개척 만 명 목표만이 신학생들의 기도의 제목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회를 복음의 능력으로 밝히는 작은 등불 되겠다는 결단이 더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하신 말씀이 우리 안에서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로저 쉰(Roger L.Shinn)의 말대로 신앙은 ‘강요(imposed) 될 수 없으나 때때로 ’불러 일으킬‘(evoked)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일 중 하나가 기풍(ethos=공동체정신)의 윤리적의미를 재발견하거나 진작 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예를 형제로 맞아들이는 초대교회의 기풍(ethos)이 수세기 후에 노예제도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원리적 중요성을 교회가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미추, 남녀, 흑백, 귀천, 노사, 남북, 동서, 고아도 과부도, 작은 자도 차별하지 않는 성숙한 기풍을 진작시켜 이 땅에 모두가 하나 되는 영적 관행을 정착시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공동선을 추구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결의 기풍이 이 땅의 윤리로 자리 잡아 가도록 우리는 보다 힘써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공동체의 성결을 무기로 요단을 넘었습니다.우리도 저 세상 여리고를, 우리 이 시대의 향도- 성결공동체의 공동체적 성결로 간담을 서늘케 합시다. 우리는 공동체의 성결이 구호가 아닌 능력으로, 깃발이 아닌 실천되게 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백성 앞서 진행해 나아가야 할 성결공동체의 장래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요한 웨슬리 선생은 이 말씀을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 되었다. 지상의 모든 거주자들이, 인류가, 매사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다시 촉구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그리하면,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 3: 5절

할렐루야,
아멘.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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