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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74: 신년 결심을 버리자 -역대하 20장

2009.01.01( 목)

 

 연합뉴스에 "화제의 연구- '신년 결심, 정신 건강에는 나빠'"라는 기사가 올랐다.

 그 내용은 이렇다.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거창한 신년 결심이 오히려 도움보다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 보건단체 마인드는 새해에는 자신이 한 단계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결심과 함께 2009년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지 말라고 충고했다. 마인드는 체중 감량이나 직업에 대한 불안감 같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 신년 결심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년 결심을 세웠다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실패와 무능력의 좌절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마인드는 말했다. 마인드의 폴 파머 사무총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문제나 불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절망, 자기 비하, 미약한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며 "2009년에는 신년 결심을 하는 대신 다가올 해와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권고했다.  마인드는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신년 결심 대신에 2009년에 정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 ▲ 산책, 운동 등을 하며 활동적으로 지낼 것 ▲ 기분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자연과 친하게 지낼 것 ▲ 자극을 받고 자신감을 갖도록 새로운 것을 배울 것 ▲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기쁨을 주는 공동체에 대한 기부ㆍ봉사 활동을 할 것 등을 제안했다.

( 런던=연합뉴스) 김진형 특파원"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있는 것이고, 作心三日(작심삼일)은 우리 張三李四(장삼이사)의 미래태(未來態)이다. 그래서 태반의 사람들이 새해의 결심을 이루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 한 해,  한 해 자기비하로 인한 우울과 절망에 젖어가는 가 보다. 그래서 그런 부정적인 자아를 형성한 삶의 경력이 집적되면서 우린 새해 결심을 다지는 것조차 기피하곤 한다. 그래서 무계획의 계획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위 연합통신이 올린 화제의 연구는 심층적이고, 의미 있는 연구결과라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그 새해의 다짐(또는 염려)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그 내일에 대해 우리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신앙적 태도를 일러 주고 있다.


"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절). -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27:1)."


이 두 구절에 나오는 '내일'에 대한 염려나 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의 새해 결심을 다지는 행위라는 것이 의미 없고, 필요 없는 일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신문 기사다.

기축년(己丑年) 새해 첫날 SBS TV '2008 연기대상'의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은 배우 문근영양이 그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정말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보다 죄송하고 무서운 마음이 더 크다"면서 "앞으로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이 상이 큰 짐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어제의 위대한 성취가 내일의 삶을 위축시킨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받은 '대상'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런 연기자의 삶을 사는데 족쇄가 될 거라는 영리한 고뇌를 그녀는 쏟아 냈다. 한 번 일등은 영원한 일등이어야 하고, 한 번 천사는 영원한 천사여야만 하는 수정할 수 없는 새해의 목표가 그녀의 두려움이란 말이다.


그렇다. 지난 해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갖는 다신 실패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염려나, 위대한 성취를 거둔 이들의 더 잘해야 할 내일에 대한 염려 또한 공히 우리를 불안케 한다. 그래서 노숙자도 자살하지만, 톱스타도 자살하는 것이다. 내일에 대한 염려나 내일에 대한 자랑은 우리 심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염려나 자랑이 의미 없는 한순간의 물거품 같은 것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처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누가복음 12장 19-20절"


그래서 지혜의 잠언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절)"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다짐이라는 것의 무의미와 무용(無用)함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새해의 계획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이 건너야할 종국의 과제는 인간의 계획과 지식, 의지, 추진력으로 달성될 수가 없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의 무기는 그들의 인간적 노하우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의 역사였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출애굽기 14:13-14절."


어디 그뿐인가? 숱한 말씀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말씀하고 있다. 유다 여호사밧 왕 때에 이방나라 연합군의 침략해 들어왔을 때, 여호와의 영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다. 그는 대언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역대하 20장 15, 17절."


그렇다면 오늘 나는 새해에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을 위해, 나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위(無爲)다. 모두(冒頭)에 인용한 글에서도 정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산책 등 자연과 친하게 지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자연(自然)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문장이다. 이 제안을 영적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무위(無爲)는 자연(自然)과 벗 삼는 일이자, 그 자연을 자연 되게 하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 안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위(無爲)는 불교나 도교 안에 변형된 형태로 자리한 신일합일과는 다른 의미로 여기선 사용한다. 내가 여기서 차용한 어감이 좋은 무위(無爲)란, 다시 부연하자면 이런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종교이며, 역사의 현장에서 구원과 해방의 길을 여는 종교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성육신을 통해 나와 자연과 역사 속에 행하시는 창조적, 주권적 개입을 말씀하고 있다. 그 주권적 하나님의 개입에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무위(無爲)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지켜보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이 가만히 서서 그 주권적 개입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분께 가만히 붙어있는 것이다. 붙어 있는 것, 가만히 붙어 있는 것. 지하철을 타고 종로에서 영등포역까지 가는 동안에 내내 그 지하철 천정에 붙어있던 파리를 본 적이 있다. 그 파리가 한 일은 그 지하철 천정 가만히 붙어 있기만 하는 일 뿐이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이 “가만히 서서”하는 일은 이런 일이 아니었을까?


그 5대 무위(無爲)는 이와 같다. 홍해 앞에서 그들은 가만히 서서 이렇게 행했을 것이다.


무위(無爲) 1,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 역대하 20장 20절.


무위(無爲) 2, 가만히 서서 경배 즉 예배하는 일이다. 예배란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일이다. 예배의 부흥이 살림의 부흥이요, 형통의 비결이다. 영적 승리의 비결이다.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역대하 20장 18절.


무위(無爲) 3, 가만히 서서 찬송하는 일이다.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역대하 20:19절.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가는 일이다. 세파에 시달려 온, 산전수전을 다 겪는 신앙인들이 즐겨 부르는 대표적인 찬양은 어떠한가? 인구에 회자하는 저 유명한 복음찬송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제목의 찬송의 가사는 이런 체험적 현실을 낭랑히 읊조리게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찬양인지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도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좁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가신 그 옛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줍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합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소명 이루소서

♫󰁠󰁡


무위(無爲) 4, 가만히 서서 기도하는 삶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에베소서6:18a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1-3절.


무위(無爲) 5, 가만히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부요한 삶이다. 위 화제의 연구는 정신 건강을 위해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기쁨을 주는 공동체에 대한 기부ㆍ봉사 활동을 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눅12:21)"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부요한 삶이란, 자신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마 6:3절)”는 일이다. 경제한파에 오그라들고 있는 우리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린 부익빈 빈익빈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쏟아 내고 있다. 이럴수록 나누고, 나누어 서로 부요한 맘으로 살아가야 한다.


다시 문근영의 이야기를 빌어보자. 그녀는 1일 오전 11시께 자신의 팬카페인 엔젤스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말 어제는 행복한 밤이었다. 앞으로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저 깊은 곳에 넣어두고, 꿈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새로운 시작,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겠다."

이 너무나 행복해서 불안한, 그 두려움을 저 깊은 곳에 넣어두겠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연기에 대한 두려움. 나도 그랬다. 한때 내게 임했던 그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두려워 떨며, 그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 무너져 내렸던 그 비애(悲哀) 말이다. 

연기자의 연기가, 영적 사역자의 영력이 목표(업적)가 되는 순간 득달같이 엄습한 두려움에 우린 무너져 내리고 만다. 새해 결심이 우릴 절망에로 이끈다. 결심하지 마라.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그 목표를 이룰 본질적인 목적, 그 무위(無爲)에 충실하자. 


전쟁 도구를 준비하고, 그 기술을 연마하는 일인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이것은 시시한 일이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임을 믿고, 그분을 경배하고, 내 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무시로 부르짖는 기도에 충실 하는 일이 우리를 일군 삼으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 때 예레미야의 오지병(항아리)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맺었던 언약이 깨졌음을(렘19:11) 선포하셨으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사랑으로 새 언약을 선포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예레미야 31장 31절.


이 새 언약에는 목표가 없다. 새해의 다짐도 없다. 백성들에게 근신하고, 뼈를 깎는 회개를 하라 명하시지도 않으신다. 그냥 그 주권적 회복의 은총만을 쏟아 부어주신다. 그저 우린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된다. 5대 무위(無爲)를 무위(無爲)되게 하라.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 예레미야 33장 6-9절.


본질적인 목적에 몸을 내어 맡기자.

우리가 우리의 계략으로 하나님의 시험과 채찍에 맞서면 맞설수록 그것이 주께 맞서는 악이 되어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렘33:5절)하실 것이다.


새해 결심을 버리자. 그것이 행여 요나처럼 하나님의 낯을 스스로 피하는 계략으로서의 결심이라면, 이 시간 갈가리 찢어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주일도 빼먹고, 헌금도 떼먹고,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 본질적 사명에서의 도피. 내일 염려, 내일 자랑. 다 버리고, 주님만 사랑하는 영혼이 되자. 무위(無爲)의 찬송을 부르자.


♫󰁠󰁡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2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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