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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479: 처음처럼-임직자 후보 훈련 개회 예배 설교
2010.01.21(목)

처음처럼
사도행전 6장 1-7절


일곱 일꾼을 택하다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자 되어가기, 성도 되어가기, 임직자 되어가기, 목사 되어가기 란 없습니다.
‘되어가기’ 란 없고, ‘됨’ 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 만이 그 섭리 속에 선행적으로 완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자녀 됨은 미완료 시제가 아니라, 완료시제입니다.
임직자 됨은 완료 시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두려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할,
영적 숙제인, ‘~답게’가 있습니다.


그의 자녀답게, 임직자답게, 목사답게 행하고 사는 일이 택함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답게’ 행하고, 사는 일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오늘 임직자로 택함을 받아 그 소정의 행정적, 교육적 절차를 받는 이들에게 있어,

‘임직자 답게’ 행하고, 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답게’,
‘임직자 답게’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 마음, 처음처럼 행하고, 사는 일입니다.

우리의 실패는 우리의 아담이 그 첫 마음, 처음처럼 행하고, 사는 일에 대한 실패한 실패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던, 심히 좋았던 인간 아담과 이브는, 그 첫 아름다운 상태를 그들의 불순종으로 추악하게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창세기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종말론적 묵시론인 요한계시록 서두에서도,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구절이 나옵니다. 알파의 실패요, 오메가의 실패입니다. 바로 그 불순종의 실패의 역사 속에 우린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첫 마음, 처음처럼 행하고, 사는 일에 실패를 거듭하며 삽니다.그러나 가룟 유다처럼 그 첫 마음을 견지하지 못했다고, 결백증적인 양심선언으로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린 베드로 사도처럼, 그 첫 마음의 실패와 배반을 십자가로 지고, 끝내 그 실패의 흔적과 싸워 종국엔 제 십자가 제가 지고 주를 따른, 순교자적인 신앙고백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여기 모인 임직 후보자들은 이제, 경계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평신도와 목회자, 평신도와 평신도 사이의 경계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휴전선 최전방 경계근무를 하는 이들이 젤로 어려운 군대 생활을 하듯, 이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막중한 사명을 위해 그 신앙공동체 경계근무를 서야할 장로, 권사, 안수집사들의 사명은 실로 막중합니다. 경계란, 어느 지점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우리의 신앙하는 태도가 우리 신앙공동체의 오늘의 안녕과 내일의 번영을 결정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경계에 선 첫 임직자들이 그 첫 마음, 처음처럼 임직자들이 제 역할을 다해 냄으로,
본문 7절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 는 역사가 오늘,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뤄져야 합니다. 이 소망이 여기 모인 임직 후보자들의 소망이라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흥의 비결에 대해 성경은 그 비결이 제도와 사람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공동체의 목회와 행정 체계를 구분하는 제도와 그 직임에 적합한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고 일러줍니다.

목사의 목회사역의 협력자인 평신도 지도자들의 자격을 오늘 본문 말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3절)이라고 말합니다.

하여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제자들을 그들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러자 말씀이 흥왕하고,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그 처음처럼, 우리 여기 모인 임직 후보자 분들도 그런 자격을 갖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우리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로 선정된 분들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임직자들의 자격에 대해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 안에서 간단하게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그들은 성령이 충만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일회용 소모품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목적, 의지,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성령을 사용해선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그 은사를 내 것 삼으려 할 때, 인격적인 성령님을 모독하는 일이 됩니다. 가르치는 일, 감독하는 일, 권면하고, 돌보고, 섬기는 일, 선택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결정권 등등, 그 은사를 행사함에 있어 우리는 성령을 거스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성령은 인격적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판단, 욕심을 우리가 앞세우면 그분은 뒤로 물러서 버리십니다. 그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무서운 일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공동체에는 부흥이란 없습니다. 부디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 임직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들은 지혜가 충만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요청되는 지혜란, 살리는 문법을 구사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는 일입니다.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고, 상처를 싸매주며, 봉합하는 지혜가 요청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경청이 지혜를 이루는 필수적인 태도입니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어느 편 사람의 이야기라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생명의 고동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혀와 귀에 지혜를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다 들어주고, 간절히 기도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처럼 배를 가르지 않고도 봉합하는 지혜자가 되길 바랍니다.

혀와 귀에 지혜를 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초대교회가 그 임직자들을 세우게 된 결정적인 동기였습니다.
1절 말씀이 그 근거입니다.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매일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네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 사이의 구제문제가 불평, 불만의 원인이 교회가 혼란케 되었다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과 다른 귀의 혼재가 교회를 혼란케 했습니다. 이 혼란한 사태를 해소할 지혜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루살렘교회에 첫 임직자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임직자를 세운 동기입니다. 그래서 혀와 귀가 지혜로운 일곱 집사를 예루살렘교회는 세웠고, 그러자 교회에 말씀 부흥과 영혼구원의 폭발적인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셋째, 임직 후보자들은 참소망의 인내를 아는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구제 공동체만이 아닙니다. 임직자들의 사명이 교회의 재정 관리 등 회계행정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예를 보더라도, 임직자들이 해야 할 소중한 영적 사명이 더 있음을 봅니다. 스데반은 그 목숨을 잃은 핍박 속에서도 성령 충만하여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이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행7:55-56).”

그 임직자들이 발휘해야 할 지혜는 ‘소망의 인내’를 교우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교회는 종말론적인 승리를 목적 삼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평신도 지도자인 임직자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종말론적 승리를 향해 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인내하지 못해 넘어지고, 탈락해 버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붙잡아 줘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임직자들의 임무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그 유언 같은 권면에서 한 ‘지혜’에 대해 바울사도의 입을 빌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 지친 성도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며(8절), 그분의 더디 오심은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벧후 3:9)는 것이라고 일러 줍니다.

그러면서 15절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 다고 소개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받은 지혜란, ‘소망의 인내’를 논함에 있어 ‘참소망의 인내’는 우리가 아니라 외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아는 것이라 고 소개 합니다. 우리의 재림에 대한 ‘소망의 인내’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다시 오실 주님의 ‘참소망의 인내’로 인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참소망의 인내로 우리가 승리하길 바라시는 주님의 인내를 우린 배우고, 익히며 또한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가 충만한 자의 사명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인격적인 성령 안에서, 성령을 소멸하거나,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혀와 귀의 지혜를 담아 성도들의 아픔에 귀 기울여 줘야 합니다.
참소망의 인내를 아는 지혜로 우린 종말론적인 승리를 함께 얻는 영적 지도력을 갖춰야 합니다.이렇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명실상부한 임직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할 때, 7절 말씀처럼, 여러분들이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당부합니다.
산정(山頂)을 향하여 나아가는 알피니스트가 돌부리에 넘어졌다고 등정을 포기하지 않듯, 천성을 향해가는 우리들 또한 한, 두 번의 그 사명에의 실패 때문에 도중에 주저 않거나. 포기해선 안 됩니다. 한, 두 번의 실패 때문에 가룟 유다 때문에 결벽증적인 양심선언으로 물러서거나, 콱 죽어버리지 말고, 베드로처럼, ‘처음처럼’ 날마다 자기를 쳐 주께 복종하는 순교자적 신앙고백으로 끝내 승리를 쟁취하는 사명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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