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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453 : 권면 비전교회 교회에 주는 권면

2013.10.13(주일) 

 

비전교횔 갔다.

아담하나, 알찼다. 축하하러 온 하객들의 이구동성이다.

성도들의 얼굴에는 웃음 꽃이 가득했고,

강단을 사모하는 영혼들의 갈급함이 강단을 집어삼켰다.

 

그 나이에 다크 벨벳 같이 새까맣고, 윤기 자르르한 머릿결이라니, 

리얼리?  

 

겉다르고 속다른(ㅋ,ㅋ)

 

참목자 정방원-박민희 목사 내외의

대게 껍데기 같이 빈틈없고, 철저한 자기 관리에

대게 속살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 

영적 풍경화를 우리는 감상했다. 

 

참 안온하고, 열망에 가득 찬 생동하는 신앙공동체를  

모처럼 대했다. 

 

감사했다. 

교회에 주는 권면을 했다.   

 

 

 

권면

 

비전교회 임직식, 교회에 주는 권면 

 

 

교회에 주는 권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임직자을 세우는 교회에 대한 권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일치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 가운데 특히 교회의 사도성과 일치성을 공연하는 시간입니다. 사도성이란 교회가 사도들의 교훈을 가르치고, 교회가 역사적으로 그들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운 최초 역사적 임직 사건이 오늘 우리의 임직식의 사도성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 교회에 주는 권면으로 교회의 본질 중 하나인 일치성에 대한 권면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사가 말하는 모든 교회의 일치성은 보이는 성례전에 참여함으로 즉 세례, 견진, 서품 그리고 성만찬에 참여를 통해 형성됩니다. 이런 가톨릭이나 성공회 등의 예전은 우리 개신교회와 그 신학적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 예전이 주는 메시지인 일치성은 오늘 여기 우리의 임직식도 통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임직식을 허락하신 하늘의 메시지는 일치성 추구입니다. 온 교회와의 행정적,영적, 목회적 일치성의 추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를 세운 이유는, 교회의 일치성 회복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부터 7절까지에 나오는 일곱 집사 임명 사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 두 개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말이 달랐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어(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 두 부류의 집단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자기의 유골이 묻히길 바라며 조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 중 과부들은 생활이 곤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들을 구제했는데, 그들이 본토박이 사람들에 비해 교회의 구제에 있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툼이 교회 내에서 인 것입니다. 하여 사도들이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인, 예수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그 구제의 일에 전담할 평신도 사역자 일곱을 택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밝히고 있는 바, 그 일곱 집사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사도들을 교회의 일치를 위해 억양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객과 같은 형제자매들을 오히려 높여 그 일에 관여하게 했습니다. 토박이인 히브리파 사람들의 양보를 통해 구제로 인한 불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여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했던, 사도들의 적극적 자기 비움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합니다. 가진 자, 직분 자, 힘 있는 자, 토박이들의 양보가 전제 됨으로 가능한 것이 교회의 일치임을 보여 준 교회 분쟁 사건 해결 방식입니다.

 

교회는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일치(一致)는 일색(一色)이 아닙니다.

이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일치는 일색이 아닙니다. 바벨탑 사건은 한 언어로만 추구한 일색 공사였습니다. 그래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각기 다른 방언을 자기 언어로 듣게 된 신비, 교회의 일치성 회복 사건입니다. 

 

일치성을 추구하는 교회는 ‘우리 구역만, 우리 기관만, 우리 안수 집사끼리만, 우리 권사끼리만’ 교제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끼리끼리가 아닙니다. 장로회 당회만의 교회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만의 교회도 아닙니다. 누구누구만의 교회도 아닙니다.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교회, 그 역사 안에 모두 함께 자리하는 보편성을 띤 교회입니다. 

 

우리 교단의 신학의 시조 웨슬리 선생은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영국국교에 의해 탄압받던 노방 전도자였습니다. 이는 당시 영국 국교회가 ‘누구나’의 교회가 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비복음적인 '일색‘ 성공회에 맞서 웨슬리는 ‘영국만이 아닌’ 영국 그 위험한 경계를 복음으로 과감히 넘어 온 세계로, 그의 선교적 비전(전망)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런 비전으로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핍박 없는 디아스포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적, 선교적 비전 없는 핍박도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핍박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것입니다. 디아스포라는 하나님께서 찢어 놓으신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신28:25).”

 

오늘 우리 비전교회가 존재함도 예루살렘만, 유대인만의 일색 구원을 주장했던 이들을 하나님께서 찢어 놓으신 성서적 디아스포라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경계선을 넘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까지 말입니다. 

 

부디 비전교회가 이 임직식을 통해 교회 일치성을 완전히 회복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둘이 하나 됨은 물론이고, 이 세속 도시에 만연 된, 피부색 따라, 억양 따라, 차종 따라, 아파트 평수 따라 끼리끼리의 문화만을 즐기는 폐쇄적 배타주의, 배금주의에 물든 순혈주의적 사고에서 벗어 나, 일색一色 아닌 일치一致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인종적, 문화적 배경과 벽을 넘어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그 마가의 다락방처럼 임하는 역사가 있길 기원합니다.

 

교회의 일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초기 이단들은 ‘나 중심의 일치’를 추구했습니다. 몬타니즘(Montanism), 노바치아니즘(Novatianism), 도나티스트(Donatist) 등은 자신들이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성 어거스틴은 도나티시즘에 맞서 성례전 중심의 일치를 주장했습니다. 교회는 사역자들의 개인적인 자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례전 자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주장한 것입니다. 가톨릭의 성례전 중심 교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교회 사상의 혁신을 이룬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의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일치는 특정한 사람 중심이 아닙니다. 성례전 중심도 아닙니다. 

말씀 중심의 일치입니다. 

 

이 임직식 행사 그 자체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임직식에 권위를 부여하는 말씀에 권위가 있습니다.

그 말씀의 권위를 의지할 때만이 이 임직식에 권위가 임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교회는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여기 이 임직식에 권위를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대언하겠습니다.

이 시간 비전교회 성도들은 모두 다 말씀 앞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6-28)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2-5)

 

다 앉으십시오.

 

이 교회는 말씀 앞에 겸허히 40일에 하나 감한 금식으로, 자기 낮춤, 자기 비움을 실천한 참 목회적 리더십이 있는 교회입니다. 담임 정방원 목사님은 참 목자상을 자기 안에서 구현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이 교회가 말씀 앞에 굳게 선 담임 정방원 목사님께 순종하며,

오늘 이 임직식에 주께서 말씀하신 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는 교회와 임직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 그 일치성을 누리고, 나누며, 땅 끝 까지 증거하는 참된 비전 교회가 되길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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