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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예식설교 임직식 신앙의 삼원색

2009.03.30 14:32

김성찬 조회 수:1273 추천:46

영혼일기 251: 신앙의 삼원색
2009.03.30(월)

어제 묵동교회에서 있었던, 창립 29주년 명예장로 추대 및 임직식에서 행한 설교를 정리해서 올린다. 늘 만만치 않은 영적 노역(?)이지만 이런 귀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일(3월 31일)은 베데스다나눔교회/복지재단-선교회 돌봄센터 착공예배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다. 축하와 감사드리며 말씀을 상고한다.

눈이 부시고, 시리다.
잠시 외출해야할 것 같다.
새봄의 생기를 눈에 함빡 담고 싶다.

묵동교회 임직예배 설교문이다.

신앙의 삼원색
데살로니가전서 1장 1-10

빛의 삼원색이 있습니다. 그 삼원색은 Red, Green, Blue (빨강, 녹색, 파랑)입니다. 그런데 이 빛의 혼합은 더할수록 밝아진다고 하여 가산 혼합이라고도 합니다. 밝아질수록 반사되는 빛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삼원색을 적절하게 혼합하면 모든 색깔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빨강, 초록을 섞으면 노랑(Yellow)이(가) 되고, 빨강, 파랑을 섞으면 자홍(Magenta)이(가) 되고, 초록, 파랑을 섞으면 청록(Cyan)이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빛의 삼원색은 TV나 컴퓨터 화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빛을 내는 작은 점들을 화소라고 하는데, 이 화소들이 RGB 3개의 색 중 하나를 쏴서 여러가지 색깔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과학적 사실은 이것입니다.

빛의 삼원색을 모두 일정하게 섞으면 백색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백색광이 태양빛입니다.


신앙에도 3원색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 선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구원(신생)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핵심적인 은사를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의 삼대 요소 중에 사랑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  성경에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 오래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천국 가서도 남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에 차별성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은 등가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의 삼원색인 믿음, 소망, 사랑은 다  동일하게 소중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삼대 요소입니다.
   
다시 한 번 과학적 진실을 소개해 보자면, 빛의 삼원색을 모두 일정하게 섞여야 백색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태양 빛 같은 백색광은 빛의 3원색이 균일하게 섞여야 나올 수 있는 최상의 빛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 소망, 사랑이 모두 일정하게 골고루 섞일 때 건강한 신앙,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일어나 빛을 발하라(이사야서 60장 1절) 명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마5:14a)"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가 잿빛이 아닌 태양광 같은 백색광을 발하려면 신앙의 삼원색이 모두 일정하게 섞여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빛 된 교회입니다.

이 신앙의 삼원색이 조화를 이룬 교회를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겨우 3주 동안 체류하며 말씀을 증거 했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모범적인 교회였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1장입니다.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여기서 바울사도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말하면서 그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구체적인 실천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役事),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있고, 사라에는 수고가 반드시 곁들여져야하고, 소망은 인내로만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신앙의 삼원색이 조화와 일치를 이룰 때 신앙은 신앙되고, 교회는 교회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삼대 신앙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믿음의 역사(役事)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교회행전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교회행전이란 말을 우리는 신앙행전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신념이 아닙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신념은 에로스적 욕망에서 우러른 인간 의지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이들의 욕망은 스스로 하늘에 닿아보려는 신념의 산물이었습니다. 인간의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아가페적 사랑에 기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예수 안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건이 성령의 권능으로 믿어지는 일입니다. 즉 복음에 대한 주어진 확신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그 대표적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그 확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살전1:6)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 확신이 말로만이 아니라 오직 (말씀의)능력과 큰 확신을 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았다고 해설합니다.(5절)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란 중에 오히려 성령의 기쁨이 충만한 자들이 되었으며, 그 받은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하는 믿음의 소문 난 교인들이 되었다고, 바울 사도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Work-Not history)를 가능케 하는 영적 비결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비결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정의합니다. 믿음의 역사(Work-Not history), 즉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하는 믿음의 행위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아브라함의 믿음이 역사를 이룬 배경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역사(行爲)는 그 믿음을 믿음 되게 한 이삭의 믿음의 행위(役事)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순종한 믿음은 그 아들 이삭의 그 아버지 아브라함을 순종한 믿음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 믿음의 역사입니다. 묵동교회가 29 주년의 믿음의 성상을 이루기까지, 바로 이런 믿음의 역사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앞장선 믿음으로 침묵하며 사흘 길을 가는 낯선 믿음의 여정을 말없이 따라가며, 주의 종에게 믿음의 순종을 바친 이삭 같은 성도들의 믿음의 행위가 오늘 30주년을 눈앞에 둔 묵동교회의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우선적인 것이었으나, 장성한 아들 이삭의 말없는 순종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되게 한 것입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 지경의 한 산으로 나아갔을 때, 그의 나이는 최소한 13살에서 33살까지 되었을 것이라고 주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13살이라 함은 이스라엘의 성인됨의 연령이  13살이고, 33세라 함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한 산 제물 되신 나이가 33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연령대의 이삭이라면 적어도 100세가 훨씬 넘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박  쯤은, 본인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장성한 청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힘도, 지식도 약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신앙행위를 그는 거역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신앙을 보배 삼는 역사를 이룰 영적 지혜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버지 목회자의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행위를 믿음의 순종으로 지켜보는 성도들이 이루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영원할 묵동교회가 이런 믿음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믿음 없는 세대에 온전한 믿음 공동체로,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8절)”는 칭송 듣는 교회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둘,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은 수고가 그 근본이며, 바탕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4-5)."


또한 사도 바울은 그가 주님의 본을 따라서 행한 사랑의 수고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그러면서도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 12 :10).” 그 사랑의 수고를 기뻐한다고 하면서 더 나아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다가 올 사랑의 수고도 아끼지 않겠노라는 결단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시는도다(고후5:14절).”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랑의 수고는 주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랑으로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노라고 말하면서, 그 사랑의 수고를 피차간에 모든 이와 나누라고 권면 합니다. 아니 주께서 자신 바울을 사랑하시어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하신 것 같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사랑의 사도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살전3:12).” 그렇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살전 4:9).”

저는 묵동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 못지않은 사랑의 수고가 넘치는 교회라 생각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사랑의 모범이 있습니다. 문교수 목사님에 대해 많은 이들은 사랑의 목자라고 말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분보다 더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차혜정 사모님이십니다.
저는 우리 사모님을 묵동의 마더 테레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아픔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가난한 자, 허기진 자의 생명의 떡(요6:35)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성녀 테레사는 자신의 몸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차혜정 사모님이 바로 그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교회에 출입하면서 단 한 번도 빈손으로 이 교회를 나가 본적이 없습니다. 늘 그 무엇인가를 차 사모님께서 사랑의 선물로 안겨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오늘 묵동교회를 세운 수고라 여겨집니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평범한 양식으로 그 비범한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그 비범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에 감읍하여, 그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목회자 부부. 그리고 그 목회자 부부의 사랑 받아 그 사랑의 수고를 서로 나누는 묵동교회는 주 안에서 큰 사랑의 부흥을 이룰 줄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일반인들의 사사로운 꿈이나 장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소망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낮이나 밤이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 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

이 시간, 오셔도 되겠습니까?


교회는 소망 공동체입니다. 그 소망공동체인 교회에서 성도들은 소망의 인내를 배웁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인들은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데 왕왕 실패합니다.

오늘 임직식은 그 소망의 인내를 이룬 이들을 축하하는 예식입니다.
특히 명예장로로 세움 받은 분은 한 교회 안에서 소망의 인내를 이룬 신앙의 업적을 이루신 분입니다. 묵동교회 29주년 동안 교회는 여러 풍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잔물결에 흔들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알곡일 수 없습니다. 알곡은 날아가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 누구도 의미 없고, 필요 없는 이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런 능력 없어 뵈고,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듯해 뵈는 그런 말없는 다수가 여기까지 교회를 이끌어 왔고, 이끌어 가고 있는, 장차 빛 된 교회 되게 할 소중한 소망의 인내 자들입니다. 그들이 알곡입니다.

 

임직식이란 그런 알곡들을 알곡으로 인정하는 예식입니다

소망의 인내로 사는 성도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들은 강단에서 선포된 믿음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 그 말씀의 역사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이루는 자들입니다.

빛의 삼원색이 모두 일정하게 섞여 백색광이 되듯,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균등하게 어우러져 빛 된 교회가 되길 축원합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 60장 1-3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칭찬한 사도바울은 그 편지 마지막에 이런 권면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성령의 권면하심과 은혜가 귀 교회에 넘치기 축원하며 말씀을 받들어 읽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아멘.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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