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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묵상 묵상 6 - 그 깊음(Depths)에의 복무

2008.03.22 07:38

김성찬 조회 수:865 추천:50

막15:46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무덤에 머무르신 날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6절을 듣습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신학을 전공하고, 소설가로 전업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전업작가로 맹활약을 펼치면서도, 늘 그 본디 소명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자신에게 써 준 한 귀절의 격문

"소설로 복무하며"

라는 말에 그는 자신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로 그 '복무'를 대신하고 있음을 깨닫고 큰 위로를 받

았노라고 말한 바가 기억납니다.

 

여기, 그 깊음에 복무하신 이가 있습니다.

그 해조차 빛을 잃을 만한 깊은 징벌에 복무하고 계신 이.

바로, 오늘 그 무덤에 머무르신 예수십니다. 

 

탈영한 아들 땜에 한 겨울 길고도 깊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친지를 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어미는 탈영한 아들 녀석의 안부 만큼이나 탈영으로 받게 될 내일의 징벌에 대해서도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의 복무 이탈은, 한 젊은이의 장래가 달린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그 장병은 군대로 복귀했고, 일정한 댓가를 치루고 남은 복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함께 애를 태웠던 난, 그때 새삼 절감했습니다.

복무에 충실한다는 것이, 자신은 물론 그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은 그 깊음에서 복무한 예수님의 예표가 될만 한 이들의 그 깊음에의 복무에 대해 말헤 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 욥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욥은 불시에 그가 당한 재앙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욥 23장 2절).

 

혹독히 원망하며 내뱉은 탄식보다 더 중한 재앙.

그는 그 재앙을 복무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23장 10절에 그 유명한 고백을 남깁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 중에도, 그 재앙된 사명을 복무하는 이들이 만만찮게 존재합니다.

정녕, 재앙같은 복무지만,

성경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에 이르도록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베푸시는 유한한 연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의 고난은 바로, 그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스스로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6).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고난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기 죽음이었습니다.

 

그 깊음에 탄식하고 있는 사명자들이여,

자신의 쥐꼬리만한 공적, 의로움을 과신하지 말고, 내세우지도 말고,

스스로 낮아짐으로,

그 거룩함에 이르는 허락받은 사랑의 연단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받겠습니다.

 

그 깊음에의 복무는 낮아짐의 복무입니다.

그 복무의 깊이는 자기를 거룩하신 이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깊이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

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깊음에의 복무

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낮춤의 복무'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이 깊음에의 복무는 반드시 그 찬란한 마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깊음을 복무한 욥은 갑절의 복락을 이 땅에서도 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깊음에의 복무' 즉, '자기 낮춤의 복무'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난 이름, 하늘과 땅, 땅 아래 있는

자들로 예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했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복락으로 임했습니다.(빌2:9-11).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시어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의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욥기 19장 25-26절은 이미 이런 사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

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이 말씀이, 곧 그 깊은 음부에 머무게 될 것과 육체의 부활을 이루게 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오늘, 그 깊음에 복무하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함께 따르며, 우리의 사명을 다시 다져봅시다.

성도로서 사역자로서.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힘겨운 가장으로서, 주부로서. 그 어떤 위치, 그 어떤 형편과 처지

에서든 이 깊음을 성실히 복무합시다.

 

저 유명한 부활장(고전15장)을 바울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