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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322: Renovation
2009.06.21(주일)

Renovation-새로운 시작.

오늘은 교회 건물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 시온교회 입당예배가 있었다. 하프타임이라는 말이 있듯이, 리노베이션이라는 단어 또한 다시 한 번의 도약을 다지는 결단의 용어다. 리노베이션은 리모델링과는 다르다. 리모델링이 베란다 정도 고치는 약식 리노베이션이라고 한다면, 리노베이션은 ‘아내만 놔두고 나머지 전부를 바꾸는 혁신’이랄 수 있다. 그런데 리노베이션은 기본 구조가 튼튼하지 않으면 시공 불가능한 재건축 공법이라고 한다. 기초 골격이 든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개혁.

그렇다. 새로운 시작이란 기본이 단단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그런 류의 말이다.

새로운 시작은 먼저 그 기초를 단단히 하고, 기본 다지기에 충실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던 초대교회 사도들의 뼈를 깎는 결단 없이도 과연 그 초대교회 부흥이 가능했을까?

시온교회는 리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그 은혜를 오늘 누렸다. 거기 모인 축하객 모두 그 마음속에 ‘새로운 시작’에의 결의를 다지게 하며, 멋진 새 시작을 알렸다. 30여 성상 개척목회의 피나는 헌신의 열매를 거둔 황충성 목사님과 온 교우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

먹여~먹여~먹이여 주소서 - 그 예배 중 있었던, 감미로운 생명의 양식의 앙상블은, 그 생명의 떡으로만 채울 수 있는 인간의 영적 PRIMARY NEED를 원초적으로 발산했다.

이젠 보이지 않는 영적 신령한 교회를 세우라는 원로 이만신 목사님의 권면과 오늘 나를 통해 성령께서 시온교회에 발한 메시지의 핵심주제와 맞닿은 요시아 왕의 언약의 갱신에 대한 호기성목사님의 권면, 깨끗한 건물에 휴지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거룩한 이 성전에서 원망과 시비를 발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는 조일래 목사님의 권면 등이 이어졌다.

시온교회 입당예배 설교문이다.

시온교회

2009.06.21( 주일)


새로운 시작


느헤미야 6장 15-16절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줄을 앎이니라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호의로 그 원년에 약속의 땅으로 1차 귀환합니다. 느헤미야의 귀환은 그 1차 스룹바벨의 귀환이 있은 지 94년이 지난, 에스라의 귀환이 있은 지 13년 후에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치하인 B.C 444년경입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위로'입니다. 귀환자들의 안녕과 복리를 위해 고심하던 느헤미야는 마침내 단호한 결의를 내리고, 성벽재건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느헤미야는 먼저 성벽을 두루 탐사하였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의 거주지를 고려하여 적절히 재건 사역을 분배하여 진행해 나가던 중, 곧 조롱(4:1-6), 무력(4:7-9), 실의(4:10), 두려움(4:11-13), 이기심(5장), 간사함(6:1-4), 모함(6:5-9), 위협(6:10-14)등,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성벽공사가 불과 52일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그 성벽완공의 비결은 3 가지 입니다.


느헤미야 6장 15-16절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줄을 앎이니라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하나, 그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역사(役事)를 이루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스가랴 4장6-7절.


그 힘의 능력으로 큰 산을 평지 되게 하셨습니다.


둘, 사심 없는 연대로 그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한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핑계하면서(학1:2) 성전을 황폐한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에 있는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면서 학개 선지자는 그들이 당한 재해의 원인이 바로 성전 재건 중단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학개 1장 4절입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판벽(板璧)한 집이란, 벽과 지붕에 각종 장식을 한 화려하고 안락한 저택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16년 전 성전의 기초를 놓으면서 감격했던 것(스3:12)과는 달리 이제는 호화 주택에 살면서도 시기상조(1:2)라는 이유로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자 그들은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사심이 앞장 선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위해 사심 없는 헌신을 주께 바쳤습니다.  


그는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느5장 14절)"했습니다.

그가 유다의 상류층 인사들에게 심한 반발을 받을지도 모를 엄한 시책을 요구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가 먼저 평소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민족의 존립을 염려하여 합법적인 권리까지도 포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심 없는 지도자, 물질적 성결을 몸으로 실천한 느헤미야가 있었기에 새 역사가 창출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상호협력을 이어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육간의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온통 '그 다음은'이란 말로 구슬을 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연결고리인 '낳고'라는 단어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3장 1-5절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나서서, '양 문'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고, 문짝을 제자리에 달았으며,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쌓아서 봉헌하였다.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쌓았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인 삭굴이 쌓았다.


3    '물고기 문'은 하스나아의 자손이 세웠다. 문틀을 얹고 문짝을 달고, 빗장과 빗장둔테를 만들어 달았다.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요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보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인 므술람이 보수하였으며,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인 사독이 보수하였다.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이 보수하였는데, 그들 집안의 어떤 유력자들은 공사 책임자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이라는 말이 무려 여섯 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3장 전체에는 내용적으로는 더 많지만, '그 다음에'라는 말이 28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그 다음에'라는 용어가 주제어입니다.


오늘 시온교회는 이런 사심 없는 지도자의 헌신과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과 봉사의 연대로 이 성업을 이루었습니다.


셋 마지막으로, 영육간에 물샐 틈 없는 경계근무로 그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숱한 비난과 방해를 헤쳐 나갔습니다. 영육간에 물샐 틈 없는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4장 1-3절입니다.


우리가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은, 몹시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그는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자기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이 듣는 데에서


"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 하고 빈정거렸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암몬 사람 도비야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맞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은 기도로 응대했습니다. 4장 4-5절입니다. 기도가 강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받은 핍박이 컸고, 그들의 기도가 피를 쏟는 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한편으론 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근무로 물샐 틈 없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4장 9, 13-18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백성 가운데서 얼마를 가문별로, 칼과 창과 활로 무장시켜서, 성벽 뒤 낮은 빈터에 배치하였다. /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드디어 우리의 원수들은 자기들의 음모가 우리에게 새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성벽으로 돌아와서, 저마다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 그 날부터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서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관리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유다 백성 뒤에 진을 쳤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다. 나팔수는 나의 곁에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그의 솔선수범한 영적 지도와 실제적인 조치 등, 영육간의 양면적 노력을 통해 그 숱한 시련들을 무사히 넘기고 불과 52일 만에 성벽재건을 완수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그 대적자 들까지도 그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게(6:16)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심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느헤미야 6장 16절.


 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

 시온교회는 그 힘의 권능사심 없는 연대, 물샐 틈 없는 영육간의 분투로,

 새 역사를 이루는 신앙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

시온교회는 리노베이션한 성전입니다.

리너베이션이란  ‘새로운 시작(노움(붐) 프린키(시)피움 novum principium)’이라는 말입니다. (renovatio /레노바티오/ = 새롭게 함, renewal, renovation, restoration : renovare /레노바레/ = 새롭게 하다, 소생시키다.등등)


이는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리모델링과 리폼 등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가장 넓은 의미의 건축용어로 건축법규에 따른 증·개축, 대수선, 용도 변경까지 포함합니다. 리노베이션은 신축하는 것에 비해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부동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리노베이션을 할 경우 구조상의 안전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겉모습만이 아닌 그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져야 할 주의 성전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52일만에 완공한 성벽공사로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귀환(歸還) 이후, 스가랴에게 허락하신 환상입니다.  성전 재건을 위해 힘쓰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여덟가지 환상입니다. 성전 재건 중에 낙심한 자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시려 그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약속의 환상입니다.


* 화석류 사이에 홍마를 탄 자 -시온과 이스라엘 백성의 재건

그 첫 단계가 시온과 이스라엘의 재건입니다. 오늘 시온교회의 리노베이션, 새로운 시작은  그 여덟 환상의 첫 환상입니다.

* 네 뿔과 네 공장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자가 받을 심판

* 측량줄을 잡은 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영화롭게 하심

*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정결 -이스라엘의 정결

* 순금 등대 -하나님의 신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능력을 더함

* 날아가는 두루마리 -개인의 죄에 대한 심판

* 에바 가운데 앉은 여인 -없어질 민족의 죄

* 네 병거 -열방에 내릴 하나님의 심판

( 관을 쓰는 여호수아-그리스도의 강림)

 

에 이르기까지 일일신 우일신, 나날이 새로워지는 은총을 갈구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서 8장-10장은,
외적 일신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내적 변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로의 귀환이었습니다. 그것이 귀환의 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귀환은 성벽과 성전 재건 이후였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스룹바벨과 학개, 스가랴, 느헤미야 이후에 에스라의 말씀 회복이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를 통해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 앞서 통회자복하며 영적 일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길 원하실 때마다, 그 선민 공동체를 말씀에로 귀환케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남유다 16대 왕 요시아가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한 사건은, 말씀으로의 귀환을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시아-여호와께서 기초를 두심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시아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 공동체와 ‘언약을 갱신’하십니다. 언약의 갱신 그것이 말씀으로의 귀환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여호와께서 기초를 두신 요시아’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말씀의 리노베이션은 말씀의 기초가 있는, 즉 여호와께서 기초를 삼으신 든든한 영적 골조인 요시아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이신득의의 복음에 굳게 선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을 이루신 것도 그런 것입니다. 요시아 왕은 발견된 율법책 앞에서(하나님의 주도적 개혁 드라이브) 떨며 부복했습니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다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 옷을 찢었다.(왕하 22:11대하 34:19절).” 

우리는 말씀에로의 귀환이 이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은총의 선물인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 성막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권면합니다. 


 인간 이성이 길 잃어 그 시원을 찾아가듯, 우리는 그 성막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 보이는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성막은 제사장들이 예식을 드리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이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 성소와 지성소 바깥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성소에는 떡 상, 금 촛대, 금 향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휘장 뒤에 법궤와 속죄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M.R. 디한에 의하면 그 성막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마루, 의자, 창문이었습니다.


먼저, 그 하나는 마루였습니다.

 마루가 없다 함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부패상을 말합니다.

 그가 비록 대제사장일지라도


 날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발을 씻지 않으면 안 되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그가 그 어떤 위치에 있는 자일지라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하는 것입니다.(빌2: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여호와께 성결(출28:36). 이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입니다.


 둘, 성막에 없는 것은 의자였습니다.

 쉼 없는 사역을 말합니다.

 앉아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8절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년이었더라.

 의자에 앉아있던 제사장 엘리. 그 비대한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허물과 죄 씻음을 위한 사역을 위해, 그 영혼 구원을 위해 쉼 없는 전진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쉼 없는 전진으로 교회를 교회되게 해야 합니다. 


성벽 완공 후, 그 이스라엘은 8시간이나 서서 학사 에스라의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셋, 성막에 없는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었습니다. 일곱 개의 촛대를 가진 금 촛대만이 유일한 빛이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오직 성령의 기름으로 공급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등불의 빛으로만 의식을 올렸습니다. 제사장은 결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연광선에 의해 걸어가지 않고 성령으로 조명된 말씀의 빛에서만 걸었습니다. 말씀의 빛, 오직 성령이 조명하시는 말씀의 빛 아래서만 우리는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 105)."

 이 발등의 빛은 헤드라이트가 아닙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우린 성령의 빛 된 말씀의 조명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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