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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277: 그 힘찬 능력으로-힘찬 교회 설립 예배설교
2009.04.26(주일)

모든 영광 하나님께!
그러나 나는 오늘 이런 우리의 입에 발린 구호가 한낱 가식적 수사에 불과함을 새삼 체험했다. 하나님은, 그 강단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은, 실로 엄격하셨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그 거룩한 단에서 그분께 올릴 영광을 대신 받는 재앙을 극적으로 피하게 하셨다.

예배가 시작되고, 내가 설교를 하러 나서던 순간, 사회를 맡은 문 목사님께서 나를 명설교자라고 한껏 치켜세우셨다. 난 순간 부담스럽고, 황당하고, 하나님께 너무도 송구스러웠다. 이사야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뜻밖의 공습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거룩한 예배에서,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할 설교에 대해, 그것도 설교 직전에 그런 분에 넘치는 우호적 발언은 결코 온당치 못했다.

난 순간 그런 황당하고, 흥분된 심사로 강단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문 목사님의 저 발언은 사족입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무마하고 설교를 시작했는데, 몇 줄 진행되지 않은 모두에 난 그만 첫 페이지 원고를 놓치곤 두 번째 페이지에 기록된, 설교 원고 중간 부분을 의식없이 읽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줄을 읽다가 난 아차 싶었다. 나는 설교의 서론 부분을 놓치고, 곧 바로 본론에 진입해버렸기에, 설교가 뒤죽박죽되어 버린 것이다. 연신 버벅거리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난 당황해 했다. 그리곤 그대로 밀고 나가기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퇴양란. 바로 그 자체였다. 난 순간 실로 엄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체험했다. 그게 아니라고 부인하는 손짓을 했어도, 난 명설교가라는 사회자의 칭송을 난 나도 모르게 은밀하게 즐기고 있었던가 보다.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참람함이었다. 순간 나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대신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흥분했나 봅니다. 설교를 인천 상륙 작전하듯, 지금 설교 원고 중간부분으로 나도 모르게 치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설교를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중들은 웃었고, 난 물 한잔을 천천히 들이 킨 다음 설교원고 첫머리로 돌아가 말씀을 전했다. 약 15분여 설교를 했는데 진땀이 났고, 다리가 후둘 후둘 떨렸다. 정말 살 떨리는 순간, 순간이었다.

“오 놀라우신 하나님의 그 엄격하심.”

하나님께서는 이런 실수를 통해 나를 책망하시는 은총으로 날 바르게 붙잡아 주셨다. 돌이켜보니까 감사한 사건이었지만, 그 거룩한 강단에서의 오가도 못한 황당함이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되는 것은, 그 진퇴양란의 순간에 내가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사죄를 표한 일을 회중들이 겸손한(?) 용기라고 이해해 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위로의 말도 사실은 심히 불경한 말이라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사실 내가 그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내게 그 용기로 비친 행위를 하도록 강제하신 분이 거룩한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마치 악랄한 발람의 행로를 가로막아 선 칼 든 여호와의 사자를 발견한 발람의 나귀처럼(민수기22장 21-35절) 내 영은 내 교만을 막아선 성령의 칼 앞에서 오가도 못하고 절절 맸던 것이다.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든 내 참람함을 주의 사자가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자의 과분한 나를 향한 찬사와 내심 그 찬사를 즐긴 나는, 마치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2-17절)고 노를 발하신 그 책망의 대상, 현대판 버가모 교회였다.

여기서 말하는 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이 발락왕의 부탁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시도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심으로, 발람은 하나의 꾀를 냈다. 즉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락 왕에게 가르쳐 준 것을 말한다. 그것은 모압 여자들로 이스라엘 청년들을 유혹케 하므로 음행과 우상 숭배를 하도록 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버가모교회에 적용시킨 발람의 교훈이다 (민25:1-5).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2:14절).”

오늘 우린 사회자와 설교자로서,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영광을 갈취할 뻔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께선 그 음모를 막아 주셨고, 주의 영광을 가로채는 재앙을 막아 주셨다.

오늘 그 참담했던, 그러나 극적으로 주께서 수습해 주셨던 심비에 새길 황당무개한 설교사건의 설교문을 여기 정리해 본다.

 
힘찬 교회 설립예배   2009.04.26(주일)


그 힘찬 능력으로

에베소서 6:10-13절
악마와 싸우는 싸움

10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12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한 날에 능히 대항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한 뒤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오늘 설립되는 힘찬 교회는 우리 서울중앙지방회 동부지역 최전선에 위치합니다. 
성령께서 동부 최전선의 지킴이로 힘찬 교회를 설립하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교회이름이 힘찬 교횐데, 개척자인 임태석 전도사님도 0.1톤이나 나가는 힘찬 사나이입니다.

개역판이나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6장 10절에 나오는 ‘그 힘의 능력’이라는 구절이,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그 힘찬 능력으로’ 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 힘의 능력이 힘찬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후자가 더 잘 번역된 것 같습니다. 힘찬 교회에서 오늘 이 본문이 말하는 ‘그 힘찬 능력으로,’를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힘찬 능력으로’ -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힘찬 교회, 힘찬 목회자에게 그 힘찬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성령께서 촉구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힘찬 교회가 위치한 자리가 최전선이고, 힘찬 교회가 설립되는 이 시점이 끝으로, 라는 화두처럼 종말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역성경의 '종말로' 라는 번역보다 개역개정판의 '끝으로(finally)'라는 번역이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다시 정리하자면’이라는 의미로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글 전체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단어입니다. 물론 '끝으로(finally)'라는 말이 정확한 번역이지만, 저는 늘 현재적 종말의식 속에 살아가야하는 삶이 우리 성도들의 삶이기에, 우린 이 ‘끝으로’ 라는 말을 ‘종말로’ 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복음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개역성경의 ‘종말로’라는 단어에 문자적으로 주목합니다.

그리고 힘찬 교회가 공간적이나 지리적으로 최전선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론 바로 이곳이 동부 최전선입니다. 힘찬 교회는 영적 최전선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구속사적 시간으로도 종말의 시대에 설립되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설립한다는 말은 악한 영의 세계에 성령의 깃발을 꽂는다는 말입니다. 최전선, 종말 이런 사탄의 역사가 극에 달한 시기에 그 사탄과 정면대치하고 있는 영적 최전선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름이 그 사명을 밝히는 것이라면, 힘찬 교회는 악마와 싸우는 싸움에 나서는 그 힘찬 교회라는 사명을, 그 교회명이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말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세상은 종말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마지막 붙잡고 있던 절대자도 상대화되고, 거룩한 중심도 해체당하고 있습니다. 절망이 도처에 들꽃처럼 천방지축으로 피어나는, 절망이 만성화된 종말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능력이 없는 세대를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
이는 히스기야의 탄식입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앗수르의 18만 5천 군사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살 길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위기, 민족 멸절의 위기에서 히스기야는 그렇게  탄식했습니다.

이런 해산할 힘도 없는 성도들의 탄식이 지금 이 산천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영혼들의 구원사역에 힘찬 교회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힘찬 교회, 힘찬 목회자가 힘찬 역사를 이루려면, 그 힘찬 능력으로 강건하여져야 합니다.
명목상의, 이름만 무늬만 힘찬 교회가 아니라, 그 힘찬 능력으로 구호가 아닌 실천이, 깃발이 아닌 능력의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
주안에서와 그 힘찬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주안에서-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전현석 목사님은 그 어느 원로목사 취임식에서 목사란 “교회 안에 있으나 교회 밖에 있는 자”라는 명언을 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목회자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참 지혜로운 태도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항상 설혹 교회 밖에 있을지라도 주 안에 거하며, 주 안에서 행하는 자에 되어야 합니다. 힘찬 교회는 GOP(
일반 전초[前哨]),General Outpost).이고, 그 목회자는 그 GOP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의 임무는 ‘정위치 지킴’입니다. 
목회자의 정위치는 ‘주 안에서’입니다.


바울의 ‘엔 크리스토스(주 안에서-in the Lord))’ -는 바른 위치를 가리킵니다.
희랍어로 '엔 크리스토스'란 이 말을 그의 서신서에서 무려 196회나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신학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그의 삶과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의 가치관과 안목과 관심사가 변화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매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교회가 목회자가 성도가 엔 크리스토스, 예수 안에 정위치하고 있으면, 새론 존재가 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4,7절).”

부디 힘찬 교회가 예수 안에 정위치하여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응답받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 힘찬 능력으로(in his mighty power)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힘찬 교회의 힘의 배경은 0.1톤의 임태석이 아닙니다. 그 대단한 인간관계망이 아닙니다. 목회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 가면서 더 더욱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얻어가는 사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의 배경(back ground)는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 13)”는 말씀에서 보듯,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3:6-7절)”는 말씀처럼, 그 힘찬 능력은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서 오는 능력입니다.

강건하여지고(be strong, be ye empowered) 라는 말은,

“안 혹은……로 부터”라는 전치사와 능력 혹은 권능(두나미스)라는 명사의 복합어로 “능력을 주다.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입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너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능력을 받아 지금 강건하라”는 말입니다. 수동태며, 현재형입니다. 그 능력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아 항상 강건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찬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려는 힘찬 교회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3절 이하에서, 사도바울은 악마와 싸워야하는 에베소교회에게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영적 장비를 세세하게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기도로 견고히 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다양한 영적 장비는,
한마디로 ‘기도와 말씀사역’입니다. 이 일에 전무(행6:4절)하라는 말입니다.

기도에 전념하는 힘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18만 5천명의 앗수르의 대군 앞에서 히스기야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 절체절명의 위기와 좌절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구원과 생명의 주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생명을 건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 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사 37:20절).” 오직 여호와께 구하는 절대기도로 그는 절망과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던 그의 민족을 구해냈습니다.

존 번연을 말했습니다.
"기도는 내 영혼의 방패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요, 기도는 사탄을 향해 휘두르는 채찍이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1-3절.  아 멘.


말씀사역에 전념하는 목회자가 되길 바랍니다.

단 7명으로 지하교회에서 시작해서 오늘 개척 26주년 만에 전주를 접수한 전주바울교회 원팔연 목사님은 오늘의 전주바울교회는 예배에 생명을 건, 자신의 말씀 사역에 전념한 열매다고 말합니다. 고 이중표목사님께서도 말씀에 생명을 건 목회가 그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박조준 목사님의 설교 노트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설교노트에는 인쇄한 듯 정서된 원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설교 준비하는 시간 말고, 준비된 한편의 설교를 설교 노트에 옮겨 적는대만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떡집입니다. 떡(말씀)이 맛있어야 떡집(말씀의 집)엔 사람이 찾아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떡을 가지고 축사하실 때에, 바로 순간 저희 눈이 밝아져 그 동행하던 분이 부활의 주님이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4:30-31). 말씀의 떡을 떼고 감사기도를 올리는 순간 그들의 영안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절).” 할렐루야!

우리는 말씀의 떡을 나눔에 있어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나누지 말고,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핵심 진리를 놓치지 않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말씀 연구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영양소가 골고루 깃든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살찌고, 교회가 흥왕하여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 하더라”(행전12:24).”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을 그 기도와 말씀이 성령 인도하심 안에서 행해지는 사역이여야 합니다. 성령과 기도와 말씀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을 -
이런 교차적 방식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말씀을 말씀되게하는, 기도를 응답되게하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 항상 그 힘찬 능력으로 강건하여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힘찬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모든 무기력, 좌절, 절망, 낙담, 부정적인 영적 심사를 전부 다 저 무저갱으로 날려버릴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힘입은 성령의 강력한 바람이 시대의 어둠에 질식 당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혼들에게 그 힘찬 능력을 충만하게 공급하는 힘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에스겔의 환상입니다.
저는 힘찬 교회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다가 에스겔의 환상이 심령에 떠올랐습니다.
에스겔서 47장입니다.
그 말씀에는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모든 죽은 것, 죽어가는 것을 소생시키는 기적이 연출됩니다. 그런데 그 생명수가 성전 앞문, 즉 동편으로 난 문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동편 문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에스겔의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 허리에 차오르고, 헤엄쳐 건너야 할 만한 강을 이룹니다. 그 물로 죽은 바다가 살아납니다.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물들이 소생하고, 번성합니다. 오늘 설립되는 힘찬 교회는 동편으로 머리한 교회입니다. 이 에스겔의 환상이 바로 힘찬 교회에 성령께서 주시는 비전과 약속입니다.

최전선은 GOP는 항상 깨어 있는 곳입니다.
이후, 동쪽 최전선 힘찬 교회에서,
동부전선 이상 없다,
는 보고만 우리 모두에게 전하길 바랍니다.
힘찬 교회가 참된 영적 파수꾼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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