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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386: 영화의 면류관 - 약수동교회 조윤희 원로장로 추대예식 설교
2009.09.20(주일)

오늘 추대예식에서 조윤희 장로님의 큰 아들 조용식 목사(히브리대학 구약학 박사 ; 명지대 교수)는 오늘의 자랑스런 아버지 조윤희 원로장로님을 넓은 가슴으로 키워 준, 박동일 원로 목사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했다. 지금 루 게릭 병으로 극심한 고난에 처해 있는 박동일 원로 목사님께 대한 감사와 안타까움에 분위기가 한순간에 숙연해졌다. 특히 조윤희 원로 장로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닦아 내셨다.

그래 과연 나에게는 가슴으로 키운 신자가 얼마나 있는가?

오늘 설교 문이다.

영화의 면류관

잠언 16장 31절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딤후 4장 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집안에서 건강한 자손을 보려면 삼대가 잘 먹어야 하고, 한 집안에서 학자를 배출하려면 손자가 할아버지 책에 똥을 누면서 자라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로마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로를 세울 수 있는 교회란 교회다운 교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시며 그 신앙의 대를 이은 역사를 통해 믿음의 전통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과정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믿음의 전통을 이어 갈 일꾼들을 세워 오셨습니다.

개신교회는 말씀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들고, 이룬 역사가 창출해 낸 전통 또한 말씀만큼 소중합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말씀과 전통을 교회를 받드는 두 기둥 삼고 있습니다. 사상누각이란 말도 있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역사나 전통과는 무관한 집입니다.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집이요, 존재하나 존재할 수 없는 집입니다. 존재 자체가 없는 집입니다. (마 7:26-27)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은혜는, 바로 그 반석위에 세운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위에 세운 집이기 때문입니다.(마 7: 24-25)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과 전통을 그 존립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약수동교회 또한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믿음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교회입니다. 하여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 전통을 세워나갈 은혜를 다시 한 번 더 허락하셨습니다. 그 은혜란 원로를 세우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원로를 세우는 은혜란 젊은 시무장로를 장립하는 은혜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 하므로 꽃이 찬란하게 피고 열매가 많습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아니 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원로를 세우는 이 은혜는 약수동교회가 뿌리 깊은 나무됨 이라는 선포요, 원천 깊은 샘이라는 선언입니다. 하여 오늘 이 원로장로 추대식은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의 기쁨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지방회의 기쁨입니다. 저는 우리 서울중앙지방회의 자랑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를 모신 지방회의 100년 전통에서 우러른 안정과 지혜 그리고 번영을 우리 서울중앙지방회가 누리고 있습니다.또한 원로장로추대식은 추대 받은 분의 개인적 영광이기도 합니다.

백발로 상징되는 원로를 오늘 말씀은 영화의 면류관을 얻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의 면류관이 문자적으로 머리 흰, 모든 백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화의 면류관은 의의 길에 서서 주께 온전히 순명하며 평생을 살아 낸 이들만이, 그 백발에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은 부연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1절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그러므로 영화의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사도바울 선생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렇게 자신이 받을 의의 면류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의의 면류간이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 제국에 의해 2차로 투옥되어 순교하기 직전인 A.D 66년 경에 로마 감옥에서 저술한 책입니다. 그 서신의 마지막장에 그는 유언으로서 이 같은 자기 확신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확신을 가능케 하는 사도 바울의 신앙의 여정과 고백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바울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일생 동안 그가 받은 고난에 대해 고린도후서 1장 8-9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 만큼 혹독했던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바울은 죽음을 무릎 쓴 예루살렘 행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행한 고별 설교 중에 나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또한 바울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는 가이샤라 사람들에게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 21:13)”

그렇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그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핍박과 환란과 순교의 장소를 자원하여 찾아간 신앙의 용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예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말합니다. 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은 싸워왔고 승리했다. 하여 나는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의의 면류관은 나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고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 이후, 그 믿음의 사람들은 그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선한 싸움을 싸워왔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그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성도들의 순교의 피로 큰 번영을 이룩했습니다.

역사적인 믿음의 선진의 반열에 오르는 조윤희 원로장로님의 신앙의 분투도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그 의의 면류관의 한 주인인 조윤희 장로님의 원로장로 추대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우린 믿습니다. 조장로님의 예수 안에서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오늘의 영광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오늘 예배 전, 당신의 큰 아들 조용식 목사에 대한 오래 전의 기억을 이만신 목사님께서는 복원해 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조용식 목사가 초등학생이던 35년 전, 이만신 목사님께서 강사로 모시고 집회를 열었던 부흥성회에서 어린 조용식이 참석했었답니다. 그런데 그 성회 헌금 약정 시간에 조용식 어린이가 100만원 헌금을 손을 번쩍 들며 약속하더라는 겁니다. 강사 이 목사님이 너무 놀라 어린 네가 어떻게 헌금하려고 하느냐 반신반의하던 순간 그 아버지 조윤희 성도가 내가 낼 거라고 나섰다고 합니다. 아들은 믿음의 아버지를 믿었고, 그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대를 이러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온 것입니다. 조 장로님은 자신은 원하지 않았으나 두 아들 다 목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 하셨습니다.오늘 우리는 그 예비 된 영화의 면류관 즉 의의 면류관을 얻을 소망에 찬 원로장로추대예배에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짐합니다. 나도 주의 나타나심을 소망의 인내로 앙망하여 그 영화로운 자리에 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면류관은 한 개인, 사도 바울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원로장로님으로 추대되시는 조윤희 장로님만을 위한 면류관이 아닙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믿음의 선진들처럼 우리도 쉼 없는 믿음의 경주를 경주해 나가면 우리 모두도 영화의 면류관, 소망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이 예수를 바라보”(히12:1-2a)는 신앙의 일관성을 주안에서 유지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b)." 아멘!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완성이 아닙니다. 그림자일 뿐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아직 완성이 아니기에 원로추대란 새로운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마침 오늘은 교회력으로 티쉬리 1 일 창조절입니다. 새해 첫날입니다. 그리고 은퇴라는 말은 리(re)-타이어(tire),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말입니다. 새 출발을 위해 타이어를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다는 말입니다. 다음 시편의 고백이 원로 조윤희 장로님의 새 결단이 되리라 믿습니다.

시편 71편입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대사를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14-15, 17-19).

이후, 그 영광의 날까지, 더더욱 주를 소망 중에 찬송하며, 주의 의와 구원을 선포하여,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영육간의 건강이 차고 넘치시실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이런 한마디 고백이 이 영광스런 원로 장로 추대 예배의 대미를 장식하길 소망합니다.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대사를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시 71:19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a)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116:12).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우리, 중생에서 성화로, 성화에서 영화로 나아가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근신하고 절제함으로 끝내 구원을 이뤄, 영화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2: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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