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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363 : 열납 된 호주머니로 세워진 교회

2013.07.21(주일)

교회로 택배가 날아들었다.

아내가 차를 몰고 가서 교회로 배달 된 택배 물품을 집으로 가져왔다.

제법 쓸 만하다. 윤 기사. 천지사방으로 돌아다닐 일 없고, 당신 심부름이나 하면서 교회를 돌보는 일에 더욱 힘쓰겠다더니, 이 이른 아침에도 흥부 제비 박씨 물고 오듯, 귀한 택배 물품을 가져왔다. 택배 물품이 괴산産 찰옥수수다. 엄기주 장로님께서 직접 농사지어 생산한 첫 열매를 보내주셨다.

오늘 설교를 요약해 본다.

나는 부활의 권능이라는 제목으로 부활 주일 이후, 17째 주일 설교를 오늘 했다.

사도행전 5장 1-11절에 이르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다.


11절이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니라.


여기에 이르러 사도행전에서 ‘교회’(에클레시아)라는 용어가 처음 나온다. 나는 성도들에게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부활의 권능, 그 역사를 역사적 흐름을 통해 일러줘 왔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행5:11절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귀한 교회라는 용어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임을 당한 사건,

그 마지막에 나온다. 그 이유가 뭘까?


사유재산을 성경과 교회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 사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성령의 감동으로 결단하여 하나님께 바치기로 봉헌 예물의 일부를 가로채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부부는 공모하여 봉헌하기로 작정한 예물의 일부를 빼돌렸다. 그러나 그런 변심보다 더 큰 문제는 투시의 능력을 갖춘, 거기다 더해 그의 저주의 말이 곧 그들의 생명조차 앗아버릴 수도 있는 권능의 사도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베드로가 아니라, 주님의 사자를 속인 죄는 곧 성령을 속인 죄요, 하나님을 속인 죄라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속인 죄의 결과로 두 사람은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한 번 봐 줄만도 한데도, 하나님께서는 성질 급한 베드로 사도를 도구로 사용하여 그들의 생명을 끊어 버리셨다. 

 

이처럼 무자비하게 사랑과 긍휼의 주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단번에 치신 이유가 뭘까? 그 이유가 '교회'라는 용어가 이제, 여기에 등장한 배경이다.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 그 배후에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계략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음모를 단호하게 치리해 버리셨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거짓 서원, 맹세, 서약을 용납하실 수가 없었다. 바로 그 거짓이 하나님, 그리스도, 주님의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신다. 반드시 거짓은 벌하신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지나친 벌을 받았다고 우리들이 여기며, 베드로의 성격 때문에 즉, 목자 잘 못 만나서 그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가 막 세워져 가는 첫 단계에 사탄의 방해 공작도 대단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초기 대응을 하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서원한 것은, 서약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서약을 뒤집는 이유는 내가 아니라 사탄의 개입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영안을 열어 직시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결코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서원, 서약한 바를 망각하고, 부인하고, 저버린다. 학습과 세례 그리고 임직식 등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사자와 교회 앞에 서원, 서약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든든히 선다. 다시 강조해 그 서원과 서약을 저버리게 한 존재는 마귀다. 그래서 사탄이 성도가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린 서원과 서약을 무시하게 만들어 버린 교회는, 이내 무기력해지고 만다. 다른 말로 그것은 피로 사신 교회를 능멸하는 사탄을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결과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주의 교회는 공의의 칼로 무장한 신앙공동체다. 거짓과 불의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의 교회를 정화하신다. 무서운 말씀이다. 그래서 바나바의 헌물에 감격하며, 마냥 고무됐던 초대 신앙 공동체가 이 저주 사건 이후,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즉 하나님을 경외(敬畏)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인적 긴장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힘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동안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과 성령강림 사건들을 통해 교회는 용서와 사랑과 소망과 능력 공동체로만 소개되어져 왔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는 끊임없는 사탄의 회유와 공작과 파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5장 첫 머리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교회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저자 누가는 교회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실하신 공의가 살아 역사하는 치리회임을 보여 준 후, 5장 11절에 온 '교회'라는 용어를 등장시키셨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님의 다스리심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소유하심을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루는 신앙 공동체다. 그리고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권세 아래에도 처하지 않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재림의 주를 간절히 고대하는 앙망에서 우러른 아낌없는 헌신과 봉헌으로 든든히 세워져 왔다. 특히 경제가 최우선시 되는 세상살이에서 생명 같은 물질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쾌척한 용사들이 세워 온 신앙공동체가 교회다.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바나바의 봉헌을 이어가는 이들로 인해 교회는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저자 누가는 5장 저주받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절반의 봉헌에 앞서, 사도행전 4장 마지막 문단에 바나바의 온전한 봉헌을 한 줄로 정갈하게 대비해 놓고 있다.

 

호주머니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다.

호주머니의 열납 됨이 완전한 열납 됨이다. 열납 됨의 마무리다.

호주머니의 회개와 열납 됨으로 교회는 성장과 확장을 거듭해 왔다.

 

여기, 오늘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바나바와 같은 봉헌자 두 분을 소개한다. 


한 분, 자신의 땅을 내놓은 엄기주 장로.

한 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故 유일한 박사.

 

♡ 한 분, 엄기주 장로. 그분은 믿음의 대장부다. 

 

지난 영혼일기 1035: 믿음의 역사 (2012.08.13(월))의 주인공이 엄기주 장로님이다. 나는 바로 그날 괴산을 다녀왔다. 원족을 나서는 아이들처럼 마음이 설렜다.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귀한 대접을 받고, 우리는 자연을 벗 삼아 정담을 나누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믿음의 역사役事, 그 감동적인 역사歷史를 함께 나누는 데서 충만해 진다. 나는 엄장로님의 신앙일대기에 대해 듣게 됐다. 결론적으로 엄 장로님 내외분이 받은, 장로와 권사 직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그분들이 그 사랑의 수고로 이룬 믿음의 역사는 내 심령에 신비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엄 장로님은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던 충청도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이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부인 권사님께서 신접살이 살림 속에 숨겨 온 성경책 한 권 때문이었다. 부인 권사님의 독실한 신앙심에 감화를 받아 엄장로님은 교회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이 인생요절로 삼는 한 구절의 말씀을 받는다. 야고보서ㅣ장27절 말씀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그 말씀 위에 서서, 그 말씀대로 살 것을 하나님께 서약하고, 부족하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 왔노라고 엄장로님은 말씀하셨다. 괴산 엄장로님네 동네에 번듯한 교회당이 세워져 있다. 그 교회가 선 땅이 바로 그분의 땅이었다. 그분이 매우 아끼던 땅이었다. 그랬지만, 그분은 바나바처럼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뒀다. 그분이 섬기는 본 교회는 서대문교회다. 서대문 교회 선임 장로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의무에 넘치는 충성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분이다. 괴산 바울 교회는 엄 장로님의 기본을 넘어 선, 차고 넘치는 헌신으로 든든히 섰다. 그뿐만 아니었다. 엄장로님은 해외에도 교회를 몇 개나 세우셨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경건을 그분은 일생 꾸준하게 실천해 오고 계셨다.


수년 전 어려운 병으로 수술에 들어가면서 준비해 두었던 수술비 1천만 원을, 그 무렵 뭔가 기도의 제목이 있어 뵈는 아는 어느 목사님의 어려운 물질적 형편이 눈에 어른거려서, 그 1천만 원을 그 목사님에게 보내고 수술실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더 이상 자기 자랑이 될까 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봐 절제하셨지만, 그분은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한, 참된 경건의 실천이 몸에 밴 듯 했다. 이상의 간증도, 자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청년 시절까지 예수의 '예'자도 몰랐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그 말씀 따라 산 은혜와 기쁨을 우리와 나누고 싶어서 그런 신앙 간증을 하게 됐노라며 쑥스러워 하셨다.


그분의 간증은 우리들에게 놀람과 기쁨을 선사했다.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분이 장로인 것은, 허명이 아니었다. 그분은 참 경건을 실천한 대장부였다. 

 

그분이 오늘 나에게 우리 교회 성도들과 나눠 먹으라고, 감사의 절기에 거둔 찰옥수수를 한 가마 가득 보내 주셨다. 마침 바나바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견주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헌신의 비결을 설교해야 할, 주일인 오늘 그분의 헌물은 우리 성도들에게 영육간의 귀한 양식이 됐다. 진실로 감사했다.

 

♡ 한 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故 유일한 박사.

 

나는 지난 6월 22일 구호서 장로님의 자녀 혼인예배에 참석했다. 장소는 노량진 CTS 사옥이었다. 그날 나는 주차를 했던 CTS 사옥 가까이에 위치한 유한양행 빌딩에서 故 유일한 박사를 만났다. 그 빌딩 1층에 유일한 박사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흘려들었던 유일한 박사의 일대기를 살펴봤다. 실로 감동적이었다. 신앙 교훈적이었다. 그분도 바나바 같은 분이셨다. 그분은 광의(廣義)의 교회, 대 사회에 청지기 정신을 신앙고백으로 구현해 낸 금쪽같은 신앙이자, 기업인이셨다. 나는 그분의 생애를 돌아 봤고, 기업가로서의 성취와 모범적인 실천을 살펴봤다. 그리고 몇 컷 사진을 찍어 놨었다. 그 사진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는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인생철학,’ 이 초점이 흐려서, 선명하지가 않다. 그래서 여기 그 내용을 옮겨 본다.


 

「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인생철학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지배하에 처했던 시절에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자본주의 참 정신을 배웠고, 외국 땅에서 독립운동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던 서재필 박사를 비롯한 여러 선배 동지들과 접하면서 나라 사랑의 뜻을 키웠으며 귀국 후 고국에서의 기업 활동에서도 항상 자본주의의 참뜻을 실천에 옮겼던 문자 그대로 신상으로 존경받는 미국의 민족기업인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무엇보다도 근면, 성실, 정직해야 한다는 신조를 좌우명으로 삶았다. 사생활까지도 검약을 몸소 실천 하였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낭비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활이 그러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해서도 사치스러운 생활은 허용하지 않았다.

 

유일한 박사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천으로 시작했다.  

 

유일한은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미국에 갈 때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에 맡기는 것을 보고 체험했다. 또한 교회에서 처음 유일한의 손을 붙들어준 사람도 침례교회 목사였고, 독실한 신앙심을 가졌던 두 자매는 언제나 유일한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었고, 계속 기도로 도왔다. 유일한 박사의 삶도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기독교적 정진과 신앙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후일 유일한 박사의 기업정신을 논쟁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청지기의 정신을 실현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청지기는 소유주가 아니다. 일과 재산을 맡아서 관리할 뿐이며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이 노력해야 하는 일꾼이다. 맡아서 관리하는 것이 청지기의 본분이다. 유일한 박사는 바로 그런 정신으로 일관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체의 주인은 사회이고 기업가는 그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미래 지향적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한 박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리이며 인생의 궁극적인 지표가 되어야 함을 쉬 깨닫게 된다. 」


 

이상이 간추린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인생철학이다. 나는 그 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그러면 그렇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첫 머리, 그분이 크리스천이었다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그래, 그분이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수학을 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그곳에서 청교도 정신을 배웠다. 청교도 정신이란, 청교도들의 직업관이자 소명으로서의 직업관을 가리킨다. 청교도들은 소명으로서의 직업에 임하면서, 항상 주님께 하듯, 근면, 성실, 정직 이라는 모토에 충실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했으나, 어려운 고국을 위해 귀국하여 기업을 세워, 일으키셨다. 

 

“유한양행이 히트한 상품으로는 안티푸라민과 삐콤씨가 있다. 평소 유 박사는 “기업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종업원과 사회의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36년 유 박사는 기업공개를 결정했다. 그를 포함 종업원 77명 가운데 24명이 주주가 됐다. 상당수 주식을 종업원에게 공로주 형태로 배분했다. 국내 기업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였다. 매년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가 열린다. 직원의 어려운 점이나 아이디어를 복지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원활한 소통 덕분에 창업 이후 한 차례도 노사 분규가 일지 않았다. 1971년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이후 유 박사 친·인척 중에 유한양행과 인연을 맺은 사람은 없다.

 

김 대표는 유한양행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했다. “3무(無)라고 하는데요. 지연·혈연·학연이 없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어요. 내부 경쟁이 치열해요. 능력은 기본이고 동료들과 화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회사 발전을 위해서는 쓴 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고요.” 당시 유 박사는 부자가 갖춰야 할 사회적 의무를 알고 있었다. 그가 남긴 어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1952년 회사 경영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는 장학사업에 나섰다. 사재를 출연해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세웠다. 1962년에는 재단법인 유한학원을 설립하고 유한공고와 유한중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가셨다.  

 

첫째, 손녀 유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1만6529m²(5000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미되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중·공업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어린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 달라.

셋째, 내 소유주식 14만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기증한다.

넷째,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유일한의 유언장에서 - 1971년 4월 공개된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유언장이다.

 

1971년 3월 11일 유일한 박사가 눈을 감기까지 각종 공익재단에 기증한 개인 주식은 유한양행 총 주식의 40%에 이른다. 추정 가치는 약 8,000억 원. 유 박사가 평생 해온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결과다. 그분의 장녀 유재라 여사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갔다. 부친이 별세한 뒤에는 유한재단 이사로 사회공헌활동에 매진했다.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1991년 아버지가 남긴 유한동산을 비롯해 개인 소유의 유한주식을 모두 유한재단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약 200억원 상당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http://magazine.joins.com/forbes/article_view.asp?aid=296982 기사 요약)

 

아버지의 신앙의 유지를 이은 딸. 그 아버지가 청교도들의 신앙고백과 실천에 모범을 보이셨기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인 바나바 선교사가 비(非)가시적 교회를 세워나갔을 뿐만 아니라, 먼저 온전한 물질적 봉헌으로 가시적 교회의 기초를 다졌듯이, 유일한 박사는 그 좁은 길을 실천한 참 경건한 크리스천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로 사신 교회는 베드로를 낳고, 초대 교황 베드로는 바나바를 낳고, 온전한 봉헌자 바나바는 바울을 낳고,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 바울은 오늘 엄기주와 유일한을 낳고, 엄기주와 유일한의 경건은 야고보의 교회와 밝은 세상을 낳고.

 

교회는 실천적 신앙인을 낳고, 그 신앙인의 실천은 교회를 낳고.

열납 된 호주머니로 세워진 교회가 교회를 낳고.

 

루터 식으로 Kirche 즉 Church - 주님께 속한 공동체는

오늘, 낮고, 천한 자들이 옥합을 다투어 깨뜨림으로 열납 된 헌신으로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있고,

나도 너도,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다시 11절이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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