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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686: 주의 은혜의 해 - 그 일상의 행복(주일설교)
2011.03.20(주일)


주의 은혜의 해 - 그 일상의 행복

누가복음 4장 16-19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이사야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셨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자신의 사명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열 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 귀신들린 이들, 한센 씨 병으로 스스로 자기 가족들에게서 멀어져 간 사람들 그리고 세리 삭개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으로 건강한 삶이 결손 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불편하고,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예수를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최초로 선포하신 오늘 말씀의 주제가 ‘일상의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상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저들에게, 일상의 행복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의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8장에서는 많은 병든 사람들을 다 고치신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8:14-16).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그 이유는, 다시 말해 그분이 땅에 오신 목적, 우리들의 일상의 행복을 이루시고자 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3장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선포하신 메시아의 사명에 대한 예언,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이 예언은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주의 은혜의 해는, 우리의 일상의 행복이 회복되는 해입니다.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일상의 행복’에 대해 묵상해야 합니까?

작금 우리는 일상의 행복의 파괴 된 피폐한 인류의 삶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대지진은 그 피해지역의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던 먹고, 자고, 일어나 일하는 일상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렸습니다. 저지난주 금요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크고,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는 천재(天災)입니다. 예고도 없이 땅과 땅이 맞부딪히자, 한순간에 집과 차와 세간들이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집뿐만 아니라 자기 생명과도 같던 가족들이 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단잠을 자고 일어나, 일터로 나가던 평범하던 일상이 어긋나버렸습니다. 일상의 행복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는 또한 인재(人災)입니다. 방사능 유출로 먹을거리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는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엄습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30km 떨어진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유, 시금치에 방사능 물질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도쿄 수돗물에 미량의 요드가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이젠 날 것으로 먹던 생선조차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열도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본 탈출에 앞 다투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상의 행복은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전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 이상으로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려는 인간들의 욕망의 발전소가 폭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지 않기만을 인류는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일상의 행복이 깨진 것은, 인류가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을 탐한, 인간의 가이없는 욕심의 결과입니다.

지금부터 25년 전 체르노빌에서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 현장 정화 임무를 수행했던 루리 안드레프 씨는 "일본은 매우 탐욕적으로,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면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임 틀림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재앙은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 지식인들의 오만한 탐욕, 원자력업계의 탐욕, 산업왕국의 꺾일 줄 모르는 자만심 때문에 자초한 것입니다.

영국의 목사요 시인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의 탄식입니다.

“비통한 심령이여, 애통해 하라

그대의 하나님이 침묵을 거절하시니,

그분의 뜻을 누그러뜨리는

약간의 비난과 불만을 품어 본다.”

이 사태에 딱 적합한 시구입니다. 오늘 원전의 위협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끝 간 데 없는 탐욕에 대해 침묵하시기를 거부하시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그분의 뜻을 누그러뜨리는 약간의 비난과 불만입니다. 선생님의 진노를 누그려 뜨려보려고, 미리 손들고 선 아동의 심사(心思) 같은 것입니다. 허버트는 무릎 꿇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 권면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기도한다.
 
무릎 꿇고 땅에 엎드리며,

소리지르며 위를 향하는구나

먼저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터이니

기쁜 마음으로 즐거워하라.”<George Herbert>

우리가 이번 일본대지진 사태를 통해, 지구가 ‘활물(活物)’임을 통감했다면, 이 지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살아 활동하고 계심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와 역사와 심판의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그날’이 도래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기독교의 행태를 넘어 본질이신 창조주의 심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영적 묵시입니다.

원전은 무섭습니다. 나는 진보매체에서 원전의 피해에 대해 심각하게 거론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 심각성에 둔감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나에게 그 심각성을 생생하게 감지케 했습니다. 독일이 2018년에 이르면 원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대체 에너지를 개발 중이라는 보도를 봤습니다. 선진이란, 더 많이 챙기고, 더 많이 누리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선진이란, 많은 것을 누리려는 탐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의지적 노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도덕적인 사회가, 이기적인 국가 조직이 그 탐욕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인류가 공동으로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였으면 합니다.

이상이 이기주의 집단인 국가라는 구조적 인간 탐욕의 문제라면,
여기 소시민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개인적 욕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습니다.

저는 놀라운 한 증언을 대했습니다. 일본대지진과 지진해일에서 살아 난 어느 한 사람의 증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살아남았는가? “해일에 휩쓸려간 사람들은 지진해일이 일자, 집 안으로 뭔가 챙기러 들어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해일을 피해 곧장 안전지대로 도망쳐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일러 주셨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마24:17-18).”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봐서는 안 됩니다. 어제를 아쉬워하거나, 어제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짝하지 말고, 이 시간 주께로만 나오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새로운 구원은 뒤돌아보지 않고, 세상을 챙기러 뒤로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행복을 원하거든-앞만 보고 뛰어야 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거기다 더해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자본주의 세상은 마치 곳간에 식량 넘치도록 쌓아놓고, 내일 일을 자랑하며, 제 배를 두드리는 한 부자와 같은 형국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자신의 영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자입니다. 제 곳간에 쌓인 여러 해 쓸 물건에 생명과 구원과 행복이 있다고 여기는 물질만능에 경도된 사람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19-21).”

물질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오늘의 자본주의 세상이 하나님께 대하여 심히 궁핍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일상의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 가지고, 함부로 내일 일을 자랑하거나(눅12:19), 내일 일을 염려해서는 안 됩니다.(마6:34)


우리는 심각한 물질만능과 오만한 과학만능 세태가 가져 온 가공스런 사태 속에서,

무엇보다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6:33; 눅1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6:31-33) 

왜냐하면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the Lord’s favor)에 선포된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일상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나라란?
평범한 일상이 결손 되고, 변질된 세상과 개인들이, 주의 은혜의 해에 선포된 일상의 행복을 한껏 누리는 나라입니다. 가난, 질병, 갇힘 등에서 해방된, 일상의 행복이 회복된, 예수 안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란?

일상의 행복을 깨뜨리는 불의를 쳐부술 그분의 의로우심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란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복원된 일상의 행복을 자기 안에서 누리며, 이웃과 나누는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불의한 세상에서 쓴 맛을 보고 사는 인생들에게, 이 일상의 행복을 회복하여, 누리고 나누는 삶을 구하라 권면하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제 일본 대지진 참사를 중계하던 T.V에 등장한 한 이재민의 이야기입니다. 졸지에 이재민이 되어 굶주리고, 혹한 속에 시달리며, 더러 죽어가는 참혹한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단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나는 그의 멋진 대답을 들으며, 일상의 행복이 ‘생각하고, 감사하는’ 그 사람 안에 깃들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생각하라!

감사하라!

그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불편한 일상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은 사실”만을 귀히 생각하고, 감사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일상이 행복해졌다는 겁니다.
그런 지옥과 같은 형편에 처해 있는 사람이 그러할 진데, 우리 세끼 따뜻한 밥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잠자고, 샤워도 언제나 즐길 수 있으며, 먹을거리가 안전하고, 가족들이 안전하며, 일 할 직장이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우리가 주 앞에 예배하러 올 수 있는 행복,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행복, 직장, 학교에 나갈 수 있는 행복. 이것들이 다 일상의 행복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것들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부디,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일상의 행복은 이렇게 우리 안에 있습니다. 원망과 시비와 불평을 버립시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버립시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넘치는 복락인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 - 일상의 행복이 지배하는 나라’를 구하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애굽의 고깃가마로 고개를 돌리지 말고, 일용할 만나와 메추라기에 담긴 자유와 행복에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라!

생각하고, 감사해 할 줄 아는 영혼들은, 수고를 아낄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누리고, 나누는 삶이 일상의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되도다.(행20:35)”
앞에서 인용한 누가복음 12장의 ‘한 부자의 비유’도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제발 자기 형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내게도 나눠주도록 권면해 달라는 간청을 드리자,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입니다. 일상의 행복이란 꽃은 나누는 수고 속에서 피어납니다. 일본 사람들의 남을 위한 배려가 세인들의 주목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 남을 먼저 배려하는 수고에 일본 재건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3-34절 말씀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낡아지지 않는 배낭. 그 튼튼한 금고는 나눔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소유합시다. 그 배낭은 우리의 일상의 행복을 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생명의 인류학이요, 살림의 인류학입니다. 그리고 나눔의 인류학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한 인류의 재앙, 평범한 일상의 훼파는 먼저 믿는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됨으로만, 복원할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들의 사랑의 수고만이 그 회복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선민이란 민족이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고생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이상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고 누리는 비결입니다.

우리 103차 지방회장단 동기 목사들이 지난 주 투병 중인 친구에게 성금을 모아 보냈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질병에 빼앗긴 친구에게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일서를 묵상하다 나는 동기들에게 사랑을 모아보자고 했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 말과 혀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의 성금을 모았습니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구차한 중에 모은 성금이어서 더 빛이 났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서로 행복해졌습니다. 일상의 행복이 가득 우리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나눌 수 있을 때, 살아 있을 때
, 서로 나눠야 합니다. 나눌 형편이 안 되는 세상에서도, 양보하고 나누는 미덕이 그 참담함을 넘는 희망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 먼저, 주께서 나와 우리에게 베푸신 일상의 행복을 깨달아 알아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삶을 삽시다. 그리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충만한 일상의 행복이, 주안에서 성도 여러분에게 날마다 임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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