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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448: 온전한 헌신을 이루는 순종-동일교회 청년 헌신예배 설교
2009.12.13(주일)

관계의 지평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예루살렘에서 동일까지.
우리는 나로 인하여 한 덩이 사랑공동체가 되리라 확신한다.
연합하는 신앙의 힘.
그 힘이 우리 신앙공동체를 성결케 하고,
이 강토에 하늘의 신령한 복, 땅의 기름진 복으로 충만케 할 것이다.


다음은 동일교회 청년 헌신예배 설교문이다.

온전한 헌신을 이루는 순종
히브리서 13장 17절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7 여러분은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하고, 탄식하면서 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하게 되지 못합니다.(표준 새번역)

는 오늘 청년들에게 막연한 거부감을 주는 단어 ‘순종’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 시대는 탈 권위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우스운 이야기. 할아버지와 목욕하러 목욕탕에 간 어린 손자의 이야깁니다. 할아버지가 뜨거운 탕에 들어가 ‘어이 시원해’하자, 그 말을 듣고 그 욕탕에 풍덩 뛰어든 어린 손자가 후다닥 뛰어 나가면서 ‘어떤 놈이 시원하다고 했어’ 일갈 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내뱉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살아오면서 삶에 있어 제일 가치 있는 단어가 ‘순종’이라는 사실을 새록새록 깨닫습니다. 오늘 청년 헌신예배인데 온전한 헌신을 이루는 비결은 순종에 있다고 난 오늘의 청년들에게 일러 주고 싶습니다.

몇 해 전 저는 군목생활 20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전역하는 후배 목사의 전역 감사 예배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그 예배 중, 마지막 전역하는 목사가 전역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귀한 신앙고백을 우리 앞에서 했습니다. 그가 군목으로 입대하던 시기에 그의 부친 목사께서 에베소서 6장 5절 이하를 일러 주시면서, 그 말씀을 군목생활의 지침을 삼으라고 하셨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에베소서 6장 5-7).

그는 상관이나 평신도인 상급자를 하급자이나 목사인 위치에서 지혜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을 이 말씀에서 찾았다는 겁니다. 그는 목사라는 종교적 직책 보다 군 생활에서 있어 상급자인 신•불신 상관들을 마치 주인을 섬기는 종의 자세로 섬겼다고 합니다.

시대가 험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순종을 촌스럽게 여기게 하고 있습니다. 뒤집고, 들이받는 역행이 영웅 되는 일이라 여기게 합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갈5:7).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진리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잃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우리는 불행한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왜곡된 권위가 권세를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왜곡된 권위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을 절은 이들은 `권위`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만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잘못된 학습의 결과로, 우리는 참된 보호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서마저 도망가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참 진리이신 그분의 영원한 권위 아래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영원하고, 절대적인 보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당당히 그분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 진리에의 순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은 영원한 보호의 길이며, 안식의 길이요,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시대의 자녀인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친 반항의식을 용기 있게 내려놓고, 현명하고 순종의 결단을 우리는 이 시간 말씀 앞에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순종의 사람들이 이룬 신앙의 복된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온전한 헌신을 이룬 순종의 사람. 그 대표적인 사람 중 한 사람이 이삭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

모리아 땅 어느 한 산으로 향한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환과 번제에 쓸 나무만 나귀에 싣고 사흘 길을 걸어 간 두 사람. 단 한 마디 질문.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 때 이삭의 나이를 주경학자들은 13살, 27살, 33살 등으로 추정합니다. 그 나이는 아들 이삭이 그 부친에게 합리적 의문과 시비를 걸 수 있는 성년 된 나이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신앙 행위에 반발하여 얼마든지 달아 날 힘이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생 제물로 결박당하는 무자비한 아버지의 종교적 광기에 선선히 몸을 내 맡깁니다.


그 리더인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께 대한 맹목적인 순종에 말없이 전적으로 순종한 이삭. 그 온전한 헌신적인 이삭의 순종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엡6:3) 복을 얻었습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들을 시험하십니다. 내 생각과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순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내 뜻과 다른 사명을 감당하라고 강권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그런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우리 예수님께서도 그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뜻과 다른 아버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끝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히5:9)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시는 순종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 되게 하셨고,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되셨습니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는 이이인 예수(히12:2a)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이루는 일은 우리가 내 뜻과 다르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비전을 명하는 신앙의 리더에게 순복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영적 리더를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영적 리더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말씀은 반문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그러나 영적 리더에게 순종해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순종이 진리와 연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영적 리더의 그 진리의 말씀 앞에 우린 순종해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 아들을 믿는 믿음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영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그러나 순종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순종은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훈련은 태도입니다. 논산 훈련소 조교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동작 봐라.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그만큼 조교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집중하는 태도가 곧 훈련받는 태도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종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을 훈련소라고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물론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체험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모든 시험과 고통을 친히 당하신 그리스도는 성도를 위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신 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통한 순종을 친히 체험하신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자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의 성패는 그 훈련에 임하는 이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은 태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종 학습에 있어 기본 되는 것은 그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을 이렇게 쏟아 냈습니다.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 하였음이니라 /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예레미야 22:20-21).

우리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말 안 듣는 습관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변화되기 전의 사울이었던 시기의 바울처럼 우리는 가시채를 뒷발질(행26:14)하는, 들이 받는 영적 반동적 습관이 있습니다.

『순종』의 저자 존 비비어는 그의 간증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에게는 담임 목사 직속 직원으로 3년 반을 근무하던 시절, 근 6개월간 그 설교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늘 불평불만만 그런 류의 사람들과 나누다가 어느 한 날 골방기도를 하던 중 성령의 터치를 받습니다.


“문제는 네 목사가 아니다. 너한테 있다.” 그리고 이내 성령께서 이사야서 1:19절 말씀을 회상케 하셨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아들아, 네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 “주님 저는 순종하고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가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라고 했다. 즐겨 순종하는 것은 곧 네 태도인데 지금 네 태도는 불손하다! 네 태도를 고치고 회개하라. 그때부터 공급이 올 것이다.”그 순간 나는 그 기도 골방에서 당장 회개했다. 다음 주 일요일 아침, 같은 교회에 나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목사에게, 같은 시리즈 설교를 들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내게 천국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울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내 태도 하나 때문에 꼬박 6개월간 너무 큰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훈련이 마음가짐, 태도입니다. 순종은 훈련이라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앞좌석에 앉아라. 그냥 의미 없는 말이 아닙니다. 교목이었던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이 맡은 반의 학업성적이 항상 그 어떤 반보다도 앞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였답니다. -그 비법은 좌석 바꾸기에 있었습니다. 키와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학생들의 좌석을 앞뒤로 교대해서 앉혔다고 합니다. 앞좌석은 금좌석입니다. 그 자리는 태도를 바르게 합니다. 그 자리 바꾸기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순종은 고난이라는 훈련을 통해 습득합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편 66-67).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예레미야 22:22-23).

저는 청년시절 몸이 많이 아팠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엘 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귀에 의사의 조언이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의사 선생님의 그 권위를 불신했고, 하여 그 지침에 불복종했었습니다. 하여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난 초기, 그분의 권면을 무시한 결과 젊은 시절 병마와 싸우는 어려운 시절을 장기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그 지방 소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대를 이은 의사였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나는 그분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병든 사람은 불신의 병이 든 사람입니다. 그 누구말도 듣지 않습니다. 명의조차도 불신합니다. 그 불신이 나에게 큰 고난을 주었습니다.

교수-학습 방법론 중에 시행착오학습이 있습니다. 바른 해결 방법을 일러 주지 않고, 그냥 먼저 한 번 해보게 하는 학습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청년들에게 고리타분한 순종을 말하는 이유는, 그 시행착오를 줄이는 헌신자가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나그네의 삶은 그 시간은 짧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효율적으로 그 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순종만이 그 효율을 극대화해 줄 수 있습니다. 순종은 시행착오를, 실패를 줄입니다. 젊어서 자기 이름을 높이고, 인생의 기반을 닦은 청년들은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기독 청년이 신지애라는 골펍니다.



'지존' 신지애(20ㆍ하이마트)의 샷은 이미 세계 정상급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260야드를 넘나드는 장거리포가 일품이고, 여기에 '컴퓨터 아이언 샷'까지 장착했다. 실제 신지애의 260야드에 육박하는 평균 드라이브 샷 비거리는 미국 무대에서도 10위권이고, 아이언 샷의 그린적중률은 무려 80%를 넘어 '넘버 1'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를 능가할 정도다. 그린에서는 더욱 강력하다. 라운드 당 평균 퍼팅수가 27.5개에 불과하다.


이 모든 샷의 출발점이 '강력한 멘탈'이다. 어려운 환경이 신지애의 정신력을 단련시켜 끝없는 연습에 몰두하게 만들었고, 연초부터 남아공에서 시작해 한국과 일본, 호주, 미국, 영국 등 전세계를 일주하면서도 무려 10승이라는 엄청난 수확을 일궈내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근간이 됐다.



이상과 같이 그 작은 청년의 성공담을 정리한 어느 기자는 ‘신지애의 힘은 '강력한 멘탈과 끝없는 연습'’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린 그녀의 힘은 그 아버지에 대한 순종에서 우러른 힘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기술은 끝없는 연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신지애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선수들이 연습하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여유가 없어 체력훈련은 20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체를 단련하는 것으로 대신했답니다. 손목을 강화하고 허리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야구배트가 부러져 나갈 정도로 타이어를 때리는 연습도 병행했다고 합니다. 누가 그 훈련 감독이었습니까? 그녀의 아버지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훈계를 군말없이 순종함으로 받아들여 연습에 연습을 더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오늘의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최근 기사에 보면 ‘골프지존’ 그녀의 여동생도 서울대에 수시합격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 내용 중 눈에 띄는 문장은, “지원양은 ‘언니가 격려를 해줄 때마다 자랑스러운 언니처럼 뭔가를 해내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는 부분입니다. 아버지에게 순복한 신지애 선수처럼, 그녀의 동생도 그녀에게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순종이 순종을 낳고, 그 연이은 순종이 한 가정의 복락을 일구어 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젊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시기도 잠간입니다. 전도서 12:1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여기의 “곤고한 날”은 ‘에메 하라아’(הערה ימי)로서 원어상 “악한 날들”(the evil days)을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인생의 노년에 맞게 될 “쇠약한(괴로운, 역경의)날들”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시 39:5).”

그 곤고한 날이 오기 전에, 우리들은 이 청년의 때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루는 지름길인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그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자는 그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도서 11:9-10).”

권위에 복종하라.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우리 청년들은 무엇보다도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위임하신 이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위에 권위를 두시고, 그 권위를 통해 우리에게 형통의 길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 칭찬받은 사람 중 그 대표적인 인물은 백부장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권위의 가치와 힘을 이해했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께 나왔다가, 그 집으로 가서 그 병자를 고쳐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마8:9).”라고 답한다. 백부장은 예수께서 자기 집까지 오시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치유를 명하시면, 그 권위가 부리는 권능이 저 먼데 자기 집 하인에게 즉시 미치리라고 그는 확신한 것입니다. 권위 체계와 권위의 권세와 권능을 그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8:9-10).”


그렇습니다. 우리는권위에 복종하는 만큼 그 권위(세)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 참 권위에 순종하면 우리는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의 권세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순종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믿음도 커집니진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커질수록 순종도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의 그분을 믿음이 뽕나무의 순종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순종이 우리의 구원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해 놨습니다.

여러분은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하고, 탄식하면서 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하게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지도자가 얼마나 놀라운 권세요, 권위를 지닌 분입니까?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비전을 그 한분 지도자 안에 두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교사를 통해, 영적 지도자이신 목회자를 통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대는 분리하고, 분열하는 일에 능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분열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Division입니다. 여기 'di'라는 접두사는 '둘'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분열이란 '비전이 두 개'(di-vision)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이 분열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전이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지도자를 통해 하나님이 전하신 권위의 말씀과 내 뜻이 충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 권위에 접할 때마다 성격, 성별, 나이를 넘어서 직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 사람들 위에 있기 때문에 인간 권위에 순종합니다. 그 사람 성격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이 그런 직분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를 경외하고 존중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어제 제 집 사람이 대전에서 거행된 친구 권사 아들 결혼식엘 갔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미나고, 감동적이 결혼 비화를 전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부모님과 첫 만남에서 이런 말을 불쑥 내뱉었다고 합니다. “응답 받았습니다.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 그 부모들은 그 말에 말문이 딱 막혔노라고 친구들에게 털어 놓았답니다. ‘응답 받았다는 데, 그분께 응답받았다는 데, 할 말이 없더라’고 그 친구 권사가 털어 놓으며, 그 불가항력적 은혜를 전했다는 겁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부모 되는 장로-권사님의 신앙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었고, 하여 그 하나님의 응답 앞에 두말 하지 않고 순응한 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들 부부의 하나님 경외를 경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를 경외하고 존중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복종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대는 듣기는 들어도 행치 않는 세대(겔33:32)입니다.

『순종』의 저자 존 비비어의 말입니다.

“같은 사역자가 아프리카에 가면 맹인이 눈뜨고, 걷지 못하던 이가 일어나 걷고, 듣지 못하던 이가 듣는 기적이 나타나는데, 미국에 오면 두통이나 요통의 치유밖에 나타나지 않는 까닭이 그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외모나 포장에 상관없이 모든 사역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영접한다. 그렇게 영접하고 공경하기에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의 복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포장이 그럴듯하지 않으면 공경도 하지 않는다. 겉포장과 공경이 비례 관계다. 사역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영접하고 공경하는 만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에게 받게 된다. 우습게 여기면 그렇게 받는다. 극진히 공경하면 당신에게도 공경이 돌아온다.”

그래서 결론은 이 한마디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개척목회로 오늘의 이 부흥을 이룬 동일교회의 신자가 되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심령부흥의 기수이신 안막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모신 축복을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내 교회 내 목자를 소중히 여기고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복하는 것이 바로 온전한 헌신임을 반드시 기억하여, 실천하는 영혼들 되길 바랍니다. 삶과 신앙 모든 영역에서 목사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헌신을 드리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순종함으로 레갑 자손들처럼 대를 이어 복을 받는 교회와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예고한 모든 재앙을 그대로 내리겠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해도 그들이 듣지 않고, 내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렘 35:14, 17).

성경은 순종함으로 받을 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신명기 28장 1-14 절입니다.
말씀을 펴고, 다 같이 큰소리로 받들어 읽어 봅시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이 말씀이 청년들의 인생 요절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동일 교회에 주의 권능의 날이 임하길 소원합니까?

주의 권능의 날이란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날입니다.순수하고, 맑은 영롱한 이슬같은 청년들의 순종으로 이루는 온전한 헌신이 넘치는 교회에 주의 권능의 날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이 시간 온전한 헌신으로 이루는 순종으로 충만한 동일교회를 기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당부입니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빌레몬 1:21).


주여 크신 은혜로써 부름 듣게 하시고
복종하는 맘을 주사 따라 가게 하소서 ♫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2-2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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