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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9:50

김성찬 조회 수:1221 추천:50

영혼일기 223: 선하고 아름다운 합동 - 그 연합하는 신앙의 힘
2009.02.22(주일)


장암예향교회와 운화교회 합동 예배가 오늘 오후 4시 운화교회에서 있었다.
지방회장 자격으로 정승일 목사에게 치리권을 부여했고, 설교를 했다.
여기 그 설교 문(文)을 정리해서 올린다.

연합하는 신앙의 힘

- 시 133편 1 - 3 -


은별 전쟁을 아십니까?


우리에게 나이팅게일로 더 잘 알려진
크림전쟁(Krym;戰爭)을 아십니까? 크림전쟁은 크림 반도를 중심으로, 1853년 제정 러시아가 흑해로 진출하기 위해, 영국, 프랑, 오스만 제국과 벌인 전쟁(1853. 10~1856. 2)입니다. 이 전쟁은 중동을 둘러싼 열강들의 분쟁에서 비롯된 것이나, 러시아가 투르크 제국 내 정교회 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 되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발발 원인은 팔레스타인의 성지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권한을 놓고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이 주요요인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3년여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인해 무려 25 만 명(병사포함 70만이라고 기록된 자료도 있음)이나 죽은 이 전쟁 발발의 원인은 '은별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성탄교회 안에는 예수탄생의 자리가 있는데 그곳에 로만 가톨릭 교인들이 '은별'을 달아 놨었습니다. 그런데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 그 '은별'대신, 자신들이 가져 온 별을 달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하는 바람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터키가 로만 가톨릭인 프랑스를 편들자, 러시아가 터키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로만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나라와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삼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은별'은 전쟁이 끝난 2년 후, 성탄교회에서 영원히 제거 되었습니다. 크림 전쟁, 그 쟁투는 참으로  슬프고 아이러니한 분쟁이었습니다.


'은별 하나.‘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었습니다. 분열한 교권의  헤게모니 쟁탈전 그 자체였습니다.  ‘은별 하나’는 성지(聖地)에 대한 권한을 놓고 벌인 교권 투쟁사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개혁교회는 어떻습니까? 개혁교회는
말씀을 말씀으로 돌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쪼개어 자기 합리화하는 우를 범해 왔습니다. 교리적 선명성 논쟁을 벌여 온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4분 5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개신교회는 분열이 진리인 듯한 양상을 세상에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열에는 능해도, 연합이나 합동에는 너무도 미숙합니다.

연합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연합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는 것" - 성경은 "함께 산다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1절)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발트(H.Ewald)는 본문의 '형제'라는 말을 '민족공동체'라는 말로 해석하여 "민족 공동체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린 ‘형제’라는 말을 ‘신앙공동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유대 민족 공동체라는 말은 유대 신앙공동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가 민족 공동체든, 신앙공동체든 ‘형제’가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할 때, 과연 이 연합하는 신앙의 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첫째, 연합하는 신앙의 힘(1절)은 형제에게 공존의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창1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이 유목민이었을 때는 매우 뜨거운 형제애를 나타내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경문화와 그 사회 속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이 아름다운 미풍을 잃어버리기 시작 했습니다.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내 땅, 내 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단란하고 화목 했던 형제애가 깨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평화를 위해 땅을!"(Land for peace!) -  공존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 이것이 연합하는 신앙의 힘의 외적 증거입니다. 모두가 여호와의 샬롬(shalom)을 누릴 자리를 교회가 마련해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역자들의 인격을 통해 오셔서 "평화를 선포하는 곳"에는 반드시 그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오늘 분열 일변도의 교회 풍토에서 두 교회가 이렇게 만장일치로  합동하게 된 사건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연합과 일치에 대한 성도들의 적극적인 응답이라 믿습니다. 이 땅이 극심한 분열 속에서도, 한줄기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렇게 두 교회가 연합하는 신앙의 힘을 주안에서 구사한 그 하나 됨의 진정성입니다. 연합하는 신앙이란 생명 사랑, 교회 사랑 운동이며, 완전히 조화된 나와 너의 관계성의 극치인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 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란 이지러짐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완전한 상태인 것입니다. 자리를 내어 줍시다. 함께 사는 선하고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말씀이 일러주고 있는 상호 공존의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그렇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마음을 합하여 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합한다는 말은,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자신의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존의 자리를 내어 주는, 마음을 찢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장 3절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도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이 공존의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공존의 자리를 내어 주는, 마음을 찢는다는 말은 또한 무슨 말입니까?
둘, 각각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2:4절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3-2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이상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상호 공존의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장 9-11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상호 공존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인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다시 에베소서 4장입니다. 그 4절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둘째, 연합하는 신앙의 힘은 우리 신앙공동체를 성결케(2절) 할 것입니다.


앨런 P. 로스는  "기름이 아론을 성결케 하듯 예루살렘에서 연합하여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나라를 성결케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연합하는 신앙의 힘이 신앙공동체를 더 나아가 민족공동체를 성결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처에 천방지축으로 피어나는 분열과 분파주위적 독버섯과 같은 부패를 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분파주의의 분열의 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세상에 비쳐주고 있는 우리 개신교의 현실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의 분열은, 그 분열의 고착화는 그들이 성전을 두 곳에 세움으로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요세프스의 유대인 고대사에 의하면 그리심산에 세워진 사마리아 성전(요4:)은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적 중심지가 되었지만, 그것의 문제는 그것이 신앙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략적 차원에서 계획되고 지어졌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의 교활한 정략적 계산과 타락한 제사장 므낫세의 배교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 부도덕하고, 불신앙적인 분열은 이스라엘 공동체을 불결공동체로 전락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들의 소욕대로 자신들을 위한 온갖 잡신을 섬기는 우상백화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죄악은 대를 이어 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신약 성경은 그 분열의 역사를 드러내 보입니다. 요한복음 4장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예수님과 수가성 여인의 대화 내용 중에 그 분열의 깊은 뿌리를 발견합니다. 남편 다섯이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이렇게 반문합니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장 18-20절입니다.

이런 사마리아 여인의 분열주의적 사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한복음 4장21절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장 22-24절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참 예배는 주 예수 안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신앙공동체를 찾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장암예향교회에서도 말고 운화교회에서도 말고, 그 예배 장소가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곳이 그 어디이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신앙공동체가 거한 곳이 바로 예배처소라는 말입니다.

합동 예배가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만이 진정한 합동예배라는 말입니다.

그 진정한 합동예배는 이런 예배입니다.
사도행전 2장 교회의 원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 44-47절

그리고 이 합동예배가 곧 민족공동체를, 교회공동체를 성결케 하는 연합하는 신앙의 힘이 되려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이 말씀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저는 장암예향교회와 운화교회, 운화교회와 장암예향교회가 오늘 운화교회로 하나 된 합동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중요한 영적, 도덕적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운화교회의 개척자셨던 고(故)갈 목사님과 원로 사모님의 눈물과 피의 희생이요, 그 기반 위에 교회를 굳게 세워 나아간 정태균목사님과 갈소영 사모님의 대를 이른 헌신의 열매입니다. 물론 묵묵히 주의 종을 받들어 온 성도님들의 순종의 열매입니다.

또한 장암예향교회 그 산속 거룩한 교회를 거룩하게 지킨 정승일 목사의 그 거룩한 행실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는 한 달 사례비 50,60,70만원을 받아 가면서도 그 땅을 한 치도 축내지 않았습니다. 그 어려운 교회 재정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항상 1천 만 원 이상이나 되는 비상금을 비축해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자신이 다른 교회로 떠나게 될 경우, 후임 목회자가 적어도 1년 정도는 먹고 살 수 있는 재정을 확보해 두는 것이 자신이 그 연약한 교회를 위하는 또 하나의 지혜요, 자기희생이라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이는 결코 싶지 않은 재정관(觀)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성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3가지 방안 중(후임자를 모시는 방안, 다른 교회와 합동하는 방안, 운화교회와 합동하는 방안), 기꺼이 운화교회와 합동하는 방안에 적극 찬성한 것입니다. 이 운화교회와의 합동을 동의하면서, 그 성도들은 이런 한마디 말만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 교회와 합동하면 우리 목사님 생활비 책임진답니까?”그 한마디 물음만으로 장암예향교회 성도들은 외적 설득에도 불구하고, 전원 일치로 합동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합동의 이유요, 근거입니까?

그들은 그 결단으로 다음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할렐루야!
우리 새롭게 합동하여 출발한 이 신앙 공동체가 모든 좋은 것을 목회자만이 아니라, 여기 모든 성도들과 좋은 것을 함께하는 교회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듯, 말씀 앞에 진실하게 선 신앙인의 연합만이 이 땅을 성결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의 열매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 공동체의 소망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썩을대로 썩어서 다시는 재생이 불가능할것만 같은 상황이 연출 되고 있지만, 연합하는 신앙의 힘은 기적을 낳게 할 것입니다.


셋째, 연합하는 신앙의 힘은 이 땅의 생명력과 번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3절)


커크파트릭(Kirkpatrick)은 "형제들이 단합하여 화목함이 그 나라(신앙공동체)에 주는 영향은 마치 이슬이 채소에 생기를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스런 기름으로 성결케 된 새 운화교회 성도들이 연합하여 이 민족의 아픔을 달래 주고, 더러운 곳을 구석구석 청소해가면 우리 노원구와 의정부는, 서울과 온 지구촌은 예수 안에서 큰 번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른광야 같은 세상 속에, 분열과 분파주의에 물든 한국교회 위에, 선한 합동이 이룬 성령 안에서의 권능의 이슬로 촉촉이 그 마른 영혼을 적셔 주어야 할 것입니다.

헐몬 산으로부터 시온 산으로 흘러내리는 이슬!  백두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흘러내리는 축복! 번영!  절망의 만성화로 찌든 이 땅에 연합하는 신앙의 힘은 힘찬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줄 것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은, 이 한국교회는 우리의 이러한 뜨거운 연합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오래된 분열과 분단의 만성화. 그래서 우리에겐 비전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것 '형제들의 연합함과 동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것'을 바라고, 찾고, 행하고자 하는 신앙인입니다. '함께 사는 선함' 거기에 생명이 있고 번영이 있다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연합하는 신앙의 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을 모읍시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 합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 합시다.(히10:24-25) 부자와 가난한 자, 종과 자유자, 남자와 여자 - 이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가 곧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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