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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목사를 아십니까?(이종완 원로 목사(대광교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 설봉식 목사

 

먼저 저를 성결교회 목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결! 그 얼마나 가슴 떨리는 복음입니까? 지면을 통해 제가 받아 누린 개인적(내적) 성결체험이 어떻게 사회적 성결로 이어졌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거듭난 이후,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사명의 길에 들어섰습 니다.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성결이란 단어가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무겁고 힘들게 여겨지는 단어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결에 대한 압박감을 지닌 채,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틈틈이 학교 뒷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러던 어느 한 날, 성령께서 저에게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셨습니 다. 우리 시절에는 배고픈 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학우들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학비를 제 힘으로 벌어야 했기에,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물론이고 방학 때는 더 열심히 일을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주셔서 이것저것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제 호주머니는 점점 풍성하게 채워졌습니다. 

 

그런 나의 호주머니를 성령께서는 주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너에게도 부자 청년처럼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너의 호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네 형제자매들과 나눌 수 있느냐?” 

 

돌이켜보면, 성령세례와 중생의 체험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은 은혜와 그 기쁨으로 신학생이 되었고, 성결체험이란 말이 그때 저는 중생 이후 점진적 성화의 다른 말이 아니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그 밤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물질적 탐욕마저 완전하게 정화시켜 성결케 하시는 ‘두 번째 은혜’를 성령께서는 제가 누리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충만해진 성령의 감동하심을 힘입어 주저함 없이 “모든 것을 다 주를 위해, 이웃과 더불어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태어나면서 부터 허락하신 육체적인 강건한 힘까지 아낌없이 주의 이름으로 이웃과 나누겠습니다.”라고 불타는 맘으로 주께 고백을 드렸습니다. 순간, 뜨거운 불길이 내 소욕을 불살랐습니다. 그것이 호주머니의 회개로 맛본 나의 성결체험입니다. 

 

걸어 다니는 사회복지사 

 

그 후 제 눈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배고픈 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학비를 못 내서 휴학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 습니다. 그 전에는 비록 신학생들이라고 하지만 왜 저들은 굶으면서, 등록금도 마련 못하면서 몸을 움직이려 들지 않을까, 기도하면서 수렁에 빠진 마차를 끌어내는 일이 마부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입술로 정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산 기도 중 홀연히 제게 임한 성결의 은혜 속에서 저는 제가 은근히 그들을 게으른 자들이라고 정죄하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마지막 남은 저의 은밀한 죄를 성령께서는 깨달아 알게 해 주시고, 성령의 불로 태워 주셨습니다. 

 

그 산 기도 중 받은 성결체험은 저의 의식과 태도를 완전하게 변화시켜 놓으셨습니다. 그 체험 후, 저는 선후배 신학생들의 등록금을 보태주고, 무엇보다도 밥을 굶는 신학생들에게 식권을 나누어주며 은혜를 나누는 성결의 기쁨을 누려 왔습니다. 그 후 신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그리고 연이어 수학한 박사과정을 거치면서도 식권을 신학생들과 나누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학우 중 한 분이 그때 저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습니다. “Walking social welfare worker”, 걸어 다니는 사회복지사 였습니다. 이것이 다 저의 개인적, 내적 호주머니 성결체험이 외부로 드러나게 된 사회적 성결이고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개척목회 시절, 교회 부지를 산 후 교회가 물질적으로 압박을 받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도 다른 교회에 손 벌리지 않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물질적 필요를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수입이 생겨 조금 여유가 생기자 저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새벽에 운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당일 수입을 쪼개어 개척교회 목회자 집들을 돌며, 먹을 거리를 한 덩이씩 나누어 주며 교회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렇게 신학생 시절 기도 중 호주머니의 회개로 성결체험을 맛본 저는, 그 은혜를 지속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목회사역도 호주머니를 열어 나누며 성결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결의 빛을 다음 세대에 

 

청소년 시절 그리고 신학교 시절, 시골에서 올라 온 친구들이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늘 보며 자랐습니다. 저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시골 출신이었기에 더더욱 공부하는 학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학사관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자 왜 그렇게 크게 짓느냐며 저를 나무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를 크게 지어야 했습니다. 역사의 주인 되신 여호와께서는 저에게 주신 구체적인 꿈을 교회당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가는 길을 성령께서는 저에게만은 막으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사명이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 목회 인생 30년을 곁에서 지켜 봐 주셨던 존경하는 이종완 원로목사님께서 2011년 4월 11일에 있었던 우리 마천동교회 입당예배에 오셔서 이렇게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설 목사를 아십니까? 산꼭대기에 갖다 놔도, 광야에 내버려도 우뚝 설 설봉식 목사를 당신들이 아십니까? 선배 잘 섬기고, 후배 잘 보살피며 나눠주는 데 천부적 은사를 지닌, 설 목사를 아십니까? 가정, 교회, 지방회, 앞으로 총회 그리고 송파구 초교파연합활동에 있어 섬김으로 늘 그 중심에 서 있는 설 목사를 여러분은 아십니까?” 과분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에 굴복했던 성결체험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음을 제 삼자의 입을 통해 증명해 주셨습니다. 

 

학사관 유치를 위해 저희 교회를 5층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건물만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사관에 들어 올 대학생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한 또 다른 영적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십 명의 대학생들을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는 육체적인 일을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 품을 떠나온 대학생들에게 영적 감화를 안겨줘야 한다는 숙제가 저와 아내에게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냥 밥이나 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 길연순 사모에게 신학 공부를 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내는 여러모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울신학대학원(M.Div.) 과정을 잘 마쳐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바라던 성결교단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오늘도 학생들을 위해 밥 짓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밤낮 없이 그들의 영적 보호자로서 상담과 기도, 말씀 양육하는 영적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인 사역, 오역으로 그 튼튼했던 몸이 여기저기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힘에 지나도록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학사관에 머물다가 방학에 시골에 내려간 학생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돌봤기에 우리 아이가 저렇게 신앙 안에서 변했는지 놀랍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더욱 힘써 영육간에 잘 먹이고, 돌봐야겠다고 우리 부부는 다짐하곤 합니다. 

 

날마다 맛보는 오병이어의 기적 

 

신학생 시절 학교 뒷산에서 기도 중 순간적으로 받은 성결체험에서 우러나온 그 결단이 오늘까지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길연순 목사를 비롯한 우리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기도의 힘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결의 빛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고 힘쓰는 우리 교회의 몸부림을 안타깝고 귀하게 봐 주신 총회와 지방회와 지교회들, 그리고 성결가족들의 물심양면 지원과 지지, 격려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여전합니다. 학사관에 대한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자원했던 큰 건축 빚에 더해, 한때 학사관에 대한 몰이해로 엄청난 세금 폭탄이 떨어져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교단에게도 떠넘길 수 없는,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러나 주 안에서 해소 못할 어려움은 없다 믿습니다. 늘 그래왔듯 주께서 앞서 가시며 행하시리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노역이랄 수 있는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한 번도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저희 부부에게 맡겨주신 이 과업을 감사함으로, 겸허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라 여기며, 허락하실 때까지, 힘주실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그날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마 25:21)라는 칭찬 한 마디를 주님께 받고 싶은 욕심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던 광야의 기적을 날마다 맛보며 삽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 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3-35)는 말씀처럼 돕고 나누는 기쁨을 날마다 맛보며 삽니다. 그 순간의 성결체험을 이같이 일평생 누리고 나누고 전하게 하시는, 생명의 빛이요 생명의 떡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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