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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398: 서울중앙신학교 초청 서울 8개지방회 회장단 모임 설교
2009.10.12(월)


오전 7시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 지하 1층 샤르도네 룸에서 서울중앙신학교 초청 서울 8개지방회장단 간담회가 있었다. 그 간담회에서 아래와 같은 설교를 했다. 그 모임 후 총회로 가서 오후 1시 시작한 작은 교회 후원을 위한 간담회를 다녀왔다. 어제 너무 늦은 밤까지 무리했더니 하루 종일 견딜 수 없는 피로에 힘들었다.

아카데미에서 라마 나욧으로
삼상 19장 18절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Naioth)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나욧

라마에 있던 땅으로(삼상 19:19),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였다. 이곳은 사무엘을 따르던 선지자들이 함께 거주하던 곳이기도 했다. 사울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은 사무엘을 찾아갔고 함께 나욧에서 거했다(삼상 19:18). 다윗이 나욧에 있음을 안 사울도 그곳으로 갔으며, 나욧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신이 임해 예언을 했다. 나욧 거처라는 뜻으로 사무엘 시대의 선지학교를 가리킨다.


어제 주일 밤, 서울신학대학교 어느 교수와의 대화에서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해 서울신대 경쟁률 3:1이었다고 하지만, 이는 복수지원의 허수 때문이요, 실제 경쟁률은 1:1에 불과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걱정했습니다. 이후 머지않아 본격적인 미달사태가 올 것라고.

이런 정규 대학의 공동화 시대에 과연 지방신학교의 존립이 가능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1.그러나 난 전제합니다.서울중앙신학교 학력이나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는 소명의식에 따른 사명감을 충족시켜 주는 마지막 대안으로서의 필요성은 영구합니다. 이런 기회 균등의 사명의 장으로서의 서울중앙신학교의 존재 이유는 성경적이며, 단 한 사람 21세기 무디, 그 같은 소명자를 위해서라도 학교는 존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적어도 서울 단 한군데의 지방 비정규적 신학교는 필요합니다. 이것이 비정규신학교의 존속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2.그러나 이 지방신학교는 또 다른 관점에 그 존속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Academic Excellency와 Ministry 또는 Evangelism 즉 학문적 우월성 추구와 교역 또는 복음전도가 과연 양립될 수 있는가 라는 점에 의문은 갖고 있습니다. 그 둘의 양립을 우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카데미란 그 추구하는 바가 복음전도사역과는 그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란? 학문이나 예술에 관한 지도적이고 권위 있는 전문가 단체를 뜻합니다. 이는 수사학교이며, 설립 연도는 BC 385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청년들의 심신 수양, 국정에 공헌할 인물 배출을 교육을 통해 이루어 보자고 시작했던 기관입니다. 그러니까 BC 385년 플라톤이 아테네 북서쪽에 있는 영웅신(神) 아카데모스의 신역에 청년들의 심신을 수양시켜 국정에 공헌할 인물을 배출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아카데메이아(Akadē meia)에서 유래합니다. 이 학원은 수사학교(修辭學校)로서, 플라톤이 이곳에서 가르치면서부터 아카데미학파(아카데메이아파)라고 하였습니다. 후일 중세교회시대를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에 그 복고열기로 인해, 그리스의 아카데미아가 전용(轉用)되어 문학·과학·미술 등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학교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종합대학 안의 신학과들이 어떻게 그 영향력을 잃고, 변질되어 왔는지 생생히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 채플이 순전한 복음을 지닌 신입생들의 신앙을 변질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19장 18절은 ‘라마나욧’이라는 예언자 학교 또는 선지학교에 대해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사울왕의 시기심에서 우러른 살해 음모를 피해 다윗은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스승 사무엘의 고향에 있는 이 영적 공동체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앙교육공동체는 영적 충만한 예언자 학교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을 잡으려 그 선지학교에 왔던 사울의 사자들이 연이어 예언을 하고, 다윗을 좇아 온 사울 왕까지 예언을 하게할 만큼 그 예언자 학교는 영적 권능이 충만한 학교였습니다.

그 살의를 띠고 그곳에 들렸던 사울 왕이 그 공동체의 영력에 감화되어 예언을 했었다면 과연 그는 양신역사를 한, 사탄의 영이 아니었겠는가 라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사무엘상 19:23)”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9절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아버리려 했을 때에는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란 구체적인 설명이 깃들어 있다.) 그 순간만큼이라도 그 악한 맘을 품었던 그도 예언할 만큼 사무엘이 수장으로 있던 그 예언자학교는 영적으로 충만한 학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신학교가 그런 영적 공동체인가? 학문이 영력을 다 소멸시켜 버린 아카데미가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그 의심의 근거는 학문이 신앙을 규정하는 경향이 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1872년 남감리교 감독인 피어스는 목회자의 교육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내가 들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는 대학을 전혀 가지 않은 자”라고 하면서 “신학교육에 투자되는 모든 돈은 감리교에 해가 될 것이다. 나에게 만약 백 만 불의 돈이 있다면 신학교육을 위하여는 십센트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남 감리교회는 신학교육으로 감리교가 덕 볼 것이 없고, 오히려 해가 되며 많은 이단의 원인이 되며 바람직하지 못한 설교가 나오며 이러한 형식주의 때문에 체험적 종교에 불리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교육 무용론의 영향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에서는 많은 바이블 컬리지와 직업학교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반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성공 이유 중의 하나가 높은 수준의 신학교 교육이라는 입장입니다.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잘 훈련된 목회자 양성을 위하여 Marburg 대학을 창설했고, Wittenberg, Tubingen 대학도 목회자 양성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들은 인문학과 신학에 교육을 잘 받은 목사가 목회를 잘한다는 확신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 혼미한 이성 중심 해체의 시기에 이성중심의 신학교육의 현실을 바라볼 때 수준 높은 신학교육이 기술로서의 목회, 이미지스트로서의 목자상을 빛내주는 일에는 일조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과연 체험적인 신앙을 학습하는 일에는 실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사보나 로욜라는 “초대교회에서는 성직자를 금처럼 귀하게 여기고 나무로 만든 성찬배를 사용하던 것이, 요즈음 교회에서 성찬배를 금과 같이 귀하게 여기나 성직자를 나무 등걸처럼 너무 흔하게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매서운 지적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린 그 영적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성경적 신학교의 시원인 라마나욧을 그래서 나는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 체험의 장으로서의 학문적 억압에서 다소 느긋한 성경학교 수준의 신학교육이 바로 지방신학교가 추구해야 할 영적 교육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Academic Excellency 보다 Ministry를 추구하는 신학교에 더 순수한 영성을 역사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성결교단의 경우 서울신학대학교보다 오히려 지방신학교가 그 최후의 보루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지방신학교(비정규신학교)가 이 땅에 존속해야할 두 번째 이유입니다.

신학이 교회의 뼈대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학과 교회가 뼈와 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교리로서의 신학적 기둥을 굳게 하면서, 그 체험 중심의 신앙전통에 서 있는 성결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현장의 신학자인 목회자들을 통해 일차적으로 굳게 다지는 서울중앙신학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엊그제 서울중앙신학교 교수 면면을 살펴봤을 때, 교단의 인재 풀에 한계가 있다 인정하면서도 그 교수 요원의 면면이 Ministry 이나 Evangelism보다는 Academic Excellency를 추구하는 이들이 만만치 않게 섞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대적 트랜드나 학문적 유행이 아닌 교단 신학 또는 교단 신앙에서 엄밀하게 검증된 교과목을 커리큘럼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리적 훈련의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타 교단에 비해 교리적 기반이 취약한 우리 교단 아닙니까? 작금 우리 교단에서 일고 있는 이단 사이비 문제에 대해 교회는 물론이고, 교단 더 나아가 신학교조차도 문제제기는 커녕, 아무 생각 없이 그 무엇이라도 수용하는 포용력에 난 지금도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회 현장에 적용이 가능한 신학, 그 실천신학의 보완을 통해 서울중앙신학교는 교회의 요구를 읽고, 그 수용에 합목적적인 인재양성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멘토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준 영적 아비. 위기와 역경 속에서도 위로가 되고, 보장된 위대한 미래에 대한 예언을 선사한 영적 아비가 그에게는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내 영적 상상력으로 나는 그 예언공동체에서 다윗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그 어떤 위험과 위협도 그를 왕 되게 하는 일을 넘볼 수 없는, 구속사적 다윗의 사명을 그는 예언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예언을 이룰 사명자로서 품위 있는 삶을 위해 기름 부은 왕 사울을 해할 수 있는 기회를 사양했고, 하루살이처럼 죽어선 안 되기에 그 영광의 날을 위해 미친 척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연상해 봅니다. 그 예언 때문에. 자신의 미래에 서서 오늘의 위기를 인내하라고 일러 줄 수 있었던 선견자 사무엘이 있었기에. 그는 이겨냈습니다. 그렇다. 신학교가 목회자 계속교육의 산실이 된다는 것은 이런 1:1 영적 케어와 위기 시 비전 제시를 할 수 있는 영적 멘토가 존재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예언자적이며, 영적인 면에서 그 지도력을 잃고 세속주의화 하는 경향성을 표출되고 있는 교회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는 교회 지도자의 문제이며, 그 교회 지도자를 양육하는 신학교육의 문제임을 직시하여 서울중앙신학교가 교회의 협력과 학생들의 지원만이 아닌, 거기에 다윗의 사무엘과 영적 권능과 예지력과 감화력이 풍성한 영적 멘토가 늘 존재할 때, 존재의 확장을 스스로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중세교회를 이성의 힘으로 퇴출시켰던, 그 이성중심의 르네상스가 갈 길을 잃어버린 시대에, 그 이성 중심 학문에 기반 한 신학교육은 이 시대의 영적 대안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학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뼈와 살의 관계에 있는 신학과 교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도, 별개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교회와 신학교 사이의 물질적, 정신적, 영적 지원이 강화되어야할 책무를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일에 우린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서울지방 신학교의 존속을 위해 기도는 물론, 물심양면의 지원이 제도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모임은 그 지원을 촉구하고, 결단하기 위해 모인 의미 깊은 모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 우리 교단 신학교에 요청하는 성령의 말씀은 아카데미에서 라마나욧으로 회귀하라 명하십니다. 묵시론적 비전이 소멸된 이 어둠의 시대에 예언이 살아 숨 쉬는 신학교가 되길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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