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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6: 테드 강의 리더십

2017.12.17 16:50

김성찬 조회 수:95

2626:
2017.12.11(월)

LEADERSHIP, 여럿이 함께 가는 방식2017.12.11(월)
테드  2017.12.12.(화)
리더십-여럿이 함께 가는 방식
김성찬

각자도생이란 용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각자도생【명사】【~하다|자동사】이란,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 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신명기서 28장 7절 말씀,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28:7-“는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일곱 길로 도망가는 것, 각자도생은 패잔병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작가 공지영이 쓴 페미니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제목이 부추기듯,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저마다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개(個) 교회 주의가 강한 개신교회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세례까지 받아, 각자도생의 길을 의연하게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교회, 내 교단만 잘 되면, 모든 것이 잘 된 선(善)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연합하는 일(시133:1)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그 구체적인 사례가 말씀 속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3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를 만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본문을 이끌어가는 중심 단어가, 연합, 연결, 연이어 등입니다.

"그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그 다섯 폭??서로 연하고(출36:10).“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어 그 앙장을 연합(聯合)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출36:18).” 

성벽 재건 이야기인 느헤미야서 또한 합력하여 이룬 선,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은 성도들의 상호협력을 이어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육간의 연대를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온통 '그 다음은'이란 말로 구슬을 꿰고 있습니다. 한 구절만 예로 들면,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요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보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인 므술람이 보수하였으며,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인 사독이 보수하였다(느3:4)”입니다. 느헤미야 3장 전체에는 '그 다음에'라는 말이 28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그 다음에'라는 용어가 주제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은 사심 없는 이들의 기도와 물질과 봉사.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대가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연대가 대를 이어 계속될 때 그 공동체는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엡2:22)가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소개 된, 성경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한 리더십은
여럿이 함께 가는 방식으로서의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가는 방식이 성공하려면, 여럿이 함께 가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허드렛일을 할 때에도 신(神)의 임재를 맛보는, 영혼이 유연한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이 밑받침 될 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이라는 용어는 경영학자 그린리프(R. Greenleaf)에 의해 1970년대 초에 처음으로 소개 됐습니다. 그는 헤르만 헤세(H. Hesse)가 쓴 <<동방 순례>>에 나오는 서번트인 레오(Leo)의 이야기를 통해 서번트 리더십의 개념을 발견하고, 정리해 인류에 소개 했습니다. 즉, 허드렛일을 죄다 도맡아하던 레오가 사라지자, 즉 서번트 리더십의 소유자가 사라지자, 그가 속했던 조직이 깨진 사실을 그린리프(R. Greenleaf)는 그 허구 <<동방 순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빚는 작은 창조자입니다.   

나는 지난 2005년에 이어 지난 2007년 5월에도 펜실바니아(Pennsylvania)주 랑카스터(Lancaster)라는 도시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재세례파(Mennonite) 성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 신대륙으로 들어 와 정착하여 세운 종교도시입니다.  그 도시에서 빼놓을 수없는 또 하나의 신앙적 보물은 SIGHT &SOUND THEATRES입니다.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성경 이야기를 복음적으로 각색한 뮤지컬을 공연하는 2천석 규모의 대형 극장입니다. 그곳은 평일에도 미 대륙 전국각지에서 찾아 온, 미국을 이끄는 참 힘인 2천만 복음주의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그 도시는 미합중국을 이끄는 복음주의의 힘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매우 귀한 곳입니다.

2007년에는 그 뮤지컬 "In the Beginning"(천지창조)을 감상했습니다. 입체적이고, 환상적인 초대형 무대와 복음에 온전히 절은 뮤지컬 가수들의 열창은 매우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과연 미합중국을 이끌어 가는 참된 힘, 그 복음의 힘이 절감되는 한 사건이었습니다. 영어로 노래하는 뮤지컬인지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성극이라서 그 흐름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와(이브)가 아담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아담을 향해 울부짖으며 곡하던 노랫말 중 이런 가사가 순간 귀에 속 들어 왔습니다. 

"You are my creator." 
"---!!!." 

순간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그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어가는 우리는 장인(匠人)이라고.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창조자입니다. 아내 또한 남편의 창조자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빚는 작은 창조자입니다.

잘 난 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끌어가는 제왕적 리더십이 빛을 잃어가는 시대입니다. 너희가 서로의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는 말씀을 이루는 리더십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끝없는 자기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는 성장지상주의에 물든 교회 중에, 그 성장의 과실이 극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불평등한 현실을 아픈 맘으로 직시하는 목사들이 더러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타 교회 신자들은 받지 않기로 했다는 분당의 이 아무개 목사나 일 년에 몇 차례 씩 작은 교회를 위해 자기 교회 문을 닫는 인천 ㅂ교회 목사의 고뇌에 찬 결단이나, 교회 분립 개척을 사명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인천중앙 안 목사의 '나비섬'(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균등 성장 선교 비전은 이 시대정신, 즉 이 시대에  요청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인 결과입니다.

물론 그 의도의 순수성이 쉽게 빛을 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대 자본(교회)의 힘과 자부심과 명예와 편리와 특혜 등에 물든 기독 승객들이 불편한 외발 자전거에 몸을 옮겨 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한국 교회는 여럿이 함께 가는 방식으로서의 리더십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벧세메스로 향하던 한 겨리의 암소처럼, 우리는 함께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발맞추고, 어깨를 겯고 여럿이 함께 가는, 영혼이 유연한 서번트 리더십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삼상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