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묵상 묵상 3 - 이 화사한 예비적 슬픔 나누기
2008.03.18 21:25
오늘 유월절 이틀 전 - 수요일,
마가복음 14장 3-9절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 대해 듣습니다.
원래 이 사건은 유월절 엿새 전,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구속사적 맥락에서는 오늘을 위
해 있는 사건입니다. 이 본문에 이어 나오는(10-11절) 가룟 유다의 배신도 어제인, 화요일에(막14:1-2) 있었던 사건입
니다. 어제의 사건이 오늘을 위해 있는 것이 구속사 그 계시의 점진성의 비밀입니다.
앨러배스터(alabaster) - 설화석고(雪花石膏), 나르도스타키스 자타만시 - 나드향이 가득 든 옥합을 깨뜨려 그의 머리
에 부은 여인. 한폭의 수채화를 대합니다. 다른 사건이지만 누가복음 7장(36-50절)에도 예수께서 바리새인 집에 앉으
셨음을 알고 찾아 온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
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전합니다. 눈물겨운 사랑이야깁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사랑 이야기는, 너의 아름다움만을 바라 본 에로스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랑은 너의 곤
궁함을 바라 본 아가페적 사랑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 유하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너의 곤궁
함을 바라보고, 그 곤궁함을 해결해 주시려고, 먼저 자신을 깨뜨려 문둥이들과 창녀들의 사랑이 되어 주신 이가 바로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셨습니다. 종(種)은 종(種)을 낳고, 류(類)는 류(類)를 낳듯이 그 사랑은 그 사랑을 낳았습니
다. 그 아가페 사랑은 그 아가페 사랑을 낳았습니다. 너의 곤궁함을 바라보자 그녀도 너의 곤궁함을 바라 본 것입니
다.
그러나, 그 물질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줬어야 했다며 시비하던 가룟인 유다는 예수를 은전 30냥에 팔아 버리고 맙니
다. 물질의 참 효용성을 그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
울 수 있거니와(7a), 라는 그분의 말씀을 거기까지만 듣고 돌아 선 것입니다. 아니 그 다음에 이어서 하신 말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7b)는 말씀까지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저가 힘을 다하여 내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 는 말씀까지도 들었는지 모릅니다. 암튼, 예수의 말씀을 잘라 먹었든, 아님 통째로
되새김질 없이 삼켜 버렸든, 그 어떤 경우였을지라도 이기적 자기애에만 도취된 가식적 휴머니스트에게는 그 말씀이
소화될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가룟유다 그가 가식적 휴머니스트라 함은 요한의 예리한 관찰이 그 증거입니다. 가룟유
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
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있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4b-6). 그렇습니다. 그는
물질의 참 효용성만이 아니라, 아가페적 사랑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곤궁함을 바라 본 예수의 사랑으로 구원에 이른 이 여인은, 그 구원의 빛으로 예수의 곤궁함을 투사했
던 것입니다.
"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7b)
저가
힘을 다하여 내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
"
그녀는 들을 귀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가련하고, 추한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해 준 예수를, 그녀가 이제 십자가
의 예수와 그녀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와 동일시(identification)함으로 형성되는
자기 정체성(identity)을 그녀가 갖게 된 것입니다. 너의 추함을 바라보는 아가페적 사랑의 정체성을. 그래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아 주는 예비적 슬픔을 이렇게 화사하게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그 사랑하는 자를 위해 나드향을 발산하듯, 이 여인은 사랑하는 이의 장사를 위해 설화석고, 자신을 파
아싹 깨뜨려 온천지에 향내를 발하고 있습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이후로 영원히 그분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영원히 기념되는 향기로 그녀는 충만해 있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죽음같이 강한 것(아8:6)임에 틀림없습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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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 입니다.
상처입은 영혼
저 입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습니다.
지독한 사랑을 입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꼭 그래야 할 까닭이 제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