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3611: 어머니를 위한 추모사

2020.05.10 08:51

관리자 조회 수:2407

어머니를 위한 추모사
(2000년 7월 25일 화요일/목포북교동성결교회 산정묘지)

어머니.

모든 사람들은 가도, 어머니께서만은 가지 않으시리라 우리는 믿고 있었습니다. 해서, 어머니, 우리는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슬픈 별리가 결코 당신과 우리의 몫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우리가 굳게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홀연히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인간이란 그 누구나 외에 없이 죽음에 붙여진 존재임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 주시고 말입니다. 사람은 가도 세월은 남는 것이라서, 우리는 그 세월의 강가에 서서, 어머니 당신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애닯고 설운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여기 이 산정묘지에 올라, 당신의, 하루가 천 년 같던 아니, 그 천 년이 하루 같은 생을 함께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이 한낮, 시원한 한 줄기 바람 소리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어, 당신의 승리하신 삶의 경이로운 비결을 들려주소서.

우리 어머니, 故 전납실(全納實) 전도사님을 기리며

인간이란 본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숙명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 민족과 역사 그리고 사람과 신앙처럼 말입니다. 이 척박한 땅에 속한 여인, 어머니 당신께서도 선택되어진 숙명적인 삶의 굴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셨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삼일 독립운동의 열망이, 一瞬 밤하늘의 불꽃놀이 패처럼 쉬 사그라져 버려, 민족독립의 소망이 절망으로 변해가던 암울한 시대. 1922년 음력 9월 19일. 그 절망이 만성화 되어가던 조선 땅 전라도 신안군 암태면 도창리에서, 신 새벽을 여는 묵시론적 비전을 지닌 한 복음의 씨알로 당신은, 부친 전종남 님과 모친 김복례 님 사이 2남 2여의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다복한 유년을 보내신 당신은, 이후, 芳年 19세의 나이로 부친이 짝 지워 준 평안도 영변 고을 김용원 님과 혼인하여, 함경도 땅 흥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 작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셨습니다. 외세에 의한 민족의 해방은, 이내 제국주의자들의 노략질에 이 땅이 유린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전역을 휩쓴 천인공노할 로스께의 만행은, 한순간에 당신의 보금자리를 악마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자유인이기를 갈망했던 당신은 1947년, 그 어느 겨울 밤 탈주를 감행 했습니다. 천지를 덮어 버릴 듯 덮쳐오는 동해안의 파도를 거슬러 오른 강인한 생명력은 당신의 주어진 운명에 대한 힘찬 응전이었습니다. 허나, 세상사, 시련은 시련을 낳는가 봅니다. 남녘땅에 안주할 틈도 없이, 1950년 동족상잔의 6.25 동란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적 전쟁은, 당신이 하늘같이 섬기며 존경해 마지않던 두 분의 오빠들을 하루아침에 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라, 고토를 회복하길 갈망하시던 당신의 남편은 분단의 아픔을 온통 자신의 것인 양, 앓아누우시다가 귀거래사. 그 통한의 시대 50년대를 채 넘기지 못하시고는, 홀로 영변의 약산으로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코흘리개 4남매를 남겨 놓는 채, 당신 나이 겨우 37세 때인 그 시린 겨울밤에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를 원망도, 감내키 어려운 시련에 좌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당신은 생존을 위한 거친 투쟁에 몰입하셨습니다. 우주의 질량보다 더한 어린 남매들의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감당코자, 그 여린 머리에 뼈저린 고난을 한 짐 이고지고, 이 섬 마을 저 섬 마을, 역경 극복의 다리를 놓아 가셨습니다. 당신은 정녕 위대한 우리의 어머니이시자, 참된 모성의 표본이셨습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이 과감한 선언은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진 숙명을 단호히 거부하신 당신의 힘찬 역류이자, 끈질긴 생명력이셨습니다.

그러나 선택된 자는 결코 그 선택을 거부 할 수가 없나 봅니다. 앞선 세상사 운명의 모진 굴복 강요는 당신이 단호히 거부하거나, 극복하셨으나, 이 하늘 우리 아버지의 선택하심만은 거부도, 거역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택해 주신 은혜에 감읍하여 당신은 목숨 다해 주께 순명하는 사명자의 길을 힘차게 걸어 나셨습니다.

대천 한 바다 같은 예배당 마루를 쓸고 닦으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짐을 풀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주님을 찬송 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온 주 앞에 엎드린 여인이, 다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좋으니 나 주님만 따라가리, 라고 고백 했을 때, 체계적인 좌절을 통해 영적 성숙으로 이끄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납실아 너는 이제 합격이다.

내가 네 이름자의 뜻이 말하고 있는 바대로,

온전 전(全),
들일 납(納),
열매 실(實),

全納實-온전한 열매를 거둬들이는 나의 종으로 삼겠다!!
라고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 선택 되어진 은혜, 그 길은 멀고 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정녕 평탄하고 형통한 길이었습니다.

유년 시절, 당신은 순교자, 복음의 씨 암탉 故 문준경 전도사님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월남 후에는, 평신도로서 목포중앙교회를 개척하는 성업에 동참했습니다. 당시 성령 운동을 주도하셨던, 故 이성봉 목사님께 성령 세례를 받으셨고, 기도 대장 故 최요한 목사님과 성도들의 추대로 전도 부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故 배응모 목사님과 사역하셨던 복음교회를 거쳐, 모(母) 교단인 故 홍순균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던 북교동성결교회 전도사로 부임해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10여년의 사역을 거쳐, 故 이만성 목사님께서 시무하신 상락성결교회에서 정년을 맞아 명예 전도사로 은퇴하시기 까지 승리의 사역을 이어 가셨던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남지방회 여전도회 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셨고, 그 재임 기간 중에 좀두리 쌀 운동도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모아진 기금이 전남지방회 평신도 회관이자 전남신학교를 세우는데, 그 일익을 담당케 했다고들 말합니다.

교회법에 의해 60세에 당신은 은퇴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더 필요로 하셨습니다. 정년 은퇴 후, 어머니는 다시 교회로 초빙 받아 가시게 된 것입니다.

가문의 기도 제목이었던 교회 설립의 비전을 실현코자 하신 남양 어망 홍순기 장로 내외분께서 어머니를 찾아오셨습니다. ‘개척 교회 기도의 어머니’로 당신을 꼭 모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당신이 승리한 사역자임을 교회는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아닌 당신이 전도사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내가 어느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해 본적이 없었다. 언제나 교회가 먼저 나에게 청빙서를 보내 왔었다,”라는 말씀처럼 당신은 한 평생, 모든 이들에게 좋은 소문 난 전도사이셨습니다. 바로 여기 하관예배를 위해 이 산정 묘지에 모인, 당신이 섬긴 각 교회 성도들이 그 진실 된 사실의 증인들입니다.

당신은 그 간청을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뜻으로 여기시어, 다시 평생을 일하셨던 사역지 목포로 다시 홀로 내려가셨습니다. 그 후 당신은 오늘 하관예배 설교를 맡아주신 양태윤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연세 무려 60대 후반까지 당신은 최선 다해 개척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당신이 몸담았던 유달제일교회는, 오늘 목포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이런 일들이 당신이 세상에서 맛보신 신앙의 기적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큰 귀감이 되는 은혜와 축복 말입니다.

지금도 당신을 아는 성도들은 말합니다. 故 전납실 전도사. 그 덕스러운 양반. 가난한 자의 벗, 병든 자의 치료자, 상처받은 영혼의 진정한 위로자. 그 자애로운 미소와 따사로운 온정을 정녕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만이라고 그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나오는 그 성령 충만한 기도를 받아보고 싶다고들 말합니다.

어찌 학문으로 배워서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그 심령 골수를 쪼개는 시원한 기도가 말입니다. 어떻게 꾸며서 베풀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 넉넉한 덕행을 말입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성도들의 심중에서 우러른 고백을 그들은 이렇게 오늘도 우리에게 쏟아 놓습니다.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되어 흐르고 흘러, 광야 같은 세상을, 사막 같은 영혼을 옥토 되게 하신 당신. 이것이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당신의 신앙의 삶에서 구현하신 작은 예수의 육화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기억합니다. 당신의 마지막 선언,

“테텔레스타이 -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을 말입니다. 우리 모두, 당신의 신앙의 역사 앞에 백기를 들고, 나도 나도 서로서로, 어머니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가겠노라고, 고백 드리자 가쁜 숨을 내쉬며 하신 말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기쁘다.”

시며 몸을 놓으시던 당신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 장면은 마치 믿음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선언 같았다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그 몹쓸 병마에 무섭게 그 육체가 시달리면서도,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신앙 고백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노라, “웬 몸이 이렇게 가볍냐. 참 편안하다.” 하시던 당신은 정녕 최후까지 오직 예수의 사람이셨고, 누구에게나 믿음을 불러일으키신, 능력 있는 전도자이셨습니다. 믿음은 결코 강요되어 질 수는 없다. 그러나 때때로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이다, 라는 심히도 어려운 믿음의 전파 방정식을 당신은 그렇게 최후의 한 순간까지, 당신의 몸으로 구현하고 가셨습니다.

처절한 역사 앞에서는 강철처럼 강인하셨으나, 사람들, 그 성도들과 이웃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우셨던 분.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는 온 몸 내어주신 참된 모성의 표상이셨던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 또한 주님의 교회엔, 낙타 무릎 되도록 지사 충성하셨고, 하늘 우리 아버지께는 온전한 순명으로 한 평생을 사셨던,

故 전납실(全納實) 전도사님.

나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당신은 하늘의 문이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승리를 이 땅에서도 맛본 참 승리자셨습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같으신 이를, 우리는 그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만날 수 가 있겠습니까? 한없이 아쉽고, 분한, 당신과의 안타까운 별리. 어머니! 가지 마세요. 정녕 가지 마세요. 일어나세요. 어서 살아 일어나세요. 이 반편인 자식들을 위하신다면. 어머니......

어떤 이들은, 자녀란, 부모가 가졌던 인생의 한계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뿐만 아니라, 그 약점까지도 자기 것으로 사랑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선택되어진 여인으로서의 당신이 지니셨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며, 그 강인한 실천적 삶의 의지가 오히려 우리의 한계요, 당신이 우리에게 남기신 무거운 과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가정을 건실하게 꾸려 나가야 하며, 왜곡된 역사를 순리대로 바꿔야만 하고, 주님의 교회에는 소망의 인내로 지사 충성해야만 하고, 하늘 우리 아버지께는 그 절대 주권에 온전히 부복해야만 하는 이 거역할 수 없는 당신의 신앙 유산이 말입니다. 어머니. 유약한 우리에게는 이 과업이 심히 막중하오니, 부디 그곳, 하늘의 하늘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보살펴 주시옵소서.

당신의 향년 79세, 적어도 3년은 더 사실 것이라 당신은 생각하셨고, 우리는 10년 아니 영원토록 우리 곁에 계셔 주시리라 생각하고 소망했지만, 그것은 이렇게 한낱 한 여름 밤의 꿈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 당신과의 영결의 순간에도 위로 받는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체세포의 마지막 분신, 평리가 제 발로 유치원 다닐 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발걸음 마다마다에 당신의 발길이 함께 함을 우리는 느낍니다. 그 숨결에서 당신의 깊은 호흡을 맛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어머니의 자녀 손 우리 모두가 당신의 분신이요, 생생한 승리의 열매들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가셨으나, 이렇게 아주 가지는 않으셨습니다. 늘 우리 곁에 계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우리는 어머님께 감히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거울삼아, 어머니처럼 승리한 신앙의 삶, 값진 인생의 삶을 살겠노라고 말입니다. 해서, 우리 모두도 어머니처럼 모든 이들이 저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힘써 주안에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도우소서. 그리고 이제, 우리 하늘 아버지의 품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리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굳게 믿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ㅇㅇㅇ

추모사가 낭독 되었다. 이것은 내가 어머니께 드리는 헌사요, 작은 결단이었다.

 

예배 후, 모든 이들은 진한 영적 감동에 휩싸여 있었다. 사회를 보신 윤의광 목사님께서, “내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의 여러 장례식을 참석해 봤지만, 실로 보기 드문 감동적인 영결 예배였어. 한마디로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삶이었고, 아름다운 마무리였어.”라고 말씀하셨다. “참 은혜가 됐어요.”라고들 이구동성으로 성도들은 예배의 감격을 나누고 있었다. 슬프디 슬픈 장례식 마당까지, 감동과 새 희망을 선사한 훌륭하신 어른. 은혜의 바다. 나는 기원 했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3 3244: 시론/제 74주년 광복절에 부쳐 관리자 2019.08.16 2659
212 3167: 권면 나눔교회 관리자 2019.06.19 2601
211 3275: 설교/ 힘찬교회 청소년 비전센터 개설-마당 도포 작업 관리자 2019.09.13 2617
210 3285: 권면-교회에 주는 동부교회 관리자 2019.09.23 2637
209 3410: 조시弔詩 故 차보근 원로목사님 천국환송예배 관리자 2020.02.03 2617
208 3421: 축시 <빌립보서> 김익수-이선혜 목사 부부 은퇴를 축하 드리며 관리자 2020.02.03 2403
207 3456: 권면 선한목자교회 개척예배 관리자 2020.02.03 2450
206 3474 : 설교 화목의 공식 관리자 2020.02.16 2440
205 3616: 순교자 문준경 1 소박(疏薄)과 시앗 관리자 2020.05.13 2452
204 3615: <가족끼리 살 부비기> 관리자 2020.05.13 2406
» 3611: 어머니를 위한 추모사 관리자 2020.05.10 2407
202 3630: 빛과진리교회를 위한 글 기도 2 관리자 2020.05.24 2410
201 3626: 빛과진리교회를 위한 글 기도 1 관리자 2020.05.24 2410
200 3618: 순교자 문준경 2 문심(文心)과 예심의 복음적 연관성에 대해 관리자 2020.05.13 2417
199 3695: 설 목사를 아십니까?(이종완 원로 목사(대광교회)) 관리자 2020.07.26 2406
198 3702: 토론회 원고 코로나19 이후 관리자 2020.07.31 2393
197 3792: 권면 관리자 2020.12.31 2428
196 3793: 더조이유니언 발행인의 글 관리자 2020.12.31 2386
195 3795: 주례사-철이 나리 결혼 관리자 2020.12.31 2396
194 3838: 힘찬교회 새성전 입당예배 설교 관리자 2020.12.31 2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