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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4(목)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2017년 성탄의 절기에 여러분 함께 나눌  
말씀 제목은,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입니다.  
본문은, 스가랴서 9장 9절부터 12절과 요한복음 12장 12절부터 16절입니다. 
  
저는 양지교회 담임 목사인 김성찬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임마누 엘!! 
 
임마누 엘이란, 무슨 의미 입니까? 
 
임마누엘 (히브리어: עִמָּנוּאֵל, Immanuel, Emmanuel, Imanu'el)은  
먼저, 옛 약속 -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약 2,700여년 전에 선포된, 오실 메시아 예언에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 예언이 선포 된지 700여 년 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눅1:1) 기록한 신약 성서에서는 다시 마태복음 1장 23절에, 임마누엘이 등장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23~5).”  
 
임마누엘은 두 개의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임마누 (עמנו, Immanu, 우리들과 함께 있다)와 엘( אל, El, 하나님)을 조합한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눅1:1),”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임마누엘’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행운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옛 약속의 성취를 우리는 이미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지키는 강림절과 성탄절은 이미 벌써 2천 년 전 유대 땅에 강림하시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뻐 반기며, 그분을 함께 누리는 대표적인 절기입니다. 
 
그런데, 기쁜 성탄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어둡고,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복을 우리가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함으로 그분과 함께하는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처럼, 우리는 진정한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습이 반복의 기적이듯,  
우리가 임마누엘의 신앙을 회복하는 길은, 말씀을 다시 펼쳐 읽는 일입니다.  
 
임마누엘 예수 안에 어떤 약속을 이루는 복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스가랴 선지자는 주전 500여 년 전에, 잡혀갔던 바벨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 사람들 가운데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궁극적인 구원으로 가는 길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궁극이요, 완성인 길이 임마누엘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1)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평화의 왕은, 그 예언 선포, 500여 년 후,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나사렛 예수’이시었습니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요12:14,15).”
 
그러나 당시에는 임마누엘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이 약속의 성취를 깨닫지 못했습니다.(요12:16a) 그러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요12:16b) 제자들이 깨달아 알았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불신앙에 갇힌 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불신앙을 해소해 주신 메시아의 구원 방식은 죽어야 사는 영광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스가랴서 9장 11절에는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슥9:11)”라고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을 예수께서 몸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 이미 이루신 구원 사건을 보고, 듣고, 만지면서도, 행여 우리는 예수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평화의 왕이 임마누엘로 임하셨는데도,  
우리네 환경과 심령이 어둡고, 답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 갇혀 있기(슥9:11)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의 제자들처럼, 갇혀 있습니다. 
불신앙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에만 갇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에만 갇혀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나 밖에 모르는 연약하고, 근시안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욕망을 충족하는 바람만 내 안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당장 손에 잡히는 현찰 같은 것에만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실 물을 구하러 우물가로 나왔던 수가성 여인처럼, 우리는 물이 없는 구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물 없는 우물가에서, 마시고 마셔도 다시 목마를 물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이 시대를 사는 바로 우리 영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갇혀 있으나 갇혀 있지 않은 자들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슥9:12a)이 바로, 그들입니다. 
 
감이후지(坎而後止)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구덩이를 만나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 라는 말입니다. 긴 가뭄에도 탄식과 투정이 없는 농심(農心)처럼, 갇혀 있으나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의 심령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구덩이는 불가항력적인 형벌의 웅덩이입니다. 웅덩이는 스스로 차고 넘침이 없습니다. 채워줌으로만 차는 구덩이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이 또한 빈 웅덩이를 채울 수 없습니다. 웅덩이를 채워주는 신비는 전적으로 하늘로부터만 임합니다. 허니 불가항력적 상황에 맞서며, 원망과 시비를 일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갇혀 있는 자가 할 일은,  
단 한 가지 ‘소망’을 품고 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슥9:12a)
 
구덩이에 빠진 이가 품을 수 있는 ‘소망’이 과연 그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신앙의 이스라엘을 외면하시어, 무려 4백여 년 동안이나 물 없는 구덩이에 이스라엘이 빠져 있던 때에, 아기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 아기 예수는 시므온과 안나에게 이스라엘이 간절히 소망해 마지 않던, 그 기쁜 소식으로 임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슥9:12a)이었습니다(눅2:25~38). 
 
맘문을 열어라
어린 나귀 등을 의지하신
공의로우신 평화의 왕이 들어오시리니(슥9:9)
그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32)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져 계십니까?
성탄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베푸신 그 웅덩이를 차고 넘치게 채우는 폭포수 같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1~2♡
 
이것이 우리가 부를 새 노래입니다.  
성탄 찬송은 곧 하나님께 올릴, 하늘 당신이 내 입에 두신 찬송입니다. ♬   
 
캐럴(carol)송과 함께 다시 찾아 온 성탄처럼, 2017년에도 다시 오셔서 나와 함께하시겠다는 구세주의 애절한 ‘임마누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삼읍시다. 비록 물 없는 구덩이에 갇혀 있어도,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 주님의 소망을, 내 소망 삼는 영혼이 됩시다. 그리하면 다시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이 성탄의 계절에 수가성 여인처럼 받아 마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얽힌 것에서 풀어놓아 자유하게 하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함께 보(사40:4,5;눅3:5,6) 
는 새 역사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2017.12.14.(목) 오후 2시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