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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234: 내가 온 것은
2009.03.08(주일)

막상 그 강단에 오르자, 회개의 영이 날 흔들었다.
지난 주일 예배의 무력화, 설교의 희화화 사건의 충격으로, 난 오늘 그 개척예배설교를 준비하지 못했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했다. 도저히 설교를 준비할 맘이 일지 않아서였다. 대충 지난 내 개척 당시의 한 에피소드만 뽑아들고 길 나섰다. 그러나 정작 그 강단에 올라 말씀을 사모하는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대하자 내 안의 역사하는 성령께서 날 책망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제대로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날 추궁하셨다. 그런 성령의 책망하시는 은총을 대하면서도 한 켠 내 마음엔 전혀 미안함이나 죄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지난 주일 받은 충격이 컸다는 말이다. 그러나 난 겉으로는 전혀 불쾌한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말씀도 그 강단에서 허락하신 만큼만 증거했다. 예배 후, 그들은 지난 주일 사건을 의식한 듯, 내게 여러 말로 격려와 작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난 말을 더 아꼈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잘한 짓이 아님을 난 안다. 그래도 그렇게 됐다. 그러나 오늘 설교문은 일단 정리해 보기로 한다. 라이브가 아닌 교정을 곁들인 내용이라서 라이브완 다르고, 보다 더 정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속 좁은 행위를 다소 반성하며 후일을 위해 정리해 본다.


예수 비전교회 설립예배


내가 온 것은

요한복음 10장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종은 종은 , 류는 류를 낳습니다.중앙성결교회 102년의 교회역사는 생명을 낳는 생명의 역사였습니다. 국내외 3천여개의 기독교대한 성결교회는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가 낳은 교회요, 영적 생명들입니다.오늘 그 모교회가 또 교회를 낳습니다.교회를 낳는 교회.생명 되신 주님의 생명을 이어가는 교회는 앞으로도 그 생명력을 영원히 유지할 것입니다.그러나 출산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출산 후, 후속조치가 중요합니다.아이를 낳기만 하지 말고, 낳고 유기해 버리지 말고, 그 아이가 잘 성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양육해 내는 일이 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돌봄에 힘을 더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벤트가 된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개척하던 초기에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그 어느 해 초여름이었습니다. 식사 중에 집사람이 괜히 싱겁게 웃으면서, 이 물 한번 마셔보라고 맹물(?) 한 잔을 들이 밀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물인데?",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런 것은 알 필요 없구요. 물 맛 어때요? 물 맛 좋죠?"라고 되려 반문했습니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그 물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늘 텁텁하게만 여겨지는 보리차 물에 비하면, 이런 일이 간헐적으로 몇 차례 계속 되던 어느 날 나는 그 물의 출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당시 충성된 여자 성도인 류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포천에 있는 'ㅎ'기도원엘 자주 가셔서 은혜도 받고 그 기도원의 간증거리인 '능력의 생수'를 한 두 통씩 떠오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능력의 생수를 그분은 혼자 드시기 미안해 우리 집에 절반씩 보내시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나에게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 부탁하시면서. 왜냐하면 행여 이 김목사가 그런 기도원엘 신자들이 다니는 것을 만에 하나 싫어하면, 괜히 목사님 마음 상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실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 당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왠지 가슴이 뭉클해져왔습니다. 매 주일 그 먼 곳에서 차량도 없이 맨몸으로 반말짜리 통으로 두어 개 씩을 이고지고 오신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퍽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 분이 뭔가를 매우 착각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늘 한국 성령운동의 기수 이성봉목사님의 신앙전통을 우리 어머님의 뱃 속에서부터 이어받은 사람이고, 이래뵈도 권능과 정열의 부흥운동의 일꾼이 되어 보고자 하는 소망의 사람인데, "허, 우리 류집사님 성경 잘못 보셨구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아무리 삐쩍말랐다고 그래 냉냉한 사변가로만 보신 것인가? 사실 겉다르고 속 다른 사람인데"라고 농반진반 투덜거리며.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신앙의 진심(?)을 보여주고자 아니, 그 애처러운 헌신에 보답코자 'ㅎ'기도원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였습니다.

 

소문대로 과연 그 기도원은 놀라운 신유의 역사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신유 역사에 대한 교계의 시각이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나는 여기서 그런 부분에 대해선 말을 절제하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단사이비로 규정되고 말았지만. 다만 그 충격적인 사건은 나에게 굉장한 자극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기관목회를 청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목양적 심령을 거의 회복하지 못한 때였었는데, 그 첫 날 그 기도원의 한 광경은 나의 목양적 심령을 서서히 회복시키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입추에 여지없이 꽉 들어 찬 열기 속에서, 방청객 마냥 강단으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출입구 쪽에 서서 팔짱낀 채 물끄러미 신유의 현장을 쳐다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흘러내리는 폭포수와 같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결코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물은 회한의 눈물이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자기 남편의 병 낫기를 절규하듯 간구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외치는 소위 주의 종이라는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이 너무도 처절해 난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무기력함을 처절하게 자인한 후, 예배는 끝났습니다. 모두들 환한 얼굴로 떼를 지어 식사도 하고 생수를 긷느라고 분주해 했습니다. 그 때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그날부터 나는 매 주일 'ㅎ'기도원의 단골 멤버가 되었습니다. 생수를 길러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능한 목사, 영력 없는 목사인 내가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으로 때우는 일, 즉 맛좋고, 능력 있다는 생수를 공급해 주는 것 밖에는 달리 할 만 한 일이 없을 것 같아 그 일을 몸으로 실천키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도 그리 쉽진 않았습니다. 처음엔 병약한 성도 몇 가정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점차 이 가정도 저 가정도 빼놀 수 없는 마음이 되자, 자꾸만 불어나 나중에는 한 말들이 통 서른 개씩을 들어 아파트 15층까지 날라줘야만 했습니다. 그런 날 밤이 되면 나의 육신은 어김없이 고통을 호소해 왔으나, 나는 그때마다 마음으로 간절히 이 고통을 감사함으로 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곤 했습니다. 저들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목자가 생수라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한 동안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물 배달에 여념 없던 어느 하루, 나는 정작 저들에게 필요한 것을 지하수일 뿐인 소위 말하는 그 능력의 생수가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무렵 성경말씀 중 4복음서를 집중적으로 다시 읽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신유와 기적에 관한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것은 어쩌면 육신적으로 영 죽을 자리에서 구원함을 받은 나의 신앙체험이 기반 된, 육신적으로 연약한 자들에 대한 영적 연민의 발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시급한 듯 여겨진 현세적 육신의 구원이 우리 안에서도 가능함을 만 천하에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널리 증거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심정으로 말씀 속의 확신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수목회(?)를 하고 있던 시절이라서인지 몰라도, 왠지 자꾸 물에 관한 기사에만 더 큰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된 갈릴리 가나의 사건', '바다의 큰 놀을 잔잔케 하신 일', '물 위를 걷던 베드로', '베데스다 못', '생수되신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등.

 

그런데 하루는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28절-

라는 말씀이 눈길에 머물게 되었다. 물을 길러 왔다가 물도 긷지 않고 그냥 동네로 뛰어 간 여인. 물 뜨러 기도원에 갔다가 물 긷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돌아온 신도. 본말이 전도된 듯 한 이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뙤약볕에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물보다 더 소중한 것을 무엇이었을까? 눈에 뵈고, 손으로 붙잡아 볼 수 있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물질보다, 한 통의 생수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나는 그 무렵 다시 목마를 이 물로는 결코 충족되지 아니한 그들의 영적 기갈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의 목양적 순정에 감사해 하는 눈 빛 속에서도. 목자인 내가 그들에게 줘야할 가장 소중한 것은 한 통의 지하수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물 길러 왔다가, 물도 긷지 않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갔을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그렇습니다. 그 여인은 마시고 돌아서면 목마를 우물물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는, 솟아나는 샘물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우물(well)과 샘(spring)은 다릅니다.

율법과 은혜만큼 다릅니다.
우물물은 사람이 파내려가는 수고를 요구하지만, 샘물은 사람의 수고를 바라지 않는 희열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솟아나는 샘물이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한 낮에 물 길러 나섰던 야곱의 우물은 인공적 노력을 요하는 율법적 수고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먼지 풀풀나는 척박한 세상에서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애들 다해 인공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수 십년을 파내려가고 있지만, 제대로 물이 솟질 않았던 것입니다. 감질나는 노역에 그 여인은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물 길러 왔던 야곱의 우물은 그 깊이가 거의 50m나 된다고 합니다. 브엘쉐바에 있는 아브라함의 우물은 무려 그 깊이가 10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간의 율법적인 노역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우물이나 웅덩이의 상징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떠난 고생이나 수고를 가리킵니다. 야곱의 우물이나, 아브라함의 우물은 영적으로 인간의 자기 구원을 위한 율법적 행위에 대한 비유에 불과합니다. 그래 우물(well)과 샘(spring)은 다릅니다. 율법과 은혜만큼 다릅니다.

개척목회란 무엇입니다.
서부개척자들의 용맹과 투지를 요청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교회개척은 우물물을 파고 있는 허망한 인생들에게, 여기에 절로 솟아나는 은혜의 샘이 있음을 보여 주는 사역입니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그녀의 영적 실상을 깨달아 알게 해 주고,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소망의 확신을 말해 주신 예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입니다.
그것이 교회 개척입니다.
맨 땅에 해딩하는 일도, 맨 땅을 한없이 인간의지로 파내려가는 우물 파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그분은 선언합니다.

 

저 유명한 요한복음서의 7대(大) "에고 에이미"말씀-"나는~이다" 라는 자기계시 양식(樣式)을 통해 생명을 주는 선한 목사인 자기 안에 이런 생명의 양식이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35.48.51),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 (요 15:1).

 

교회는 바로 이런 생명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그 '확신을 주는자'의 정언(定言)적 선언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그 일을 위해 생명의 주께서 교회를 설립케 하신 것입니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바에 온전히 순종하는 일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신앙행위는 단순히 주관적이거나 정서적인 감정의 표현행위가 아닌 '확신을 주는 자 '에게 압도당하여 우리 전체를 그에게 위탁하는 전인적 응답행위였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아구까지 채우니."
"네 아들이 살았다-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나를 따라 오너라-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인간은 생명을 주시는 그분 안에서 변치않는 확신을 가질 때 그의 모든 삶에서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그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생명의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딱 한가집니다.

오직 믿음입니다.믿음으로 우리는 솟아나는 샘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믿음의 기도로 새로 설립되는 예수비전교회가 솟아나는 샘되는 교회가 되시길 기원합니다.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사람을 의지하는 일은 우물을 파는 헛된 노역입니다.목회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을 더해가는 사역입니다.말씀과 기도에 전무함으로 솟아나는 생명의 샘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 길러 왔다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온 마을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해 그 모두 구원을 받는 기적을 맛보게 하십시오. 교회에 구경 왔다가, 돈 빌리러 왔다가, 사람 만나러 왔다가 그 목적 버리고 생명의 주님을 만나 그 모든 육신적 욕망 다 내던져 버리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병든 인생들에게 생명의 주를 소개하는 영혼들이 되게 하십시오. 정작 목마른 영혼이 예수(교회)가 아니라 자신들임을 깨달아 알게 하십시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한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교회에 성령은 요구하십니다.이 일은 미래적이지만 않습니다. 여인의 '메시야 대망'은 미래적인 것이었지만, 예수의 존재 안에서 예수의 말씀과 삶과 행동 안에서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려하심이 주님의 뜻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는 사마리아의 종교적 지방주의와 유다의 민족주의를 넘어서 그 시대의 정치경제 사회적 구원자(σωτηρ 소테르)인 로마황제를 뛰어 넘는 인류와 세상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하남시 풍산동을 넘어 서울로 세계로, 예수비전교회의 설립 목표대로 예수비전(안상혁목사-임미성사모, 안나영양)교회를 통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상한 마음과 쓴 뿌리를 치유하고, 양육하여 주님의 제자 삼고 성령의 권능으로 능력을 받아 하나님 나라 사역자로 세워 세계 비전을 품고 열방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역사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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