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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396: 故 박봉진 목사 순교 70주기 추모예배

2013.08.19(월)  

 

오늘 총회본부에서 '故 박봉진 목사 순교 70주기 추모예배'가 있었다.

그분이 순교하신 날은 1943년 8월 15일이다.

 

유족들의 요청을 우리 역사편찬위원회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성심껏 추모예배를 드렸다. 금번 회기 사업계획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업이었지만, 우리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며, 순교자의 신앙유지를 최선을 다해 받들어 모셨다.

 

고(故) 박봉진 목사님은 1890년 경기도 평택군 어소리에서 출생하셨다. 고향에서 금은 세공 및 금은방을 경영하시다가, 사명의 길로 들어서셨다. 그 사명의 길에서 그분은 평택교회, 하리교회(여주) 등을 개척하셨고, 장호원, 여주, 이천에 이어 철원 성결교회로 파송 받아 사역하셨다. 철원교회 시무 중 일제의 기독교 탄압 정책에 의하여 철원 경찰서에 구속 되셨고, 옥중에서 일경의 신사참배를 권하는 끈질긴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재림 신앙을 강조하시다가 모진 옥고를 치룬 끝에 1943년 8우러 15일 새벽 4시 경에 순교하셨다.

 

나는 추모예배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사회를 봤다.

묵도 전 개식사에서 나는 두 구절의 말씀을 낭독했다.

 

하나, 박봉진 목사님의 육성을 대신한 그분의 신앙고백이다.

 

천황 폐하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오.

모든 사람은 다 죄를 범하였으므로

천황 폐하도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요.

 

둘, 요한계시록 22장21-22절이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늘 그렇지만, 순교 신앙을 공동으로 기억해 내는 일은 항상 감격과 감사가 뒤따른다.

물론, 나는 내 스스로 절제하고, 나 자신을 단속하는 게 있다.

 

그것은

절대로 순교자의 이름을 팔아 내 영광을 삼지 않는다는 자기 다짐이다.

절대로 순교자의 이름을 빌어 그 누구를 교훈하려 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절대로 순교자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자기 비움을 만분의 일이라도 실천해 보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나는 늘 순교 신앙을 계승 발전시키는 성스러운 행사를 대하면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는 말씀을 속으로 되 뇌이곤 한다. 그 묵상은 내가 자발적으로 행한다기보다는, 순교의 영이 나에게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순서를 짜면서, 먼저 밑그림을 그려 온 분들의 의견의 다 반영해 드렸고, 거기다 더해 그 순서의 적임자를 내가 추천했었다. 결과적으로 순교의 적자(嫡子), 순교의 재조명에 앞장 선 분, 순교의 역사를 재기록 하는데 앞장 선 분으로 구색을 제대로 갖춘, 모두를 품은 순교 정신에 합당한 행사가 됐다. 그리고 그 세분의 추모사와 격려사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박봉진 목사님의 순교를 조명해 냈다. 그래서 불화덩어리 된 총회 본부가 모처럼 고(故) 박봉진 목사님의 순교 유지를 함께 받들며 모두가 감격해 했고, 서로 감사해 했다.

 

부디, 한반도의 중심이 변방 된 아픈 우리네 현실이 속히 원상대로 회복되길 소망한다.

 

그 철원 땅에 순교의 피를 뿌린 박봉진 목사님의 순교신앙이 만천하게 널리 확산되길 소망한다. 철원에서 증도까지, 우리는 순교의 징검다리를 건너 온 국토를 순례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교단이다. 이 빛나는 신앙의 유산을 우리 모두 기쁜 맘으로 공유하길 소망한다. 머지않아 그 순례의 길을 교단 지도자들을 앞장 세워 말단 사역지의 개척자까지 함께 기도하며, 결단하며 걷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한다. 오직 순교의 제1원인, 원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 그 깃발을 높이 들고.

 

그러나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설교자 조일래 총회장의 설교 내용 중에서 있었다. 그분은 설교 중 그 가난한 목회자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결말의 예화로 사용하셨다. 그분은 개척 목회에 대성공을 거둔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이시다. 그분이 개척하신 수정교회는 해외 선교에 앞장 선 대표적인 교회다. 사람들은 그분이 당연히 통장이 몇 개 정도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들이 장가드는데 목사 아버지가 가난해서 집 한 칸 마련해 줄 돈이 없었어요. 아니 전세금조차 마련해 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들이 알아서 전세 자금을 대출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전세 자금은 혼인신고서가 필요하데요. 그래서 아들 내외가 혼인예식 전에 혼인신고를 하고, 전세자금을 빌려서 살 집을 마련했지요. 그 장면에서 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줬습니다. ‘아들아, 아버지가 너에게 전세방 하나 얻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통장 하나 없는 목사 아비는 가난해서 너에게 돈은 너에게 못 줬다. 그러나 너를 위해 복의 씨앗은 심어 놨다. 그러니 네가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그 복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라.”

 

나는 그분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삶이,

산 순교다.

 

오늘 고(故) 박봉진 목사님의 추모예배는 죽은 자를 위한 추모행사가 아니었다. 금은 세공으로 일가를 이루셨던 박봉진 사업가가 자신의 재산을 주께 바쳐 평택교회를 건축했던 그날의 헌신이, 오늘 조일래 총회장의 산 순교로 빛나며, 우리 안에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산 순교 행전을 우리는 계속 써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추모예배가 그랬다. 아니 매번 드린 여타 순교자 추모 예배가 늘 그랬다. 산 순교자가 연이어 그 순교의 맥을 잇고 있는 복음의 생명력을 우리는 항상 대해 왔다. 참 감사하다. 

 

우리 위원회 서기 되시는 대구 봉산교회 이동기 장로님께서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여타 위원회와 우리 역사편찬위원회는 그 가치를 비교할 수가 없어요. 정말 좋은 행사였어요. 그 난리 통에도 우리 역사편찬위원회는 많은 일을 해왔어요.” 그분은 감사해 하셨다. 나도 동감과 감동의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우리 아버지께서도,

고(故) 박봉진 순교자께서도,

오늘 만큼은 우리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을 것이다.

감동과 감사가 넘친 참 값진 하루가 갔다.

 

땡스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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