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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063: 남자의 변신도 무죄다!(주일 설교)

주일이다.

지난 화요일 나는 난생 처음, 나이 진갑에 Permanent Wave를 감행하고는, ‘남자의 변신도 무죄!’ 라고 소리를 높혔다. 그 강변에 눌렸는지는 몰라도 거의 99%(?)의 지인들에게서 나는 무죄를 넘어, 용기 있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청춘이라는 덕담을 선물로 받아왔다. 거기다 더해 몇몇 사모님들께서는 아부가 아니라, 진짜로 멋있다는 찬사까지 보태주셨다. 그러니까 통계적으로 보나, 피부로 느낀 바나, 그 무엇에 대비해도 나의 변신은 모처럼 내가 만인을 행복하게 해 준 화사한 연출이었음에 틀림없다. 단 한 사람, 40대인 C.S Kang만 어법이 달랐을 뿐이다. 40대 맞아?

그랬지만, 오늘 막상 주일 설교 강단에 서려고 하니, 성도들에게 뭔가 해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남자의 변신도 무죄’임을 설득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말씀 앞에 서야 했다. 나는 주일을 앞두고 계시 의존적 사색 및 묵상에 몰입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행여, 자기변명을 위해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말씀 한 줄을 내 세워 그 말씀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내 변신에 대한 해명이나, 설득을 넘어 선, 말씀의 동의를 나는 구해야 했다. 설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설교를 해야 했기에 내 행위를 어떻게 말씀에 녹여 적용해야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설교 제목 : 구속사의 계보를 잇는 변신/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는 본문을 세 곳에서 잡았다.
창세기 38장, 마태복음 1장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이다.

먼저, 창세기 38장에서는 시아버지를 유혹한 ‘다말의 변장을 구속(救贖)한 구원의 은총’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3절은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라는 말씀에서 보듯 유다와 다말이 죄악 중에 잉태한 베레스와 세라를 구속(救贖)하시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되게 한 구속사적 은총을 확증 시키고 있다.

다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의 집에 허락하신 기업,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를 얻고 싶었으나, 남편이었던 유다의 큰아들 엘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여 버리심으로(창38:7) 자녀조차 없는 과부가 되어버렸다. 그 후, 수혼법(嫂婚法;레비리트 율법 신25:5-10)을 따라, 둘째 오난이 그대를 이어줘야 했으나 그가 거부함으로, 그도 하나님께 벌 받아 죽어 버렸고(38:10), 셋째 셀라는 어리다는 핑계로 친정에 가 있으면 후일에 기회를 주겠다던 시아버지 유다가 “셀라까지 다말에게 주었다가는, 셀라도 제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38:11)는 생각에 실질적으로 수혼법을 거부해 버렸다. 그 후, 시어머니의 부음을 들었고, 아내를 잃은 유다가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양털 깎으러 딤나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를 얻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다말이 중대 결단을 한다.

창녀라도 되리라.
‘분장’한 그녀가 길을 나섰다.

다말이 과부의 옷을 벗고, 창녀처럼 분장하고는 딤나로 올라가는 시아버지 유다를 그 길목에서 유혹한다. 그리고 새끼 염소를 화대로 치르겠다고 약조하는 시아버지 유다에게서, 우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징표로, 유다의 도장과 허리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잡고 동침을 한다. 그 삼 개월 후, 과부인 며느리가 창녀 짓을 하여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다가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38:34)”고 명한다. 그러나 다말은 끌려가면서, 유다에게 담보물과 그 담보물에 얽힌 비밀을 토해낸다. 이에 유다는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도다(38:26).”며 책임을 자신이 짐으로, 다말이 쌍둥이를 낳게 된다. 뱃속에서 나오는 순서가 교차되면서 동생이 형 되는, 육신의 장자 권은 무의미하다는 영적 교훈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그 사건은 마무리 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다말의 분장도 무죄다.

불가항력적 행음을 한 다말은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속죄할 수 없는, 무서운 죄를 구속의 주되신 사랑의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용서를 받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창녀 짓을 했던 다말은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의 조상으로 등극한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3).”

참 아슬아슬하고, 흥미롭고, 기발한 다말의 분장 사건은 그 은혜 안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승화된다. 하여, 나 같은 죄인도 무죄다. 너도, 우리들도, 너희들도 무죄다. 더 나아가, 우린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 그리스도,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우리는 모두 다,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다. 할렐루야!

여기서 다시 the Reverend C.S Kang을 끌어 들인다. 그를 우려내야 맛나고, 피부에 와 닿는 설교가 된다.

그는 자기네 강단에서는 와이셔츠조차도 흰색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푸념(?)해대며, 은근짜 날 부러워(?)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가련한(?) 강단의 설교자임에 틀림없다. 허긴 영어로 와이셔츠가 White Shirts인데, 그래서 원어제일주의를 숭상하는 그 교회 강단에서는 당연히 White Shirts만을 입어야만 할 거다. 불쌍한 the Reverend C.S Kang. 그러니까 그가 나의 변신에 혀를 끌끌 찬 것은, 자신의 형편을 스스로 자조한 ‘끌끌’이요, 나에 대한 부러움을 뒤집은 시기심(?)에서 우러른 시비(?)이리라. the Reverend K! 나를 당신네 강단에 다시 한 번만 세워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 얽매임에서 자유 할 수 있을 거다. 그 축자영감식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거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그 진리에 굳게 선 그 용기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란 무엇인가? 용기를 선사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은 사도 바울은, 자원한 종신 나실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신 나실인은 삭도를 머리에 댈 수 없다.(일반 나실인은 일정한 기간만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삭도를 머리에 댔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를 얽어매던 나실인 법은, 오늘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 안에 굳게 선 바울에게는, 더 이상 굴레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갈2:19).” 그렇다. 바울은 그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섰다. 그는 율법적 나실인 법을 복음으로 뛰어 넘었다. 그 삭발 행위는 복음적인 종신 나실인인 그가 주께, ‘나를 다시 드리는’ 사명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재 결단이었다.

그리고 오늘, 새 언약을 따라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서원하고, 맹세한 우리도,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종신 나실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같이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자유함을 얻은 우리들에게, 바울 사도는 말 많고, 탈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시시콜콜 율법적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율법 정신 그 대의(大義)를 좇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설파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나는 오늘 설교 마무리를 좀 불분명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준비성 부족과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복음을 훼손했다.
머리 만지는 용기를 지나치게 말씀으로 포장하려든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0장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 가운데 믿음이 강하고, 지식이 있는 신자들을 향한 권면이다. 그러니까 믿음에 대한 방종을 경고한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십자가에 대한 믿음의 절대성을 빙자하여 우상의 제물에 무분별하게 참여하는 지식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이다.

무엇이나 해도 좋으나 무엇이나 하는 것이 자유는 아님을, 다시 배운다.

머리 만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건 문제가 될 것도 없다.
White Shirts를 만년 입는다고 율법에 얽매인 자라고 비하할 수도 없다.

다만, 매사에 믿음의 절대성을 빙자한 자유의 남용은,
그 자유를 오판하여 문란해지려는 내가 반드시 피해야할 것이다.

복음적 자유란, 결국 제한성 안에서의 자유다.
니 맘대로 해라, 그러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남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차원 높은 은혜의 복음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매사에 용기를 내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진리다.

그 제한 안에서 용기를 낸 남자의 변신만이,
무죄다.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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