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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묵상 묵상 2 - 그 호리[毫釐]의 양면성

2008.03.18 09:21

김성찬 조회 수:1026 추천:48

막12:41-44

고난주간 그 둘째 날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2장 41-44절 말씀을 듣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의 호리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호리[毫釐] [명사] 1 자나 저울 눈의 호(毫)와 이(釐).2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고드란트는 누가복음 12장 59절에는 호리[毫釐], 단 한 푼(개역개정)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단 한 푼 밖에 안되는 호리헌금을 드린 한 가난한 과부의 연보 행위에 고난의 길을 가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처한 현실 상황과 결부된 일(대상)에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미는 군복입은 청

년들만이 눈에 차 들어 오고, 애완견을 식구로 집안에 들여 놓는 순간 천지 사방에 동물병원만 가득한 것 처럼 뵈는 것

말입니다.

 

그처럼, 이 고난 주간 왜 우리 주님께서는 그 고난의 십자가를 눈앞에 두신 절박한 그 시점에 한 가난한 과부의 연보행

위에 대해 언급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한 고드란트는 한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되는 로마 화폐의 최소 단위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780원 가량되는 돈입

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호리헌금을 그녀와 함께 연보를 드린 모든 이들의 헌금보다 많은 예물이었다고 일부러 제자들을

불러다가 판정해 주신 것입니다. 비아돌로로사 그 슬픔의 길을 가시는 도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부일찌라도 780원이라는 돈은 큰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호리'가 그녀에게는 모든 소유

요, 가진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이 '호리'인, '모든 소유' 곧 '전부'에 있었습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는 해방될 수 없는(마 12:58-59) 그 족쇄인 그 '호리'를, 모든 소유요, 자신의 전부인 이 '호리'(오

늘 본문)로만 풀어 젖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 '호리', '전부'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연보는 그녀의 '전부'인 '호리'였습니다.

 

모든 것(계명)을 지켰다고 자부하던 부자 청년에게 주님께서는 '그 모든 소유'를 '호리'로 여겨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

눠 주고 나를 좇으라(십자가를 지라) 명하셨을 때, 그 부자 청년(청년이기에 더 더욱)은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 서고

말아, 그는 자기 구원에도 실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마19:13-22)

 

우리의 그동안 그 많은(?) 헌신이 오늘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호리'만큼도 안되는 헌신

이요, 충성이요, 희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한국교회의 무궁할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위대한 성취

또한 부자 청년이 주님 앞에서 감히 당당히 내뱉었던 '그 지킨 모든 것', 그 허망한 것, 영생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년여, 가르치고, 보여주고, 들려주신 십자가의 도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엊그제 예루살렘 입성

때에 군중들이 보여 준 그 열광적인 환호에만 도취된 제자들에게, 과거의 공적과 기여에만 기대지 말고 이제는 '네

모든 소유(목숨)' 그 '전부'를 호리라도 남김없이 십자가에 쏟아 부으라 일러 주심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진다는 것 무엇입니까?

그것은 '호리됨'과 '호리 드림'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범을 우리 주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

심이라(빌2:6-8)."

 

우리의 주님의 헌신은, 그분이 하나님의 본체(모든 것 되시나)시나 스스로 종(호리)되어, 그 호리(한 알의 밀알; 육신)

를 십자가에 못박히시므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하늘 아버지께 높임을 받으신 것입니다.(이러므로 하나님이 그

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

느니라(빌2:9-11).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이천년전, 그 존재 의미도 기억될 수 없어야 마땅할, 소외된 중동지역 나사렛의 한 청년을

매단 그 능멸의 십자가가, 역사를 타고 내려오며, 천지를 변혁시킨 큰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연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소유(전일체적 몸)를 호리로 여겨, 그 호리를 십자가에 못박

을 때 만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아침, 그 십자가를 음미하며 기도합니다.

내 과거의 공적, 기여 그 잘난 척했던 모든 것들을 모두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배설물-배설물을 머리에 떠 받히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데...)

내게 있는 모든 것, 그 전부를 '호리'로 여겨, 그 '호리'를 아낌없이,

'전부' 

주를 위해 바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