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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583: (혀/경건)Beyond 제빵왕 김탁구

2010.09.17 16:21

김성찬 조회 수:1313 추천:60

영혼일기 583: Beyond  제빵왕 김탁구
2010.09.17(금)

어제는 깊은 잠에 빠져 ‘탁구(卓求)’를 못 봤다. 깊은 잠은 새벽 직후 탁구(卓球)를 쳤기 때문이다. 그 어딘가로 새벽부터 끌려가서 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져 아침부터 녹다운 됐는데, 그 탈진한 기력을 회복하느라 일찍 골아 떨어져 종영방송을 시청하지 못했다. T.V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이야기다.

그 드라마는 진부하나 복고적 향수를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국민(?)드라마가 됐다. 그 큰 줄거리는 빵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빵 만드는 사람됨이라는 실천적 담론을 효과적인 담화형식으로 가공한 것이다.

그 드라마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만들기를 테스트의 목표로, 팔봉선생의 인증서를 받으려는 형제 아닌 형제들이 벌인 각축의 장(場)이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김탁구는 그 드라마에서 제 이름 값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제빵왕에게 요청되는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세상이 요구하는 제빵왕 자격에 대한 담론은 이렇다. 먼저, “제빵왕은 천재적인 후각을 지닌 자여야 한다.” 라는 이론적 담론이다. 그는 천재적인 후각을 소유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빵을 만드는 사람은 그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도덕적 규범을 내용으로 하는 실천적 담론에도, 그는 합격점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때 엄마 찾아 삼만리를 헤매던 시절, 그는 그 손에 피를 묻혔었다. 그러나 팔봉 빵집에 묵으며 제빵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그는 손을 깨끗이 했다. 폭력배들과 맞서야 했을 때에도 그는 자기암시를 통해 ‘깨끗한 손’을 창조해 나갔다. “빵을 만드는 사람이 그 신성한 빵을 만드는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 이런 식의 다짐이었다. 그 결과는 명약관화했다. 손을 더럽힌 그의 라이벌은 이미 그 실천적 담론을 몸으로 구현한 탁구의 라이벌이 될 수 없었다. 그가 구한 높은 것은, 기업 거성의 대표가 아니라, 팔봉 빵집의 정신이었다. 그가 구한 큰 것은 물량적 크기가 아니라, 질적인 참된 가치였다. 산상수훈적 가치였다.

그래서 그의 휴머니티로 사람 냄새나는 가장 배부른 빵을 만들어냈고, 그는 가장 행복한 빵이라는 화해와 공존의 마당을 우리 앞에서 펼쳤다. 그러니까 그가 비록 가상의 빵쟁이였지만, 그는 그 따뜻한 인간애로 빵 재료값 전부를 탕진(구제)했다가, 그 눈물로 얻은 전리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절)”는 말씀의 교훈을 생래적으로 익힌 듯, 그는 그 몸을 악인들을 위해 불살라 화해와 공존의 빵을 구워냈다. 모두가 바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말이다.

그리고 그 종장에 이르러, 그 허구의 주인공은 만인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구워내는 일에 계속 매진해 나갈 것을 공약했고, 시청자들에게도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 드라마는 이런 이야기(story)를 재미있고, 탄탄하고, 생생하게 시청자인 우리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telling)했다. 어제 종영 방송은 그래서 시청률이 50%가 넘었다나?

나는 입이 거친 사람이다. 그러나 글은 제 트랙을 넘어가지 않는다. 위험수위를 조절할 만한 자제력이 내 손끝에는 있다. 그동안 진리를 수호하고, 공명정대한 행정을 위해 분투노력한 나를 악의적으로 공격해 댄, 그 어떤 인터넷 매체들에 실린 터무니없는 비방의 글들에도, 나는 익명의 댓글도 달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경건한 인내라 여겼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참았다. 아니 무시했다.

그런데 혀가 문제다. 감정 따라 춤추는 내 말버릇이 문제다. 물론 나는 적어도 내 혀로 그 누구를 불의한 의도로 공격해대거나, 간악한 자기 방어를 위해 이간질하거나, 추악한 궤계를 늘어놓은 적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의분을 이기지 못해 입이 거칠어진 적은 적잖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내가 글쟁이가 아니라, 설교자라는 데 있다. 설교란 손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손끝으로 설교 원고를 준비해도 발설은 혀가 한다. 그래서 원고 설교마저도, 나는 원고를 넘어 선 감정을 이입시킨 발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절).”

경건이 혀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다. 탁구도, 빵쟁이도 절제하며 손을 더럽히지 아니하거늘, 어찌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가 악한 말을 함부로 내어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런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 어떤 장사가 제 혀를 제어할 수 있으랴?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절).”

없다. 혀를 길들인, 길들일 사람은 세상에는 없다. 아무도 없다. 제빵왕 김탁구 같은 참된 빵쟁이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나 존재가 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나는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복음을 선포해야 할 목회자이다. 설혹 세상에 참된 빵쟁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그런 무력감에 박수를 보내서는 안 된다.

야고보 선생은 그래서 그 혀의 경건을 위해 이런 권면을 하고 있다.

먼저 소극적 권면이다.

입에 재갈을 물려라(약2:26,3:3).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허탄한 자랑을 피하라(약3:14,4:16).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말라(약3:13).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약4:11). 서로 원망하지 말라(약5:9). 함부로 맹세를 하지 말라(약5:12).

그리고 다음은 야고보 선생의 적극적인 권면이다.

* 경건한 삶을 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2:27).”

* 의의 열매를 맺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사모하라.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7-18).”

이 시간, 말씀을 열어 내 혀를 주관하시는 주께, 내 세치 혀를 위한 간구를 드린다.
Beyond 제빵왕 김탁구-김탁구를 넘어서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 나의 혀 잘 간수하게 해 주시고, 내 혀로 불의를 감별케 해 주소서.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욥6:30).”

* 또한, 악을 달게 여기고, 아까워하여 내 혀 밑에 감추거나, 내 입천장에 붙이지 않게 하소서.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천장에 물고 있을지라도 (욥2:12-13).”

* 그리고 혀를 금하여 생명을 사랑하며, 좋은 날을 보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3:8-11).”

* 행여, 타인이 그들의 혀를 칼같이 연마하여, 독한 말을 화살처럼 내게 내 쏟지 않게 해 주소서. 그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소서.

  “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 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시64편 2-4).” 

* 더 나아가, 나를 겨냥한 타인의 간악한 혀가 움직이지 못하게 해 주소서.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출 11:7).”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수10:21).”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시120:2).”

* 주의 말씀만이 내 혀에 있는 주의 종이 되게 해 주소서!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 내가 주의 의를 높이며(시51:14), 종일토록 내 혀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35:28).” 아멘.


유념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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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독(毒)한 말에 상처 받아 불통 된 '물'님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

* 혀로 행한 불특정 다수에게,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나의 모든 죄에 대해 성령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 공회에서 나에게 터무니없는 비아냥과 매도를 날려 내 명예를 훼손한 그 누구를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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