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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기 터키 성지순례기(4)-에베소에서

2008.04.10 01:09

윤사무엘 조회 수:3762 추천:55

엿새 째날 (3월 30일, 주일, 쾌청한 날씨, 섭씨 10-20도)  에베소에서 어제밤 잘 쉬었다.

 

오늘은 주일날이다. 이곳에는 여름시간이 시작되어 오늘새벽부터 미동부 시간보다 6시간 앞선다. 기상하여 개인 묵상시간을 가진 후, 조반을 들고 바로 우리는 Conference Room 에 모여 주일예배를 시작 한다. 정목사님께서 찬양을 인도하셨고, 이목사님의 집례로 예배가 시작되어, 박목사님의 기도, 심목사님의 말씀 (계 2:8-11)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고 유목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니 9시 45분이었다. 에베소지역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니, 그 옛날 두란노 서원시절과 에베소 교회 시절을 피부로 느꼈다. 숙소에서 에베소(Efes, '인내‘라는 뜻)의 고고학 발굴터까지는 15km여서 15분 정도 걸렸다. 어제 다치신 두 권사님들 모두 천천히 따라 오시겠다며 동행하게 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고대도시 셀츄크(Selcuk) 옆에 자리 잡은 에베소는 에게해로부터 6km, 이스탄불에서 680km에 위치한다. 두 산 사이에 형성된 고대 도시인 에베소는 유적이 가장 많이 보전되어 있고 그 규모가 가장 크다. 그래서 소아시아 7교회 중 대표적인 교회이면서, 바울의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지(두란노 서원)이며, 사도 요한의 목회지요, 마리아의 무덤이 있던 곳, 그리고 누가의 무덤이 있어서 터키 성지순례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된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누가의 묘라고 추정되는 곳에 들러 설명을 들었다. 누가는 아버지가 노예였으나 정직하고 모범적이어서 해방을 받았다.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성장하면서 바울을 만나 평생 바울의 주치의, 역사기록가, 동역자의 역할을 하였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에베소 고고학 유적지에 들어서서 먼저 에베소의 역사를 살피고, 유적 하나 하나(신전, 황제 기념 아치, 수로, 공중목욕탕, 도서실, 홍동가, 공중 화장실-남자 전용, 야외극장 등) 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배경을 들었다.

 

특히 25,000명(한때는 32,000명 수용)이 수용하며 잘 복원된 야외극장에서 469장(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4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102장(주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40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합창하였다. 모여든 관광객 수백명이 박수를 치며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광경도 감격스러웠다. 오늘도 날씨는 너무 좋았다.

 

사도요한 교회 방문하기 전에 한국 식당에 들러 한식으로 점심을 하였다 (된장국, 갈치 찌게, 닭조림 등). 식사 후 요한 교회와 아데미 신전터를 방문하고 나니 오후 4시경 에베소 모든 유적지 현장 교육 프로그램이 마쳐졌다. 비교적 여유있게 에베소를 보았다.

 

우리는 가죽 공장과 가죽 옷 판매점에 들렀다. 여기서 Fashion show를 보았는데, 양가죽 잠바가 안팎으로 바꿔 입는 등 (사실 나는 처음 패션쇼를 본다) 신기했다. 그런데 쇼 도중 Fashion model 이 우리 일행 중 남녀 각 2명을 데리고 무대 뒤로 가는 것이다. 여기에 나도 포함된 것이다. 난생 처음 패션 쇼를 구경하는데, 갑자기 지목되어 무대 뒤로 끌려간 것이다. 까만 가죽 잠바를 입히고 무대에 나가게 하는데, 매우 부끄러웠다. 어떻게 할 줄도 몰랐다. 아가씨가 내 손을 잡고 나와 무대 춤을 추게 한다. 또 박종연 집사님과 짝을 만들어 나가게 한다. 박종만 장로님은 핑크색 가발을 쓰고 나와 자연스럽게 패션춤을 추신다. 하여튼 우리 모두를 즐겁게 했다.

 

오늘은 주일 오후라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내일 밧모섬으로 갈 준비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배를 타야 한다. 그래야 배멀미를 줄일 수 있다. 다시 Kusadasi Hotel로 돌아왔다. 늦게 까지 인터넷으로 여행 일정을 올리려고 타이핑을 해서 올렸으나 내 홈피에 들어가지 않아 1시간 반 헛고생을 하고 말았다. 참으로 힘이 빠졌다.

 

① 에베소 역사와 개요: 주전 11세기 경 이오니안에 의해 지배되어 그때부터 희랍의 잡신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로부터 승리한 후 이 도시를 점령한 적도 있었다. 그의 후계자 리시마코스가 아내 알시노에를 위해 성벽을 쌓고 재건한 도시가 바로 에베소였다. 리시마코스가 멸망한 후 잠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통치에 들어갔다가 후에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제우스신의 딸인 아르테미스(아데미= 다이애나)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이 여신을 위해 그들은 일찍이 신전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한 정신병자가 주전(BC) 356년 이 신전을 방화하여 불타버리고 말았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방화범이 자기 신전을 불태우는 것도 막지 못할 만큼 무력하단 말인가 ?’라는 회의가 들었다. 여기에 대하여 에베소 현인들은 대답하기를 ‘아르테미스 여신은 바로 그때 출타 중이었다.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탄생한 알렉산더를 축하하기 위해서 그곳에 간 것이다’고 변명한다.

 

알렉산더 대왕도 에베소를 방문했다. 재건을 약속하니 자존심이 강한 에베소 현인들은 대답하기를 ‘대왕이시여,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신이 다른 신을 위해서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사양하고 에베소 사람들의 힘으로 신전을 재건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크고 웅대한 신전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신전이 완성되었다. 전면의 폭이 70m, 길이가 130m, 높이가 20 m나 되는 거대한 규모였다. 파르테논 신전의 4배나 되는 이 건물의 둘레에는 127개의 이오니아 양식 석주(석주)가 둘러서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현재는 하나의 기둥만 복원되어 서 있고 박물관에 아데미 신상이 있다(유방이 48개, 황소의 고환처럼 생김) 폭이 21m되는 대리석으로 포장된 대로가 있다. 길 양편에는 화려한 고린도 양식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550m에 이르는 이 길은 에베소의 야외 원형극장으로 이어진다. 3단 형태의 구조로 각 단은 22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거대한 반원형 로마식 야외극장이다.

 

이 극장의 오른편에는 시장구역인 Agora가 있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00m 이상 되는 정방형 석조 구조물로 된 시장지역이다.  국제적인 상업도시 모습을 잘 보여준다. 화려하고 부요한 대도시,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였다. 아고라의 동북 편에 도서관이 있다. 일찍 에베소에서 활동했던 희랍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와 헬라클레이토스의 학문 전통을 이어오는 곳으로, 로마 제국 내의 최대 도서관 중의 하나이다.

 

② 두란노 서원 근처로 추정되는 도서실 광장 에베소 하면 대표적인 것이 도서관 유적(Library of Celsus)이다. 대부분 에베소 소개책자의 표지를 장식한다. 주후 117년경 Tiberius Julius Celsus의 상속자(heir)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으로 파피루스 서적(papyrus scrolls) 12000권을 소장했다. 당시 최대의 도서관이었다. 입구에 4개의 조각이 있는데, Eunoia (선의, Goodwill), Arete (탁월, Excellence), Sophia (지혜, Wisdom), Episteme (지식, Knowledge)로 새겨져 있다. 당시 학문이 지향하는 내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바울이 2년 반 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에베소 사역을 한 두란노 서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두란노(Tyrannus)라는 관원이 자기의 사무실을 낮 오침 시간(정오부터 오후 3시 사이)에 빌려 주어서 거기서 제자를 양성하며(신학교), 신학교육(평신도 훈련원)을 경영했다고 한다. 도서관이 대개 광장 주변에 지어진 것으로 감안한다면 훗날 건립된 도서관의 주변이 아니었을까 하며 이 도서관 주변에 있는 어느 사무실로 추정한다.

 

50년대 바울은 복음을 들고 두 번에 걸쳐 에베소를 찾아갔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아가야 지방에서 곧장 이곳으로 와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남겨 두고 속히 이곳에 올 것을 약속하고 잠시 체류했으며, 3차 전도여행시 이곳에서 3개월을 머물면서 12제자를 양육했다. 이들의 만류로 2년을 더 지내면서 사역을 하였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복음을 전했으나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방해로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적인 도움과 바울이 아들처럼 사랑했던 디모데의 힘을 입어 좋은 전도의 결실을 맺었다. 많은 결신자들이 생겨나면서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는 시점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이 도착하니 저희에게 말하되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17-31).

 

③ 성모 마리아 교회 야외극장에서 찬양후 우리들은 제3차 공의회가 열린 장소인 성모 마리아 교회터를 찾았다. 교회사에서 예수의 모친 마리아, 애제자 요한과 연관, 요한복음 19장에서 십자가상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실 것을 당부함.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갔다고 한다.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그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380년과 431년에 이곳에서 공의회가 열렸다. 콘스탄틴누스 황제 때에 건립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는데 431년 회의가 여기서 개최되었다고 추측한다. 주후 431년 200명의 감독, 주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3차 교회공의회 (Third Ecumenical Council)에서 마리아를 성모로 승격하여 마리아 숭배의 터전을 마련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머니인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시릴(Cyril)이라는 신학자가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주장이 채택되어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모 마리아도 신성으로 선포된 곳이다. 이에 반대한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어머니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막에서 순교하였다.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양성론이 확정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초대 교회 교리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④ 사도 요한 교회 및 무덤터 (The Church of St. John) 사도 요한이 죽은 무덤 위에 500년경 세워진 교회인데 엄청난 규모였다. 비잔틴 시대의 언덕(acroplois hill)인 Ayiasoluk위에 있는 것으로 19세기 독일의 Catherine Emmerich라는 여자는 특별 계시를 받아 마리아가 살았을 터를 찾아냈다. 에베소 옆에 있는 Panaya Kapulu산속인데 여기에 폐허로 남아 있던 비잔틴 시대에 지은 작운 교회가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는 것이다. 캐톨릭에서 이 교회를 복원했고, 1961년 교황 23세는 캐톨릭 교회의 성소로 공포했다. 그 후 교황 바오르 6세와 요한 바오르 2세도 방문하여, 마리아의 집은 성지로 되었다.

 

사도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도미티안(Domitian)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었다. 로마 군인들이 뜨거운 기름통에 넣어 그를 죽이려 했으나 끝까지 죽지 않자 결국 밧모 섬에 유배 보냈다고 한다. 그 유배 중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유배 후 다시 에베소에 돌아와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 나는 왜 순교하지 못하고 혼자 남아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요한아, 네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순교가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단다.

 

그가 죽고 나서 6세경 저스티니안(Justinian)황제가 그의 무덤 위에 웅장한 사도 요한 기념교회를 35년간 건축했다. 길이가 11m에다 6개의 큰 돔(Dome)과 5개의 작은 돔형 지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교회 안에 ‘요한의 무덤’이라고 써 붙인 대리석 무덤이 있다. 이 무덤에 앉은 먼지가 약효가 있다고 하여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이 무덤에서 흐르는 물은 Healing Water이라 하여 많은 환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교회당 안에는 십자가형의 세례소가 있는데 땅 밑으로 구멍이 파여져 있다.

 

⑤ 아르테미스(Artemis) 여 신전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파르테논 신전의 4배에 가까운 크기였다. 당시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아데미는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 인도에서는 이스(Isi), 바벨론에서는 아스타르테(Asterte), 히타이트 인들은 시벨리(Cybele), 그리스에서는 레아(Rhea), 로마에서는 다이아나(Diana)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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